올해는 드뷔시가 세상을 떠난 지 100년. 100주년이 갖는 의미를 전 세계 음악가들은 물론이고 회화와 관련된 학자들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학술 세미나와 연주를 통해서 그를 기리고 있습니다. 보통, 드뷔시를 인상주의 음악가, 상징주의 음악가라고 합니다. 드뷔시(인상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술사조와의 관계적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상주의(Im
주말에 고교 동창들을 만났습니다. 배가 나온 친구들의 너스레와 염색은 했지만 귀밑머리까지 감출 수 없음에 잔 부딪히는 속도는 빨라졌고, 건강을 바라는 건배사들과 졸업한 지 얼마나 흘렀는지 헤아려 보기도 했습니다. 재학 중인 후배들이 200명 안팎이라는 말에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적잖이 놀랐었고, 일 년에 한 번씩 치러지던 체육대회는 더 이상 존속하기 힘들
현재 독일 출신 남성 첼리스트 세 명이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알반 게르하르트(Alban Gerhardt), 요하네스 모저(Johannes Moser), 그리고 다니엘 뮐러 쇼트(Daniel M?ller-Schott, 이하 다니엘)가 그들이다. 그중에서도 1976년 뮌헨 출신의 다니엘은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로 신예라기에는 나이가 많은 중년
봄이 꽃으로 와서 꽃처럼 가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한 사람이 꼭 그렇다. 봄처럼 단아하고 수줍은 듯 연주 스타일과 삶이 닮은 연주자다. 연주가 없는 볕 좋은 날, 웅크리고 밭을 매다가 문득 찾아온 知己에게 환한 두 손을 내밀 것만 같은 사람. 올해 4월, 일본에서 고별연주를 마지막으로 우리 곁을 떠나는 피아니스트 마리아 조앙 피레스(Maria
숲과 닮은 오케스트라얼마 전 여수 예울마루에서 초록우산 드림오케스트라 연주회가 있었다. 지휘자로 인사말을 하게 되었다. “저는 요즘 아침 일찍 산에 다니고 있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진달래의 감동스런 환대를 받았고, 당돌한 직박구리는 면전에서 새싹과 진달래꽃을 먹어치우더군요. 가만히 들여다보면 숲과 오케스트라는 많이 닮았습니다. 다양함을 기본으로 협업과 분
고마운 봄비가 오늘도 내린다. 남산 오르는 재미(중독?)에 빠진 오늘은 급기야 비옷을 입는 용기를 낸다. 온기를 머금은 봄비는 대지를 부드럽게 적셔 꽃과 나무의 소생을 재촉하고 있었다. 진달래와 머리위에 드리운 어사화처럼 연한 황록색 히어리의 모습과 색감에 감탄했다. 오색딱따구리는 연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경계하기 바쁘고, 산길의 키가 작은 가로수인 듯
보름달이 시리다. 달 보면 떠오르는 이들. 잘게 부서진 달빛은 그리움의 분자들인가. 그 빛에 감질나 환장한 이 어디 한둘일까. 루살카가 그랬고, 정읍사가 그랬을 터. 떠오르지 않으면 떠오르지 않을까. 가장 가여운 그리움 지척이라는 그리움.오페라 ‘루살카’중에서 ‘달님에게 바치는 노래’드보르자크는 프라하의 남쪽 작은 마을인 비쇼카에 있는 별장에서 휴양과 작곡
말 그대로 섣달그믐날이다. 새벽 숲은 높이에 따라 기온이 다르고 바람결과 호흡이 다르다. 오를 때마다 다른 느낌의 사진은 덤이며, 찍은 사진은 속없는 사람이 속없는 사람에게 속없이 보낸다. 낮 시간에 비해 새벽은 시간의 흐름이 매우 빨라서 새벽의 십분은 한낮의 한 시간 정도에 견줄 만큼 체감속도가 허벌나게 빠르다. 일어나기 힘들어도 막상 일어나서 움직이다
겨울 숲을 거닐다오랜만에 산에 올랐다. 모자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바람끝이 매섭다. 나무 사이로 멀리 보이는 겨울 산의 적막함은 나뭇잎 비비는 소리. 발에 채인 자잘한 돌 구르는 소리와 함께 공허하다. 간헐적으로 들리는 새들의 소리는 밥 좀 달라며 보채는 소리 같아서 애처롭다. 준비해간 묵은쌀이며 보리, 귀리를 널찍한 곳에 놓아주고 돌확에다 담아온 물을 채우
누나와 함께 삼형제는 자취를 했다. 형은 기타와 노래를. 누나는 즐겨 듣는 쪽이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나의 음악적 자양분은 어깨너머로 듣던 팝송과 샹송 그리고 칸초네, 심지어 락과 메탈음악이 아니었나 생각한다.누나는 독특한 방법으로 우리의 아침을 깨웠다. 녹음기의 ‘딸깍’하고 시작된 음악은 흡사 작은 시냇물이 마침내 대양(大洋)에 도달하듯 처음엔 무심히
새해가 밝았다. 또 한 번의 허튼 다짐이 될지언정, 술을 끊기로 마음먹는다. 살아가면서 의지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어디 한둘일까. 그중에 단주의 결심은 고약한 것임에 분명하다. 실수로 인한 자괴감과 회한을 생각하기보다 앞으로의 날들을 생각하니 첫 잔의 달콤함과 왁자지껄한 행복한 소란을 나의 음악에 양보할 수 있겠다. 어쩌면 재미없는 사람으로 살아갈지도 모르
서양의 사회·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코드 하나가 ‘도제’(徒弟) 제도이다. 도제는 스승 밑에서 어느 정도 기초를 다진 뒤 ‘직인’(職人)이 된다. 도제는 견습생(쯤)으로도 볼 수 있겠다. 서양 음악사에 이러한 직업과 인생의 사랑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방황을 그린 작품이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레방앗간의 아가씨’와 ‘겨울 나그네’일 것이다. 슈베르트는 물레
아내의 쓸쓸한 죽음이 낳은 통한의 곡바흐의 샤콘을 듣다보면 하늘에 닿는 고통과 슬픔을 느낀다. 바흐는 아내(마리아 바라바라)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 이 곡을 썼다. 바흐는 1720년에 아내의 약값을 벌기위해 자기가 섬기던 제후와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바흐가 돌아왔을 때 아내는 세상을 떠난 뒤였다. 예기치 않은 이별 앞에서 아내를 병구완하지 못한 자괴감과
얼마 전, 카탈루냐의 분리독립에 대한 찬반투표를 관심 있게 봤다. 아마도 카탈루냐 출신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의 조국이기 때문이었으리라. 명멸해간 수많은 비르투오조는 많았으나 위대한 예술가 파블로 카잘스는 진정한 인간이자 음악가이자 첼리스트였다. 1877년생인 그는 97세까지 살았다. 카잘스의 반독재 항거와 자유정신1939년 스페인의 오랜 내란이 프랑코
얼마 전, 포항에 연주회가 있어 다녀왔다. 평상시에는 멀쩡하다가도 운전대만 잡으면 허리와 뒷목이 불편한 체질이다. 당연히 대중교통을 알아봤으나, 환승 과정이 번잡하여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대구를 지나 영천을 지나는 길에 한산해서인지 운전의 노곤함도 잊고 가을과 말러의 음악만이 오롯이 들려오기 시작했다.아다지오에 녹아 든 천상과 지상의 대화말러는 작곡가로서
“선생님, 그 곡 참 좋아요”“그거 무슨 곡이예요?”“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야. 내가 바흐 추종자잖아”‘메뚜기도 한 철이다’라는 말이 있다. 음악가들은 가을에 분주해진다. 지금도 연주 다녀온 후 원고 마감일이 지나 미안한 마음 팍팍. 도착하자마자 의자를 끌어당기고 재촉하는 커서를 바라보고 있다. 앞의 대화내용은 얼마 전, 연주를 갔을 때 리허설을 끝내고
‘우체부 노래’그는 이제 막 열일곱 살인데 죽었다.그리고 이제 내 사랑,누가 나의 편지를 날라줄 것인가.그의 생명은 날아가 버렸다, 새처럼.이제 내 사랑, 누가 나의 마지막 입맞춤을 전해줄 것인가.우체부는 열일곱 살에 죽었다.그가 내 사랑이었다.누가 그대에게 이제 꿈길을 보여줄 것인가.왜냐면 나도 우체부와 함께 죽었다. ‘나는 너에게 장미 엑스를 주었는데’
햇빛 찬란한 5월,온갖 꽃망울들이 터질 때,그때 내 가슴에 사랑이 꽃피었다.햇빛 찬란한 5월온갖 새들이 노래할 때그때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나의 그리움과 사랑을. 로베르트 슈만 연가곡집 ‘시인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된다.약동하는 대자연과 사랑에 빠진 한 남자의 위대한 사랑예찬.기쁨은 짧고 슬픔은 긴 것인가.깊은 탄식과 같은 아름다운 고통의 서사여.내 눈물에
‘일 포스티노’내가 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마리오에게 그랬듯이 누구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이 하나 있다.지난 겨울 나폴리와 아말피 꼬스뜨를 다녀왔다.아름다운 자연의 풍광과 언덕을 오르내리던 자전거,그리고 사랑의 밀어들.“선생님, 저 사랑에 빠졌어요. 아파요...”“다행히 치료약이 있어. 곧 낫게 될 거야.”“아니요. 전 계속 아프고 싶어요. 낫고 싶지 않아요
비오는 아침, 쇼팽의 발라드를 들었다.토닥토닥 떨어지는 빗방울이 정겹고 반갑다.쇼팽의 발라드를 듣다보면,영화 ‘연인’(1992. 장자크 아노)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연인을 뒤로 하고 프랑스로 떠나는 배에 오르던 소녀.가까운 곳을 향한 넘치는 슬픔과 먼 곳을 향한 시선의 무뚝뚝한 대조.원근법에 의한 명장면에서 엔딩 크레딧과 함께 무심히 흐르던 쇼팽의 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