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박영집의 음/악/이/야/기

고마운 봄비가 오늘도 내린다. 남산 오르는 재미(중독?)에 빠진 오늘은 급기야 비옷을 입는 용기를 낸다. 온기를 머금은 봄비는 대지를 부드럽게 적셔 꽃과 나무의 소생을 재촉하고 있었다. 진달래와 머리위에 드리운 어사화처럼 연한 황록색 히어리의 모습과 색감에 감탄했다. 오색딱따구리는 연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경계하기 바쁘고, 산길의 키가 작은 가로수인 듯 국수나무는 싹을 틔우느라 여념이 없다. 계절에도 표정이 있다면, 봄은 환하고 순수한 웃음이 분명하다. 웃음은 나와 너를 구분 짓지 않고 경계도 없으며, 웃음의 분량만큼 행복은 비례한다. 웃음은 의심과 두려움을 지키는 견고한 성곽이 아닐까. 오늘 하루, 웃음으로 나를 긍정하는 행복한 봄날을 만들고 싶다.
 

바흐의 마태오 수난곡 <Bach, Matthaus-Passion, BWV244〉

 

교회력으로 사순시기(四旬時期)를 보내고 있다. 사순 시기란, ‘재의 수요일’부터 예수 부활 대축일 전까지 40일 간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시기이다. 회개와 보속(補贖)을 의미하며 부활을 준비하면서 핵심이 되는 시기를 말한다. 

오늘 들어볼 곡은 바흐가 1727년에 작곡한 마태오 수난곡이다. ‘수난곡(Passion)’이란, 신약성경에 포함된 네 권의 복음서에서 예수가 겪는 수난과 죽음을 묘사한 음악이라 할 수 있겠다. 

바흐의 ‘마태오 수난곡’은 마태오 복음26장부터 27장에 나타난 예수의 수난을 소재로 하고 있으며, 작품의 대본은 헨리치(C.F. Henrici, 1700~1764) 라는 독일인이 피칸더(Picander)라는 필명으로 음악에 맞게 편집했다. 대본에 쓰여진 정식 이름은 “복음 작가 성 마태오에 의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이다. 

바흐는 마태오 수난곡 외에도 나머지 세 개의 수난곡을 작곡했으나, 작품 진위 여부를 알 수 없다. 악보는 없고 대본만 남아있어서 지금은 마태오 수난곡만 사랑받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마태오 수난곡의 의미와 재발견

 ‘마태오 수난곡’의 가치는 다면적으로 봐도 인류의 유산으로 삼을 만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보다 강한 사랑, 제자들의 유약함이 빚어낸 두려움과 배신, 빌라도라는 지도자의 책임회피, 선동에 의한 군중의 무지함과 폭력성, 어떠한 상황에서도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가련한 사람들… 어쩌면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의 영욕은 반복되는지 모르겠다. 

멘델스존이 스무 살이던 1829년에 마태오 수난곡의 가치를 알고 공개 연주한 이래 많은 사랑을 받는 곡이 되었다. 곡의 구성은 합창과 독창, 그리고 복음사의 짜임새로 되어 있다. 전체적인 전개는 1인 2역(복음사, 유다)을 맡은 테너가 극적인 진전과 유기적인 연관성을 가지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합창은 이중적인 표현을 하는데, 첫 곡, ‘오라, 딸들아 와서 나를 슬픔에서 구해다오’와 선동되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광분하는 부분이 대표적이다. 전곡이 세 시간 가까운 78곡이나 되는 대곡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이곡의 백미는 47곡 알토영창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Erbarme dich, Mein Gott)’이다. 비통에 찬 가녀린 바이올린 솔로에 이어 들려오는 알토영창은 세 시간 가까이 참아왔던 인간 오욕칠정(五欲七情)의 휴화산이 폭발하는 순간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사순시기에 생각나는 한사람이 있다.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고 3월 26일 죽임을 당했다. 그 기간, 사십일. 그는 안중근이다.

[Youtube 링크]
추천음악 ;
☞ https://youtu.be/3icLbxogeV4?list=PLR-6f5Qs5ODP-KcDoejXUAF7eswp3UNj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