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에서 활동하는 남길순씨의 시집 ‘한밤의 트램펄린’이 창비시선 497집으로 출간되었다. 지역작가 가운데 처음으로 창비시선에 이름을 올려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9일 출판기념을 겸한 북 콘서트에서 작가는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열어갔다. 작가는 서른일곱에 순천문학회에서 개설한 문예대학에서 본격적으로 시를 공부했다. 어렸을 때부터 꾸준하게 일기를 쓰면서 그리움이라는 시적인 마음을 담아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인은 중앙문단에서 소외되었다고 자책할 수도 있지만, 고향의 정서는 시를 짓는 공간과 시간을 누리게 하는 장점도 있
는 2015년 광장신문에 투고된 글을 묶어서 책으로 펴낸 것이다.순천은 조선 시대 전통 읍성 도시에서 근대기 도시로 변화한 천 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로, 근대기 변화의 특징으로 언급되는 선교부 설립, 성곽 훼철, 철도 부설 등 근대기 도시 공간 변화의 흔적이 시가지의 확산과 함께 곳곳에 남아 있어서 근대 도시 공간사의 박물관 같은 도시이다.여기에 낙안 읍성이 조선 시대 성곽 도시의 원형을 거의 유지하고 있어서, 조선 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도시 공간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근대기 한국의
『빨치산의 딸』의 작가 정지아가 32년 만에 두 번째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창비)를 출간했다. 소설은 2008년 5월 1일 작고한 아버지(정운창, 구례 문척면 출신의 빨치산)의 장례식 3일 동안에 있었던 이야기로, 일종의 사부곡인 셈이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소설의 마지막 문장처럼 “빨치산”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아버지의 다양한 모습을 장례식에 모여드는 사람들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읽어 가는 내내 섬진강 강물처럼 끊길 듯 이어지는 눈물은 읽는 이의 몫이다. 신간 장편소설
1991년 봄, 등록금 시위가 한창이던 때 명지대학생 강경대가 백골단에 의해 사망하고 만다. 그로부터 3일 뒤인 4월 29일 부당한 국가폭력에 대해, 그리고 시대의 불감증에 스스로 몸을 던져 항쟁의 도화선이 된 스무 살 여성이 있었다. 그리고 올해 4월 29일, 31년의 세월이 지나 스무 해의 짧은 생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출간되었다. 「박승희평전」이다.1991년 봄은 잔인했다. 국가폭력에 의해 2명이 목숨을 잃었고, 1명은 의문사를 당했다. 무려 8명의 청년이 이에 맞서 분신 항거한다. 그러나 이미 80년 5월, 광주학살을 자행
박현정(본명 박임순) 시인의 네 번째 시집 『행복한 시에 물들어』(도서출판 북매니져)가 출간됐다.이번 시집에서는 시인이 순천만, 순천만정원, 아랫장에 품은 애정을 엿볼 수 있다.박 시인은 순천만정원에서 첫사랑을 만난 듯 설레고(「순천 국가정원만 힐링하다」), 순천만 갈대밭에서 애잔한 짝사랑을 반추한다(「갈대 사랑」). 갖가지 채소와 과일, 바닷고기 떼가 몰려드는 아랫장에서는 옛 향기를 되살린다(「아랫장 시장」). 그는 순천뿐 아니라 여수, 보성, 곡성, 구례, 목포 등 남도 지역의 계절에 따른 표정을 펜 끝에 흘러 보냈다.박 시인은
2018년 순천대학교10‧19연구소가 설립되고 그해 9월 콜로키움을 통해 순천 유족회 유족 분들을 초빙, 증언채록이 시작되었다. 역사교과서에서 스치듯 만났고 일상에서 자주 들었던 왜곡된 ‘여순사건’과 ‘반란군’이라는 말의 구체적 형상을 그때 처음 만났다.2019년 1월 22일 순천광장신문은 지역 내 현장 활동가들과 2019년 현안과 주요 계획을 공유하는 신년 좌담회를 열었다. 필자는 순천대학교10‧19연구소 연구원 자격으로 참석했다. 좌담회가 끝나고 편집장이었던 서은하 씨와 현재 범국민연대를 이끄는 박소정 씨와 인근에서 차 한 잔
"도덕은 형식이 없다. 도덕적 내면성은 형식 없이 작동한다. 심지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는 도덕화 경향이 강할수록 더 불손하다. 이런 형식 없는 도덕에 맞서 아름다운 형식의 윤리를 방어해야 한다." (p.90) 리추얼(ritual)의 사전적 의미는 종교적 의식이나 의례 또는 공동체의 규칙을 뜻합니다. 한병철의 책 은 이러한 종교적, 공동체적인 요소들이 상실된 오늘날의 풍경을 묘사하는 듯합니다. ‘종교’라든지 ‘공동체'와 같은 단어들이 낡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지시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그러나 생각보다 흥
여유도 시간도 없는 사람에게 책 읽으라는 권유는 폭력일 것이다. 읽히지 않는 (어려운) 책을 권하는 것도 어쩌면 폭력적이다. 우리가 타인에게 책을 추천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꼭 책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무언가를 타인에게 권하기 마련이다. 이 옷은 어때? 라든가, 저 음식은 어때? 라든가, 그 사람은 어때? 등등.... 그런데 소설이 위와 같은 질문의 형식, 또는 질문 그 자체라면 어쩔 것인가? 특정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하나의 질문과 온몸으로 대면하는 것이며, 그 질문을 통해서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또 다른 나를 만나
성은 통상 자연의 본능 같은 것으로 이해되곤 한다. 성은 저열하고 동물적이기에 고상한 취향을 지닌 인간이라면 어느 정도 배척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철학자에 따르면 섹슈얼리티는 동물적이거나 자연적이기는커녕 인간의 '비인간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지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과 인간의 성은, 자연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다. 다층적인 성적 환상만 놓고 본다면 성은 '음양의 조화'라는 단어로 채색되곤 하는 자연의 균형과 같은, 동양적인 성찰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인다.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도 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제목이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쳐 들게 한다. 드라마 제목으로 차용될 만큼 제목 자체에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고, 삼각관계를 구도로 펼쳐지는 세 사람의 사랑과 선택 또한 다양한 의미를 추측하게 하는 재미가 있다.19살에 소설책 『슬픔이여, 안녕』으로 프랑스 문단에 등단한 프랑수아즈 사강은 1958년 24살에 이 소설을 발표하며 천재적 재능을 가진 작가로 입지를 굳힌다. 작가가 노년에 코카인 소지 혐의로 체포되면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한 말을 김영하 작가가 동명의 소설로
둘째가 고등학생 때 일이다. 둘이서 나선 밤 산책 길에 어떤 일을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엄마가 결정장애가 있어서”라는 말을 했다가 둘째 아이로부터 ‘결정장애’라는 말이 왜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인 언어인지 조근조근 설명을 듣게 되었다.저자도 비슷한 경험으로 책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는 장애인들과 함께한 혐오표현에 관한 토론 자리에서 ‘결정장애’라는 말을 사용했다가 그 말은 혐오표현이며, ‘무언가에 장애를 붙이는 건 ‘부족함’ ‘열등함’을 의미하고, 그런 관념 속에서 장애인은 늘 부족하고 열등한 존재로 여겨
익숙함 속의 낯섦과 새로움정지아는 1990년 『빨치산의 딸』로 세간의 관심을 받으며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고욤나무’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65년생으로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으며 현재 고향 구례에서 노모를 모시고 대학 강의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정지아의 이번 작품집에는 2014년부터 각 문예지에 발표했던 9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그중 ‘검은 방’과 ‘우리는 어디까지 알까’ 이 두 작품은 2020년 각각 심훈문학상, 김유정문학상
'그냥, 사람'이라는 말은 참혹하다.'우리도 똑같은 그냥, 사람이라구요' 하는 이 말은 신체적, 정신적 장애, 재난이나 사회적 참사에 삶이 무너져버린 사람들, 사회적 편견에 낙인찍힌 사람들이 일상화된 차별과 혐오에 맞서 절규하듯 터트리는 말이기 때문이다.노들 야학의 교사로 13년 동안 장애인권운동을 했던 홍은전 저자는 노들 야학을 떠난 후 '사랑했던 것들을 불멸화' 하고 싶은 마음으로 한겨레신문에 5년 동안 칼럼을 썼다.인권운동을 기록하는 60편의 글을 통해 차별받는 존재였던 장애인들이 저항하는 자로 각성하여 세상의 지평을 넓혀가는
사랑하는 내 가족이 이유 없이 맞고 있다면, 내 이웃이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면 어떠할까? 목숨을 잃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우리의 일상,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치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5.18 당시 이러한 실존적 질문에 『오월의 어린 시민군』은 어린이 시선으로 탐색해보는 흔치 않은 작품이다.야구를 좋아하는 초등학교 6학년 찬호와 현조는 한집에 사는 단짝이다. 찬호는 사건 당시 인천으로 이사를 해야 했으나 5.18로 인해 광주를 벗어날 수 없었던 현조와 함께 전남도청에 도착한다.거기에서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인간은 섬이 아니다. 아니 적어도, 인간은 홀로 된 섬으로 있는 게 최상은 아니다.’엘리스 섬의 유일한 서점 ‘아일랜드 북스’의 주인 에이제이 피크리는 섬처럼 살아가던 사람이다. 이웃 사람들과 소통을 거부하고 살아가던 그가 예기치 않는 만남과 반전의 사건을 겪어나가며 세상과 연결되어 변화해가는 이야기를 추리적 요소까지 가미하여 재치있게 그려나가고 있다.에이제이 피크리는 사고로 아내를 잃고 우울한 일상을 살아가던 중에 서점에 버려진 미혼모의 아이 마야를 양녀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 그 앞에 출판사 영업사원 어밀리아가 나타난다.서점
‘을들의 당나귀 귀’는30여 년 동안 노동이 차별받지 않고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노동 상담과 여성 노동 관련법제정, 개정 운동을 펼치고 있는한국여성노동자회에서 출간한 책이다.113년 전 1908년 3월 8일.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 동환경에 맞서 생존권과 시민권을 요 구하며 거리로 나섰던 날. 1만 5천여 명의 분노는 세계 여러 나라의 여성들 과 연대하여 노동자로서 시민으로서 권리를 쟁취하는 투쟁으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한국 성폭 력 연구소에서 제안한 ‘연대의 런데이’ 에 함께했
이석기 옥중 수상록(민중의 소리, 2020)을 읽고 이석기 의원이 옥중에서 책을 썼다. 그는 책의 첫 페이지에 자필로 “겨울 속에 자라나는 봄 새봄을 기다리며”라고 썼다.지금까지 8년째 감옥에 있었는데 권력도 이 정도면 아마 이제 탈진했으리라 기대했을 텐데, 그런 그가 여전히 봄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이미 권력이 패배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나는 생각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옥에 갇힌 사람인데, 이 안에 들어와서도 생각을 하고 있으니 역설적이지요. …이걸(생각) 권력의 자로 재어서
『몸서리나는 세상이라 참말로』 출간에 부쳐 오랫동안 ‘여순반란’이라 불렸고 지금은 ‘여수·순천10·19’ 또는 ‘여순항쟁’으로 부르는 현대사의 비극인 여순사건은 어떻게 지칭하든 ‘여수’와 ‘순천’이라는 지역적 사건으로 국한되어 인식되어 왔다.그러나 정작 여수와 순천에서의 10·19 사건 전개는 일시적이었고 구례지역에서는 훨씬 오랜 시간에 걸쳐 지속적이고 광범위하게 펼쳐졌다.구례는 지리산과 백운산, 그 사이를 휘돌아 흐르는 섬진강이라는 천혜의 자연을 갖춘 아름다운 고장이지만 1948년 10월 19일 제주 4·3 진압을 거부하고 무장봉
나는 동생 집에 놀러 가기 하루 전이면 소리 안 내고 살금살금 걷는 연습을 한다. 조금만 집중력을 잃으면, 원래대로 쿵쿵 걷게 된다. 그래도 연습을 하고 가면 동생 집에서 지내는 게 훨씬 수월하다. 아파트 6층에 사는 동생은 큰 덩치임에도 어찌나 사뿐사뿐 소리 없이 잘 걷는지 그런 동생을 보면 ‘따비르’가 떠오른다.따비르는 김한민 작가의 그림책 ‘사뿐사뿐 따비르’에서 처음 만났다. ‘따비르 얼굴은 코가 좀짧은 코끼리 같고, 몸통은 돼지 비슷하고, 눈은 코뿔소를 닮은 귀여운 동물’로 소개되어 있다. 코끼리, 돼지, 코뿔소라니. 뭔가
추혜인 저/심플라이프 출판아침에 눈을 뜨면 새로 몇 명의 확진자가 생겨났는지 두려운 마음으로 안전문자부터 확인한다. 책방 문은 열어두지만 텅빈 거리는 고요하고 낯설다.마스크로 중무장한 손님들이 잠시 책방에 들러 종종 걸음으로 책방을 나서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담소를 나누고 차 한잔을 함께 했던 시간들을 떠올린다.책방의 페미니즘 독서모임 책으로 선정한 ‘왕진가방 속의 페미니즘’ 책은 코로나 시대 불안과 공포 속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절망의 끝에서 발견한 불빛과도 같다.추혜인 저자는 1996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입학해 성폭력상담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