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연인’ (1992. 장자크 아노)


비오는 아침, 쇼팽의 발라드를 들었다.
토닥토닥 떨어지는 빗방울이 정겹고 반갑다.

쇼팽의 발라드를 듣다보면,
영화 ‘연인’(1992. 장자크 아노)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연인을 뒤로 하고 프랑스로 떠나는 배에 오르던 소녀.
가까운 곳을 향한 넘치는 슬픔과 먼 곳을 향한 시선의 무뚝뚝한 대조.
원근법에 의한 명장면에서 엔딩 크레딧과 함께 무심히 흐르던 쇼팽의 발라드.
이별의 슬픔을 묘사하기 위한 배와 항구의 다소 익숙한 설정이긴 하지만, 
그 장면에서 ‘쇼팽의 발라드가 딱이야’라는 편견을 새겨준 곡이다.
슬플 땐 슬퍼하지 않아야 슬픔이 극대화 되는 것인가 보다.
斷腸의 고통과 슬픔이 애린 영화다.
작가와 감독, 연기자들에게 감탄을 했던 기억이 난다.

프랑스 통치하의 베트남이 배경.
무늬만 지배계층일 뿐, 베트남에서 무일푼으로
희망도 행복도 상실한 채 살아가던 프랑스 소녀.
삶에 찌들어 이미 어른 수준의 멘탈을 가진 소녀.
자신을 유곽의 여자로 여기라며 돈 많은 중국남자와 사랑의 유희.
그런 소녀를 끝까지 한 인격체로 대하며 사랑했던 남자.
그들은 평생 가슴으로 품는 연인이 된다.

영화가 흐를수록 농밀한 나의 이야기 같다.
끊임없는 나와 타자를 고정화 하지 않고 경계를 무너뜨리는
감독의 탁월한 감각과 카리스마 덕분인지 모르겠다.

사랑이 흔한 세상이다.
너를 또 다른 나로 볼 수 있을 때, 사랑한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역동적인 투영과 정체성을 묻는 인상 깊었던 영화.
영화가 그렇고 음악이 그럴 것이다.
인물이 그렇고 배경이 그럴 것이다.
나비의 꿈이 그렇고 마르틴 부버가 묻는 질문이 그럴 것이다.
나와 너란 차별과 구별이 무너지고 또 다른 나에게 상처를 덜 주게 되기를…

가히 고마운 빗님이다.

 

 

첼리스트 박영집은 일상에서
늘 음악과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를 읊듯
노래를 추천하고
참삶에 필요한
음반을 권유하면서
생활 속에 늘 가슴의 언어인
음악이 함께 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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