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휴일 아침, 나가려는데 거실에 앉아 있던 남편이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당신이 내몬 거잖아.”남편은 이제 응원군이 아니다.“힘드니까, 내려놓으라는 거지.”“당신은 9층까지 계단으로 오르내리는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그걸?”“빗댈 걸 빗대야지, 거기다 빗대.”“그거나 저거나. 이왕 나선 거, 끝까지 가 볼 거야.”“선을 넘으면 깨진다고, 부서진다고
울산바위가 보이기 시작한 진부령 어디쯤이다. 산마루를 굽이굽이 돌아 오른 탓에 현기증이 인다. 게다가 알피엠으로 표시되는 내 심장박동 수가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한다. 나를 운전하던 남자가 갑자기 차를 멈춘다. 그는 보닛 버튼을 누르고 차에서 내린다. 다행이다. 차가 멈춘 사이 나는 가쁘게 내쉬던 숨을 고르며 뜨거운 날숨을 크게 내뱉는다. 보닛을 들친 남자는
집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나를 반긴 것은 제우스였다. 6개월이나 헤어져 있었는데도 녀석은 동네가 들썩거릴 만큼 짖어댔다. 얼마나 요란스러운지 이웃들이 모두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덕분에 그들에게도 내가 돌아왔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알려지게 되었다. 잔뜩 구겨졌던 그들의 표정이 나와 마주치는 순간 환하게 펴졌다. 안녕, 마이클. 반가워 마이클. 그들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날이었다.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았지만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았다. 강의도 없고 알바도 잘렸기 때문에 부산을 떨 이유도 없었다. 서울 하늘은 당연히 맑겠지? 가을이잖아. 나는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면서 창문을 닫았다. 서울이란 도시를 떠올리자마자 갑자기 우울해졌다. 생일 케이크를 자른다든가, 미역국을 먹는다든가, 저녁에 한 잔 하자든
수철은 철수의 자동차에서 엔진을 빼냈다. 그는 자신의 자동차에 그 엔진을 장착했다. 엔진은 수철의 차에 제 몸인 것처럼 꼭 맞았다. 그럴 수밖에. 철수의 자동차는 국내에는 두 대밖에 없는 쌍둥이나 다름없는 차였기 때문이다. 수철은 자동차에 이상이 생길 때마다 쌍둥이 자동차에서 해당부품을 빼내 자신의 자동차를 수리했다. 처음에 빼낸 부품은 아주 단순한 부품이
이제 그 누구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숨소리까지 참아가며 귀를 세운다. 역시 더 이상 인기척은 없다. 살며시 방문을 열고 거실을 훑는다. 거실은 참으로 고요하다. 몇 시간 전의 흔적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어두울 뿐이다. 열린 문 사이로 빠져나간 불빛이 거실의 어둠을 밀어낸다. 그 위로 내 그림자가 목을 늘이고 두리번거린다. 거실 한 가운데
그가 내게 등을 보이며 카페를 나갔다. 그의 허리는 꼿꼿했으며 등은 그 어떤 시선도 퉁겨낼 만큼 견고하고 단단해보였다. 그의 등판에 때마침 저녁햇살이 뭉텅이로 들이쳤다. 사선으로 내려 꽂이는 햇살 덩어리가 마치 퇴장하는 주인공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같았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전화를 받으며 아주 잠깐 카페 쪽을 돌아보았다.
선수 대기실로 들어가기 전, 사미라는 경기장 안을 둘러보았다.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말 그대로 관람석에는 세계 각국의 응원단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각국의 중계석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고, 중계석 아래에는 기자단이 자리하고 있었다. 선수들의 움직임을 포착하느라 여념이 없는 카메라의 눈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았다. 카메라의 눈은 마치 저격수를 조준하고 있는 총
계는 새벽 3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버틸 생각은 아니었는데, 이제 뒤로 빠지기에는 늦어버린 시간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버티는 시간이 계속 되며 4시를 넘고 5시가 되고 창밖으로 어둠이 허둥지둥 몰려가며 빛이 새어들기 시작했다. 손가락은 반사적으로 움직이고 머릿속은 점점 더 멍해지며 반복적인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가
그녀에게는 남부럽지 않은 친구가 있다. 그리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지만 필요할 때면 적당히 의지하고 하소연도 할 수 있는 친구다. 그렇다고 서로 시시콜콜 잡다한 사정을 이야기하거나 행동반경을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담백하게 내 모습을 그냥 보여주고 그 친구의 모습 또한 담백하게 받아줄 수 있는 관계이다.그러나 이처럼 편안한 친구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석양이 붉은 옷자락을 거둬 사라지고 난 한참 뒤, 뒤뜰 툇마루 맞은편에 자리한 전나무 가지에 머물던 바람도 지쳐 제 갈 길을 가버리자 작은 별빛 하나가 살짝 전나무 가지를 간질인다.“안녕? 오랜만이야. 내가 없어도 이곳은 여전히 평화롭게 보여. 바람도 구름도 그리고 한가롭게 나는 새들도 모두 그대로야. 내가 있던 그때처럼 모든 것이 변함이 없구나!”오래전,
나는 울 아빠의 토끼 같은 새끼다. 경주에서 이기려고 기를 쓰고 달렸다. 앞 선 자의 자랑스러움과 승리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욕심과 부담감으로땀을 뻘뻘 흘리며 달렸다. 깡총깡총, 깡깡총언덕에 올라서니 지쳤다.저 밑의 거북이는 까마득히 떨어져 있어서 점처럼 보인다. 여기 잠깐 쉬었다 가자. 나무 그늘이 시원하다. 깜빡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거북이가 사
그 동안 내 인생에서 일어난 일들을 읽어보니 자랑이라고 내놓을 만한 것이 없다. 불운을 나열하고 불평을 한 것뿐이다. 이것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동정? 그딴 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다. 피곤해져서 불을 끄고 눕는데 머리가 베개에 닿는 순간 차가운 회오리바람이 불며 사방이 깜깜해졌다. 전등불을 껐을 때의 어둠과 비교할 수 없이 깊은 어둠이었다. ‘어.
아기는 하루 종일 잠만 잤다. 이 세상으로 오는 길이 너무 힘들어서. 꿈속에서 방금 떠나온 곳을 가보기도 했다. 그곳을 더 이상 갈 수 없을 때 눈을 떴다. 우산살처럼 펼쳐진 모빌에서 노랑나비, 흰나비, 호랑나비가 날개를 활짝 편 채 아기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다. 눈동자에 또렷한 촛점이 생기자 어머니의 따뜻한 눈길과 만났다. 볕 좋은 날은 엄마 등에 업혀서
10년째 이어지는 어느 모임의 송년회에서 각자 어렸을 때 사진을 공유해 보자는 제안이 나왔다. 덕분에 몇십년 만에 오래된 사진첩을 뒤져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우리 반 단체 사진 한 장을 골라내었다. 어릴 적 이사를 여러 번 가는 바람에 초등학교를 세 군데나 옮겨 다녔는데, 마지막으로 5학년 때 전학을 간 학교는 하와이에 있는 어느 초등학교였다. 한국과 미국
카메라를 의식하고 취하는 포즈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워 스냅사진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모임이나 행사 후 사진 정리를 하다보면 버리는 사진이 많다. 초점이 안 맞아서 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진에 찍힌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싫어하지 않을까하는 우려에서다. 누군가 이야기했듯이, 내가 찍은 인물 사진은 곧 나의 자화상이기에, 미루어 짐작컨데 그들 또한
우럭모든 것은 밀려왔다 쓸려간다. 태풍 메아리가 잦아들던 날의 바다도 그랬다. 사람들은 대포항은 알지만 그 아래 후진항이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기실 대포항보다 후미졌다. 나는 이곳에 도착했다. 후진항이 있는 해변 활어회센터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드르륵- 문 여는 소리에 놀란 아줌마가 놀래미처럼 튄다. “놀래미는 제철이 아니고요, 가재미가......”
또 하나의 그림자. 사람이나 사물이나 그림자는 하나다. 조명으로 만들기 전에는 그림자는 하나일 뿐이다. 하나 내게는 그림자가 둘이다. 달리 말하면 나는 내 그림자 외의 그림자를 하나 더 업고 살던 ‘인간’이었다. 대여섯 살 때부터인가.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그러니까 성격 형성기라는 유소년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나는 원치 않는 그림자를 또 하나 달고
# 1. ‘어머, 저 옷 참 예쁘다.’ 다섯 살쯤 된 나는 추석 전 날 대구에서 올라온 한 살 아래 사촌 여동생이 입은 옷을 보며 감탄했다. 개미만한 작은 구멍이 뽕뽕뽕 뚫린 병아리 털빛처럼 노오란 스웨터. 긴 머리에 얼굴도 하얀 사촌에게 그 옷은 너무 잘 어울렸고 그 옷에 매달린 주홍빛 뿔사슴 액세서리는 스웨터와 금상첨화였다. 그 당시, 젊은 작은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