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박영집의 음/악/이/야/기
봄이 꽃으로 와서 꽃처럼 가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한 사람이 꼭 그렇다. 봄처럼 단아하고 수줍은 듯 연주 스타일과 삶이 닮은 연주자다. 연주가 없는 볕 좋은 날, 웅크리고 밭을 매다가 문득 찾아온 知己에게 환한 두 손을 내밀 것만 같은 사람. 올해 4월, 일본에서 고별연주를 마지막으로 우리 곁을 떠나는 피아니스트 마리아 조앙 피레스(Maria Joao Pires 이하, 피레스) 얘기다.
안분지족의 연주자
1944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태어나고 브라질에서 살고 있는 피레스는 어린 시절 리스본 음악원에서 작곡과 음악이론을 배웠고, 독일로 건너가서 본인의 연주 스타일을 만든다. 국제무대에 데뷔하게 된 건 1970년 베토벤 탄생 200주년, 당해를 기념하는 콩쿨에서 우승을 하여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됐다. 그 이후 일본의 ‘데논’ 레코딩사와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프로젝트를 야심차게 펼쳤으나 안타깝게도 손목부상으로 인해 1970년대 후반을 통으로 쉬게 된다.
재활의 터널을 지나 재기에 성공한 피레스는 마르타 아르헤리치, 미츠코 우찌다와 더불어 여류 피아니스트 트로이카 시대를 열게 된다. 모차르트 소나타의 연주는 깊은 산속의 옹달샘이 떠오르는 맑고 청아함이 음악치료라 하겠다.
쇼팽을 연주할 때는 과장이 없으며, 본인을 태우는 연주를 하면서도 본인의 작은 신체(150cm 남짓, 작은 손)로 할 수 있는 게 나의 한계라고 낮추지만, 거기서 분투하는 모습은 결코 작지 않다. 아마도 두 피아니스트에 비해 덜 알려진 이유도 자신을 낮추는 삶과 궁극적 음악에 한정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대중과 미디어에 덜 노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명상과 선을 음악에 접목
피레스는 독주를 많이 하지 않는 이유가 스테이지에 혼자 있는 것이 힘들다고 한다. 듀오 무대에서도 연주를 하다가 본인만 남게 됐을 때 같이 연주했던 연주자에게 무대 뒤에 앉아있게 부탁한다. 본인이 먼저 일어서게 되면 무대 뒤에서 물을 마시면서 기다려 줄줄 아는 연주자다.
연주를 위해 호텔에서 야마하 키보드를 구해 와서 8시간 연습을 하고 스테이지에 올라섰을 최적화된 몸을 생각하니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그는 불교적인 세계관(조부가 승려)을 바탕으로 연주자들을 위한(일반인 포함) 명상과 선을 접목한 프로그램을 포르투갈 아카데미에서 구현하고 있다. 한때는 정부보조금이 부족하여 자신의 연주와 레코딩 수입으로 충당하는 어려움이 있었으나, 이제는 빚잔치는 끝난 상태이고 은퇴 후에 아카데미에서 활동을 이어갈 것이다.
몸은 제1의 악기
피레스의 캐릭터를 제대로 보여주는 동영상이 있는데, 리카르도 샤이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와 공개 리허설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을 연주하는 장면이다.(원래는 21번을 연주하기로 약속)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입을 틀어막고 지휘자에게 지금 뭐하냐는 식으로 전기에 감전된 듯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눈과 표정과 말로 얘기하고 난리가 나지만, 결국 연주를 하게 되고 최고의 몰입을 보여준다. 첨가하지 않고 그대로를 악기에 드러내는 것이 몸이자 음악가의 숙명일지 모를진저. 제1의 악기는 몸이다. 몸은 기억이며, 몸의 기억은 최적화된 소리일지도 모른다. 애 썼어요 고마워요 피레스.
안녕.
[Youtube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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