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양심’으로 산 카탈루냐의 음악가

 

얼마 전, 카탈루냐의 분리독립에 대한 찬반투표를 관심 있게 봤다. 아마도 카탈루냐 출신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의 조국이기 때문이었으리라. 명멸해간 수많은 비르투오조는 많았으나 위대한 예술가 파블로 카잘스는 진정한 인간이자 음악가이자 첼리스트였다. 1877년생인 그는 97세까지 살았다.
 

카잘스의 반독재 항거와 자유정신
1939년 스페인의 오랜 내란이 프랑코 독재정권에 의해 장악된 후 카잘스는 스페인을 떠나 프랑스 프라드에 머물면서 일체의 연주활동을 중단하고 조국에서 망명한 이들을 구제하는데 정성을 쏟는다.

시간이 흘러 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지만,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만은 굳건하였다. 카잘스를 더욱 절망에 이르게 했던건 프랑코 정권에 대한 타협적인 국제정세였다.

이에 카잘스는 스페인에 민주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 모든 연주 활동을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는 자신의 인생관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단순한 인간이다. 복잡한 것은 싫다. 음악도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워야 한다. 음악이 요구하는 세계를 엮어내기 위해 나는 최선을 다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나에게는 문명이란 바로 그러한 일들인 것이다. ... 현재 상황에 나쁜 점이 있다면 어쨌든 거기에 반응해야 한다. 받아들이건 거부하건 간에 언제나 그 태도는 유지해야 한다.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좋은 일에 스스로 참여하여 최선을 다해 말하고 또 써야 한다. 이는 모든 인간의 의무이다. 세계적 명성을 얻은 사람일수록 더욱 그래야 한다. 옳은 일과 추악한 일에 대해 자기의 생각을 분명하게 밝힐 의무를 지닌 사람들이 아무 말도 않고 집안에 들어앉아 그대로 만족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나는 그만 불행해지고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괴로워한다. 선(善)에 대한 참여는 사람들 모두가 해야만 하는 일이며 또 어떤 사람이든 다 자기 나름대로의 표현 수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생각은 다음에서도 일관되게 드러난다. “나는 역사가도 아니고 정치가도 아닙니다. 그냥 음악가입니다.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는 언제나 그렇듯이 첼로와 지휘봉뿐입니다.”

 

새의 노래
1971년 ‘유엔의 날’ 연주에서 그는 카탈루냐의 독립과 세계의 평화를 염원하며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또박또박 분명하게 말했다. “내가 태어난 카탈루냐의 민요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새의 노래」 라는 곡입니다. 카탈루냐의 새들은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면 peace, peace, peace 하고 노래합니다.” 새들의 울음소리에 빗대어 ‘평화’를 강조한 짧고 굵은 메시지다.
 

쟈켓 해설:

1961년 11월 13일 역사적인 백악관 콘서트이다.(사진작가, Mark Shaw) 비록 프랑코 정권에 우호적인 미국이었지만, 케네디 대통령의 초대에 응한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간성이 오늘날처럼 중대한 상황에 직면한 적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지금 세계의 평화라는 문제가 전 인류의 희망이 되어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 마지막 목표를 이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일에 참여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귀하와 개인적으로 친히 만날 수 있는 이번 기회를 진심으로 고대하고 있습니다. 내가 귀하와 귀하의 친구 여러분을 위해 연주할 음악은 미국 국민에 대한 나의 깊은 감정과 자유세계의 지도자로서의 귀하에 대한 우리 모두의 믿음의 성의를 틀림없이 나타낼 수 있으리라 굳게 믿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어: 새의 노래, 두 번째


- 첼리스트 박영집의 음악이야기 -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