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서양의 사회·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코드 하나가 ‘도제’(徒弟) 제도이다. 도제는 스승 밑에서 어느 정도 기초를 다진 뒤 ‘직인’(職人)이 된다. 도제는 견습생(쯤)으로도 볼 수 있겠다. 서양 음악사에 이러한 직업과 인생의 사랑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방황을 그린 작품이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레방앗간의 아가씨’와 ‘겨울 나그네’일 것이다. 슈베르트는 물레방앗간 직인의 사랑과 실연, 그리고 빈터라이제(겨울 나그네)를 통해 낭만주의 예술가곡을 꽃피웠다.

주인공은 막 도제기를 마치고 세상에 나아가는 게젤(Gesell). 예쁜 아가씨와 사랑에 빠졌지만, 곧 실연의 고통을 맛보고 만다.
 

 

나그네의 겨울여행

이제 청년은 그 마을에 머무는 것이 고통이다. 겨울이 닥쳐오면 일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마음이 떠난 아가씨 가까이 있다는 것이 고통이기에 ‘겨울여행’을 떠난다.
 
나그네로 왔던 곳, 다시 나그네가 되어 떠나네. 꽃이 만발했던 오월, 소녀는 사랑을 말하고 어머니는 결혼을 부추겼지만…, 사랑은 방랑을 좋아하는 법, 하늘이 그렇게 정해놓지 않았는가. 아,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잘자, 내 사랑! 문에 ‘잘 자’라고 적어놓을 테니 내가 네 생각했음을 알아주렴.

시냇물이 얼어버렸듯이 마음도 눈물도 얼어붙은 차가운 밤, 동구 밖을 벗어나며 나그네는 따뜻했던 어느 날을 추억한다.

성문 앞 우물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아래 단꿈을 꾸었네. 가지에 사랑의 말 새겨놓고서 기쁘나 슬프나 찾아온 그 나무 밑. 나무가 말을 건다. “이리 오게 친구, 여기가 자네 쉴 곳이라네.” 찬바람이 불어와 모자가 날아가고, 그곳에서도 많이 떨어져 와 있는 지금,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이리 와서 쉬었다 가게나 친구.”
 
참 눈물이 많은 나그네다. 슈베르트도 그랬을까. 흘러내린 눈물이 냇물을 녹이고 흘러가서 그녀의 집까지 도착하지만 부질없어라. 도깨비불도 나그네를 업신여기니 기진맥진하여 길가에 쪽잠이라, 어느 봄날의 꿈을 꾸게 된다.
 
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오월의 꿈을 꾸었네. 푸른 초원과 새들이 지저귄다. 그때 닭이 울어 깨어보니, 웬일인가. 지붕 위 까마귀 우는 소리였네. 사랑을 사랑하는 꿈을 꾸었네. 아름다운 아가씨, 진실과 입맞춤, 기쁨과 축복에 대한 꿈을. 닭 우는 소리에 깨어 앉았지만 아직도 가슴이 뛰네. 내 사랑, 언제나 내 품에 안을 수 있을까.

한때, 나그네는 세 개의 태양을 가졌었다. 두 개는 사랑과 희망이며, 나머지 하나는 삶의 태양이다. 이제 그에게는 만가(輓歌)를 불러줄 거리의 악사만이 나그네의 벗으로 남았다. 거리의 악사를 등장시킨 슈베르트의 천재성이 번뜩인다. 거리의 악사야말로 슈베르트의 투영이며 세상에 미련 없음이다.


검색어겨울 나그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한마디로‘겨울나그네는 디스카우다’라고 하면 억측일까? 디스카우는 1943년 베를린에서 처음으로‘빈터라이제’를 부른 이후 수백번의 리사이틀과 여덟 번의 녹음을 남겼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이 서로 채운다. 디스카우는 슈베르트의 음악적 의도였던 나그네의 상념을 주제를 변주하듯이 자유자재로 그러나 긴밀하게 묶어나간다. 전체가 하나요, 하나가 전체라 할 수 있다. 세밑에 힘겨워하는 모든 이들이여, 부디, 힘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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