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섣달그믐날이다. 새벽 숲은 높이에 따라 기온이 다르고 바람결과 호흡이 다르다. 오를 때마다 다른 느낌의 사진은 덤이며, 찍은 사진은 속없는 사람이 속없는 사람에게 속없이 보낸다. 낮 시간에 비해 새벽은 시간의 흐름이 매우 빨라서 새벽의 십분은 한낮의 한 시간 정도에 견줄 만큼 체감속도가 허벌나게 빠르다. 일어나기 힘들어도 막상 일어나서 움직이다 보면 뿌듯하다. 이른 아침을 탐할 수밖에 없다.

고향, 꿈엔들 잊힐리야
누나로부터 전화. 이번 설은 엄마를 모시고 광주에서 지내잔다.
드넓은 평야와 영산강을 바탕으로 세력을 떨친 마한(目支國)의 흥망이 서려있는 내 고향. 나주 반남과 영암 시종의 경계.(뒷배월 반남 양반네를 바람양반과 바람떡이라 불렀다. 아이들이 많았고, 늘 갓난이가 있었다) 아랫집 덕산떡은 마당과 집은 시종, 정게(부엌)는 반남으로 쪼개져 있었기에 ‘반남서 밥 해가꼬 시종서 밥 묵는다’던 미소들이 밥알처럼 피어오른다.

밭에서 멀지않은 곳에는 크고 작은 고분이 흔했고, 학교 파이면 거대한 고분에 올라서 미끄럼을 타고 놀았다. 유격대가 활동하던 자미산(紫微山)에서 캐온 수정을 부싯돌 삼아 부딪히며 놀던 기억이 새롭다.

마을을 기준으로 앞방죽 뒷방죽이라 불리는 큰 저수지, 장마가 시작되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에 물귀신 상상이 더해져 멀리 방죽두럭(둑)을 지나와야 했다. 무슨 뱀인지 엄청난 양의 뱀들이 비탈진 방죽두럭에서 풀들을 눕히고 엉켜 있었다.

언제였던가. 들일을 마치고 막둥이와 아부지. 서깨틀(서쪽갯들?) 너머 석양은 참 붉었고, 너무 좋아 경운기는 자율운전. 쿠션을 위해 호스로 만든 노란 안장에 앉아 엉덩이는 들썩들썩, 노래와 악을 썼다. 아부지는 너털웃음과 뒷꼭지가 잘 생겼다는 말씀을 하셨다. 어찌 잊겠는가…

타향에서 작곡한 망향의 노래

‘Going Home’은 드보르작의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From the New World) 제2악장을 일컫는 말이다. 드보르작은 9개의 교향곡을 작곡했는데, 지금은 8번과 9번이 널리 사랑받는 곡들이다. 드보르작은 뉴욕 음악원장으로 머무는 동안, 그의 히트곡이라 할 수 있는 첼로 협주곡과 현악 사중주곡 ‘아메리카’ 그리고 그 유명한 신세계 교향곡을 남겼다. 어쨌든 신세계 교향곡은 드넓은 미국의 자연과 대도시의 활기찬 인상을 음화화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특히, 1,4악장) 오늘 감상하고자 하는 2악장은 라르고의 템포로 짧은 서주에 이은 잉글리시 호른이 목가적인 주제를 노래한다. 이 주제가 바로 ‘Going Home’이라는 제목인데, 고향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집으로, 고향으로,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말같아 아프다.
 

추천음악: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와 로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가 협연한 신세계는 악보에 충실하면서 절제와 박력이 조화롭다. 두 번째로 추천할 연주는 바츨라프 노이만과 체코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이다. 조국의 마에스트로와 오케스트라는 따뜻하면서도 주관적인 해석으로 일청을 권한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첼리스트 Alisa Weilenstein의 연주로 들어보시길 바란다. 악보와 연주, 그리고 음악이 정반합을 이루는 과정이 무척 설득력 있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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