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또 한 번의 허튼 다짐이 될지언정, 술을 끊기로 마음먹는다. 살아가면서 의지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어디 한둘일까. 그중에 단주의 결심은 고약한 것임에 분명하다. 실수로 인한 자괴감과 회한을 생각하기보다 앞으로의 날들을 생각하니 첫 잔의 달콤함과 왁자지껄한 행복한 소란을 나의 음악에 양보할 수 있겠다. 

어쩌면 재미없는 사람으로 살아갈지도 모르지만, 다시 한 번 왜 음악을 시작하게 됐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음악가에게 거창한 버킷리스트는 아니더라도 지난하지만 가장 행복한 것은 무엇보다 연습과 연주에서 오는 담박한 항심(恒心)에 더 끌리기 때문일 것이다.

 

 


톨스토이의 눈물 '안단테 칸타빌레'
‘Andante cantabile'는 차이코프스키의 현악4중주곡 제1번의 2악장에서 나온 말이다. 연주자들을 위한 나타낸 말로서 ‘천천히 노래하듯이’라는 뜻이다. 1871년 차이콥스키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계획했으나, 단원들에게 연주료를 지불할 만한 형편이 아니어서 현악4중주곡으로 작곡을 한다.
 

 


차이코프스키는 초연 징크스가 있었는데, 좋은 반응보다는 냉담하거나 비난이 쏟아지는 실패가 더 많았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이 현악 4중주는 초연부터 큰 성공을 거뒀다. 2악장의 우아하면서도 애절한 선율이 큰 갈채를 받았는데, 차이코프스키는 31세 때, 신경쇠약 증세를 치료하기 위해 누이동생 집에서 지냈다. 어느 날 밖에서 들려오는 난로 수리공의 콧노래 소리에 마음을 빼앗겼는데, ‘소파에 앉은 바냐’라는 러시아 민요였다. 아름다운 소녀 바냐에게 한눈에 반해버린 청년 이반의 마음을 노래한 곡이다.

곡의 시작과 함께 느린 템포의 애잔하면서도 무한한 동경을 그린 선율이 인상적인 곡이다. 차이코프스키는 채보를 했고, 훗날 현악 4중주에 차용한다. 1876년, 당시 모스크바 음악원장,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이 주최한 연주회. 대문호(大文豪) 톨스토이의 모스크바 방문을 환영하는 자리에서 이 곡이 연주됐는데, 톨스토이가 너무도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톨스토이는 차이코프스키에게 “내가 모스크바에 머무는 동안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재능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차이코프스키는 감격해서 “제 음악이 선생님 같은 위대한 분의 기쁨이 되었음은 평생의 자랑으로 남을 것입니다”라고 답장을 썼다. 그리고 그 기쁨을 일기에도 남겼으니 “그때처럼 기쁨과 감동을 갖고 작곡가가 된 것을 자랑으로 생각한 적은 나의 생애에 두 번 다시는 없을 것이다.” 一道는 萬道라더니 서로를 알아보는 러시아의 대문호와 대작곡가의 만남과 서신교환이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추천연주:
이 곡은 현악 사중주뿐 아니라 첼로 독주용을 비롯해서 바이올린, 피아노 독주용, 오케스트라 연주 등으로 편곡되며 독립적인 작품으로 오늘날 많이 연주되고 있다. 현악 사중주는 러시아 현악사중주단인 ‘보로딘 사중주단’의 연주를 추천한다. 첼로의 연주는 독보적인 연주자가 있으니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를 꼭 들어보시길 바란다. 약음기를 끼운 현악 사중주가 애써 목울대로 삼키는 눈물이라면, 로스트로포비치의 칸타빌레는 눈보라 몰아치는 웅혼(雄渾)한 시베리아의 서정이 있다. 일본의 지휘자 세이지 오자와가 지휘하는 보스턴 심포니오케스트라와 로스트로포비의 연주는 필자가 들어본 첼로 버전의 최고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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