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숲을 거닐다
오랜만에 산에 올랐다. 모자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바람끝이 매섭다. 나무 사이로 멀리 보이는 겨울 산의 적막함은 나뭇잎 비비는 소리. 발에 채인 자잘한 돌 구르는 소리와 함께 공허하다. 간헐적으로 들리는 새들의 소리는 밥 좀 달라며 보채는 소리 같아서 애처롭다. 준비해간 묵은쌀이며 보리, 귀리를 널찍한 곳에 놓아주고 돌확에다 담아온 물을 채우고 돌아섰다.
 

 

‘보헤미아의 숲으로부터’의 제5곡
드보르작의 첼로 소품 가운데 하나인 ‘고요한 숲’은 원래는 드보르작이 42세가 되던 1883년 가을부터 이듬해 1월에 걸쳐 작곡된 피아노 연탄곡(한 대의 피아노에 두 사람이 앉아서 연주하는 것) ‘보헤미아의 숲으로부터’의 제5곡이었다. 이 곡을 프라하 음악원의 동료들과 피아노 트리오를 구성해서 연주할 목적으로 편곡한 것이다. 이후 첼로와 피아노, 첼로와 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편곡되어 연주되기도 한다. 
 

 

악보를 보면 아시겠지만, 첼로가 처음부터 매우 부드럽고 피아노에 속삭이듯 당김음(리듬을 요소 중에서 강박과 약박을 의도적으로 바꿔준 것)을 연주하면 피아노는 정박으로서 8분음표와 8분 쉼표를 반복하면서 첼로를 경청하며 화답하면서 앙상블을 이끌어 가는 3부 형식의 곡이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그야말로 고요한 침묵의 향기에서 추는 춤곡 황병기 선생의 ‘침향무’를 닮았다.

황병기 선생을 추억하며
얼마 전, 가야금의 명인 황병기 선생이 타계했다. 전통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추구했으며, 동서양의 음악을 두루 수용하셨던 예술가였다. 또한, 작곡자의 의도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 연주자의 지나친 감정이입을 경계하셨으며, 하루도 거르지 않는 연습과 연주에 관하여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모든 연주자가 매일 연주 안 하면 안 돼. 연주가 육체 행위라 그래. 스포츠하고 같은 거야. 김연아나 장미란이 한 달만 안 해봐. 못해. 육체 행위는 정직하거든. 그리고 속임수가 안 통해. 정신은 교활해서 거짓말도 하고, 사람도 속이고, 게으름도 피우고 말이야. 그런 거 보면 육체가 정신보다 훨씬 신성하고 더 위대한 거야.” 

선생님은 진정하게 슬플 줄 아는 사람만이 기쁠 줄도 안다는 것을 강조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진짜 기쁨은 슬픔에서 나오는 거야. 슬픔을 뱃속에서부터 다 집어넣고 나오는 기쁨. 그게 진짜 기쁨이지. 그러니까 슬퍼도 너무 슬퍼하지 말고 괜히 오지도 않은 미래 때문에 너무 걱정도 하지 마. 그냥 현재에 살면 돼. 걱정이나 불안은 존재하지 않는 거니까. 그건 유령 같은 거라고. 굳이 일부러 상대할 필요 없는 유령. 유령은 유령대로 지들끼리 살게 내버려 두면 되는 거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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