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의 생애가 있듯이 달걀 또한 한 생애를 겪는다. 어린 닭이 처음으로 낳은 알은 어른 엄지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크기로 아주 작고 모양이나 색깔이 불안정하며 때로는 노른자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로부터 한 달 쯤 지나야 상품화할 수 있을 만큼 아담한 크기가 되는데, 이때부터 서너 달 동안에 낳는 달걀이 맛도 가장 좋고 모양이나 색깔도 예쁘다
닭에게 흔히 나타나는 전염성 질환으로는 뉴캐슬병과 전염성기관지염, 계두 등이 있다. 계두는 닭의 벼슬을 모기가 물어서 머리 전체가 부스럼 투성이가 되어 잘 먹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 병은 병아리가 70일 정도 됐을 때 약액을 묻힌 침으로 날개의 살갗을 찌르는 예방 접종(백신)을 하면 평생 걸리지 않는다. 뉴캐슬병과 전염성기관지염은 공기로 전염되는 세균성
친절해진 예의 그 간병사가 “교수님, 글쎄요. 제가 오늘 할머니에게 당했지 뭐예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들어본즉슨, 간병사가 아내에게 미음을 연거푸 떠먹이려드니까, 아내가 “그것은 나의 인권침해요. 간병사의 직무유기요, 월권입니다.” 했다는 것이다. 아내는 여전히 정신이 흐려서 모든 것을 ‘잊고 사는’셈이지만, 어느 순간 정신이 맑아지면 큰 소리를
그런데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또 있다. 식량자급률이 매우 낮은 우리나라에서는 사료작물을 재배할 수 없기에 가축이 먹는 사료는 주로 미국에서 수입하는 곡물로 만들어진다. 여기에는 미국의 거대 곡물 자본이 관여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거대 곡물 기업은 지역의 생태와 환경을 유지하는 소농을 농촌에서 몰아내는 쪽으로 기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기다가 사료의
가끔 귀농한 사람이나 농사꾼 중에서 양계를 시작해보고 싶다고 우리 집에 견학 오는 사람들이 1년이면 서너 번씩 있다. 닭농사는 경제적으로 꽤 매력이 있는 게 사실이다. 큰 투자를 하지 않고도 시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5개월 정도면 돈맛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관심을 갖는다. 나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귀농을 준비하던 시절에 몇 군
닭을 키워 온 지난 10여 년 동안 1년에 100여 마리씩, 모두 1000마리가 넘는 닭들이 내 손에 죽었다. 이만하면 닭 백정이라 불린다 해도 할 말이 없다. 봄가을로 한 번씩 부화장에서 병아리를 받을 때 100마리 단위로 거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암탉 칸에 30여 마리씩 넣어주고 남은 수탉들을 잡는 것이다. 우리 닭이 맛있다는 말이 조금씩 퍼지면서 한여
닭은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롭고 낯선 것에 대한 경계심이 매우 강하다. 언젠가 씀바귀를 꺾어다 닭장 안에 던져 주었더니 닭들이 웅성거리며 씀바귀 주위에 원을 그린 채 목을 길게 빼서 낯선 물건을 관찰하고 있었다. 물론 이때는 엉덩이를 뒤로 뺀 채 언제든지 달아날 수 있는 자세를 취한 모습이다. 닭들에게 주는 풀이나 야채는 작두로 짧게 썰어서 사료와 섞어 주기
내가 아는 가축 중에서 닭은 대표적인 잡식성이어서 먹이의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알곡이 주식이지만 마른 볏짚과 댓잎까지 온갖 풀과 감자, 호박, 무, 고구마, 배추, 파 등 채소류와 과일 조각은 물론이고 각종 벌레와 음식 찌꺼기에 저희가 낳은 달걀과 살아 있는 제 동료의 깃털과 살까지 가리는 것이 없다. 게다가 원래 조류인 닭은 내장이 짧아 소화 흡수율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닭의 소리란 수탉이 홰치면서 내는 ‘꼬끼요’와 암탉이 알 낳고 내는 ‘꼬꼬댁’이다. 그런데 실제로 닭은 매우 다양한 소리로써 서로 소통한다. 닭이 60~70일 정도 자라면 변성기가 시작되는데 사람의 변성기 때처럼 목소리가 갈라지고 쉰 듯해서 안정감이 없다. 닭이 내는 소리는 변성기 이전의 병아리 적 소리를 계산하지 않더라도 줄잡아 열다섯
동네 할머니들은 ‘닭 손님은 못 본다’고 말한다. 그만큼 닭은 무리에 새로 들어온 닭에 대한 텃세가 심하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우연히 다른 칸의 수탉이 옆 칸으로 들어간 경우 싸움이 일어나는 데는 1분이 걸리지 않는다. 암탉도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수탉은 특히 외부의 침입자에 대항해서 무리를 지키려는 본능이 매우 강하다. 가끔 농장에 견학 온 사람들이 달걀
암평아리가 커서 발정이 오게 되면 따로 키우던 수탉을 암탉 칸에 합사시킨다. 이 때 암탉들이 보이는 반응은 호기심과 경계심이 반반씩 섞여 있다. 닭은 신참자에 대한 텃세가 어떤 동물보다 심한 편이다. 암탉들은 처음에 수탉을 껄끄러운 침입자로 여겨서 피하거나 기가 센 놈은 결기를 세우고 수탉과 겨뤄보려 하는데,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수탉의 무력시위에 금세 제
닭은 넉 달 정도 키우면 알을 낳기 시작한다. 부화해서 100일 무렵이 되면 암탉의 벼슬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하고 색깔도 더욱 붉어진다. 얼굴도 붉어지기 시작하는데 초경을 시작할 무렵의 여자 아이들 얼굴이 복사꽃처럼 화사해지는 것과 같은 생리적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다. (어떤 신심이 깊은 성당의 자매님이 와서 이 모습을 보고 하느님의 섭리를 떠올리기도 했
식물에게 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주거지를 옮기는 것은 가장 큰 스트레스 중 하나일 것이다. 닭도 마찬가지여서 좁은 병아리 칸에서 벗어나 그들이 평생을 살게 될 넓은 우리로 옮겨 놓으면 처음에는 매우 당황하고 어리둥절해 한다. 조금만 지나면 넓은 공간에서 자유를 만끽하려는 듯 힘찬 날갯짓을 하고 호기롭게 뛰어다니지만 어두워지면 새로운 잠자리가 익숙지 않아 보통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어려서 몸에 밴 버릇은 평생을 간다는 말인데, 이 말의 이면에는 사람이 태어나서 세 살까지는 평생을 좌우할 수 있는 버릇이 형성되는 시기라는 뜻도 담고 있다 하겠다. 닭도 마찬가지다. 닭의 일생의 건강은 부화해서 첫 한 달을 어떻게 보냈는지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이 시기는 이른바 가소성이 가장 큰 때여서 강한 체질
동물들의 새끼는 다들 귀엽고 사랑스럽다. 어린 병아리도 마찬가지다. 나는 부화장에서 깬 지 하루 된 어린 병아리를 받아오는데, 첫날 녀석들은 너무 작고 가녀린 모습이어서 안쓰러움을 자아낸다. 눈은 온통 까만색으로 마치 쥐눈이콩처럼 보이는데, 살갗이 너무 얇아 눈을 감아도 검은 빛이 배어나온 듯 눈자위가 거무스름하다. 열흘 정도 지날 무렵 가까이서 자세히 들
지금부터 원고지에 닭을 그려보려 한다. 우리가 키우는 닭의 품종은 하이라인 브라운이다. 하이라인은 서양의 어느 육종회사 이름이라 하고 브라운은 말 그대로 닭의 깃털 색깔인 갈색을 이름으로 정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대부분의 달걀은 이 닭이 낳은 것이다. 산란계는 크게 백색계와 갈색계로 나뉘는데, 갈색계 닭이 백색계보다 체격은 약간 작고, 성격이 덜
최근에 달걀을 배달해주는 세대수를 많이 줄였는데, 얼마 전까지 순천과 벌교에 걸쳐 1주일에 모두 300세대 정도에 달걀을 배달했다. 배달해 온 달걀을 받거나, 대금 결제, 1줄 들이 빈 달걀 용기를 되돌려 주는 일, 달걀의 소비 행태 등에 있어 세대마다 집주인의 개성이 드러난다. 초인종을 누르면 금방 안에서 대답이 들리고 바삐 문을 열어주는 집이 있다. 우
늙어가는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화투판에는 팻발이 있고, 여자들 얼굴에는 화장발이 있다. 배경이 좋은 사람들에게 끗발이 있고, 성직자들에게 영발이라는 게 있다면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신호발과 승강기발도 있을 터이다. 계란을 들고 아파트 현관 앞에 서면 언제나 승강기에 신경이 쓰인다. 승강기가 18~19층에 있으면 약간 짜증스러워지고,
올해로 만 11년째 한 주에 두 번씩 순천시내의 아파트를 돌며 아내와 함께 달걀을 배달하고 있다. 물론 내가 키운 닭이 낳은 달걀이다. 주부들이 시장이나 목욕하러 갈 때 가지고 다닐법한 바구니에 달걀을 몇 줄씩 담아 들고 다니는 것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처음에는 약간 망설이기도 했다. 오후 서너 시에 달걀을 싣고 집을 나와 밤 10시를 넘겨야 끝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