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닭과 달걀, 그리고 사람들 ⑦

▲ 김계수 달나무 농장
식물에게 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주거지를 옮기는 것은 가장 큰 스트레스 중 하나일 것이다. 닭도 마찬가지여서 좁은 병아리 칸에서 벗어나 그들이 평생을 살게 될 넓은 우리로 옮겨 놓으면 처음에는 매우 당황하고 어리둥절해 한다. 조금만 지나면 넓은 공간에서 자유를 만끽하려는 듯 힘찬 날갯짓을 하고 호기롭게 뛰어다니지만 어두워지면 새로운 잠자리가 익숙지 않아 보통 3일 정도는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처럼 날카롭고 요란하게 울어대다가 잠이 든다. 따라서 병아리는 그들이 평생을 살아갈 우리에서 처음부터 키우는 것이 가장 좋다고 볼 수 있다.

큰닭 우리로 옮겨진 병아리는 석달 후에 산란을 시작할 때까지 몇 가지 환경의 변화를 거쳐야 한다. 체격이 커짐에 따라 사료도 입자가 굵은 것으로 두어 번 바뀌어야 하고, 체격에 걸맞게 먹이통의 크기도 중병아리용, 큰닭용으로 달라져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는 항상 천천히,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닭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우리 닭장에는 한 칸에 먹이통이 4조 2열로 여덟 개가 들어 있는데, 이것을 바꿀 때는 하루에 두 개씩 나흘에 걸쳐 바꾼다. 바꾸는 과정에서 닭들은 새로운 먹이통을 피하고 예전의 익숙한 먹이통에서 주로 먹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에는 사료의 섭취량이 약간 줄어드는 것 같다. 사료를 바꿀 때도 마찬가지다. 사료를 섞을 때 일주일 정도 기간을 잡아 이전에 먹던 사료와 새로운 사료의 배합 비율을 조금씩 바꿔 가면서 대체해야 닭들이 새로운 사료에 무리 없이 적응한다.

이 시기에 닭들이 반드시 해내야 할 또 하나의 숙제는 횃대에 올라가서 자는 것이다. 병아리가 55일 무렵이 되면 남북으로 긴 직사각형 모양을 한 우리의 뒤쪽에 횃대를 설치한다. 보름 정도 지나 횃대에 익숙해지는 70일 무렵 병아리들이 저녁 잠자리를 잡으려 할 때 막대기를 들고 들어가 횃대에 올라가서 자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러나 닭은 세상에서 가장 고집스러운 동물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동안 뒤쪽보다는 좀더 밝은 앞쪽 바닥에서 자던 녀석들을 어렵사리 막대기로 몰아 횃대에 올려놓고 옆칸으로 가면 우르르 내려와 예전에 잠자던 앞쪽으로 기를 쓰고 몰려가려 한다. 밤눈이 어두운 닭들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이런 씨름을 반복해야 한다. 이 과정을 날짜를 거르지 않고 닷새 정도 해야 웬만큼 습관을 바꿀 수 있다.

닭이 횃대에서 자는 습관을 들이는 것은 이후 닭의 건강과 산란에 관해 매우 중요하다. 횃대에서는 발가락의 힘만으로 횃대를 붙잡고 자기 때문에 다리에 힘이 길러진다. 사람들은 닭이 마치 똥 누듯이 쉽게 알을 낳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자세히 보면 엉덩이를 바닥에 거의 붙이고 상체를 위로 세워서 꽤 긴 시간 힘을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때는 닭의 붉을 얼굴이 더욱 붉어지고 때로는 알을 낳는 순간 끙 하는 신음을 내는 것도 보았다. 즉 닭의 산란도 엄연한 출산 행위로써 이 때 다리가 튼튼해야 알을 잘 낳는다는 것이다. 닭이 바닥에서 잘 때에는 가슴이 몸을 지탱하기 때문에 다리 힘을 기를 수 없다. 또한 횃대에 오르는 버릇이 늦은 닭은 나중에 알을 산란상자가 아닌 바닥에 낳기 쉬운데, 그런 경우 붉은 항문이 다른 닭에게 노출되어 공격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닭이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면 생명체들에게 있어서 환경의 급격한 변화는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도 20대 때는 혁명이라는 말에 가슴이 설레던 적이 있었다. 요즘 세태에서는 전혀 실감할 수 없지만 청년 시절에는 누구나 한번쯤 혁명가가 된다고 했다던가. 그러나 급격한 사회체제의 변화는 아무리 훌륭한 선의의 외피를 두르고 있다고 해도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유토피아로 가는 길이 아니라 개인에게는 폭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좋은 삶, 좋은 세상을 위해서는 앞서가는 사람들의 기획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는 구성원 모두의 각성이 우선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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