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지러지는 아기 울음 닮은 저녁 무렵 병아리 울음

▲ 김계수/달나무 농장
동물들의 새끼는 다들 귀엽고 사랑스럽다. 어린 병아리도 마찬가지다. 나는 부화장에서 깬 지 하루 된 어린 병아리를 받아오는데, 첫날 녀석들은 너무 작고 가녀린 모습이어서 안쓰러움을 자아낸다. 눈은 온통 까만색으로 마치 쥐눈이콩처럼 보이는데, 살갗이 너무 얇아 눈을 감아도 검은 빛이 배어나온 듯 눈자위가 거무스름하다. 열흘 정도 지날 무렵 가까이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고 까만 동공 주변으로 짙은 청회색의 테두리가 나타나고 다 크면 이 테두리는 황갈색으로 변한다.

동그란 머리 끝에는 짧고 앙증맞은 부리가 붙어 있다. 간혹 위쪽 부리 끝에 작고 흰 반점이 붙어서 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부화한 병아리의 부리 끝을 전기 인두로 잠깐 지진 흔적이다. 이것은 나중에 닭이 컸을 때 날카로운 부리 끝을 무디게 해서 모이를 골라먹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보통 마리당 천 원 하는 병아리 값에 이 작업 비용이 30원 정도 추가된다. 디비킹이라 불리는 이 작업은 위쪽 부리의 발육을 더디게 해서 단단하고 길어야 할 위쪽 부리가 오히려 아래쪽 부리 위에 얹힌 모양으로 되어 사람으로 치면 옥니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부리가 한쪽으로만 자라서 위쪽 부리가 옆으로 휘어지는 기형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 우악스런 ‘문명’의 혜택을 받은 닭은 봄철 싸움이 심할 때 공격력이 떨어져 경쟁에 약한 닭을 지켜주는 효과는 있다. 그러나 닭은 먹이 활동을 하면서 발과 부리로 바닥을 후비는 게 본성인데 이 디비킹이라는 작업은 가축을 대규모로 사육하는 인간(사육자)의 편의를 위해 동물의 본성을 억제하고 방해하는 것이다.

주황색의 가느다란 발가락은 아직 세상의 때를 묻히지 않아 투명한 느낌으로 반짝거리는데, 발가락 끝에는 우윳빛 발톱이 마치 생선의 작은 가시처럼 박혀 있다. 어떤 병아리들은 다른 병아리의 발가락을 물고 늘어지기도 한다. 온몸이 솜털로 뒤덮인 병아리의 뒷모습을 보면 항문이 어디쯤 붙어있을까 항상 궁금하다. 항문 부위가 매끈한 곡선인데다 부드러운 솜털에 똥 묻은 흔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내 눈에 병아리는 물 먹을 때가 가장 귀엽다. 물통에 부리를 잠깐 담갔다가 금방 고개를 높이 쳐들고 눈을 깜박이며 작은 부리를 오물거린다. 어린 병아리는 갓난아이들처럼 잠을 많이 자고 기지개도 자주 켠다. 언젠가 병아리가 밥 먹다 앉아서 꾸벅꾸벅 졸다 코방아를 찧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녀석들의 기지개는 한쪽 날개와 다리를 뒤쪽으로 곧게 쭉 펴는 것이다. 나는 양계를 시작한 첫해에 육추상 옆에 쭈그리고 앉아 한 시간 넘게 녀석들의 노는 양을 구경한 적이 있다. 그 때 어머니도 와서 보시고 ‘이것들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고 하셨다.

집에 온 지 사흘이 지나면 날개 깃털이 맨 먼저 돋기 시작한다. 지금은 닭의 나는 기능이 거의 퇴화되어 길짐승처럼 살지만 애초에는 이들이 날짐승이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다음으로 꼬리와 몸통에 깃털이 돋고, 마지막으로 운동과 관련이 가장 적은 머리에 깃털이 나면 한 달이 지난다. 이 시기에 수평아리의 머리에는 벼슬도 돋기 시작하는데, 짧은 깃털 사이로 솜털이 군데군데 박혀 있는 모습은 여드름이 송송한 사춘기 아이들의 아직 균형 잡히지 않은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어린 병아리는 어둠을 아주 싫어한다. 해가 저물어 어둠이 조금씩 깔리기 시작하면 낮에 그렇게 잘 놀던 녀석들이 아주 날카로운 소리로 일제히 울기 시작한다. 갓난아기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와 많이 닮았다. 이 두 가지 소리는 귀청을 후벼 파듯 아주 요란하고 자극적이어서 특별한 주파수를 갖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서울에 살 때 언젠가 이웃집에서 들리는 갓난아기의 울음소리는 그 집에 찾아가 아기 엄마를 때려주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켰었다. 자신들을 보살펴주는 어미닭이 없는 병아리들은 서로 촘촘히 달라붙어 한 덩어리가 된 뒤에야 비로소 울음을 그친다. 그 소리들은 갓 태어난 어린 생명들이 그들에게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을 어미에게 강력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허락한 조물주의 숨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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