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의 다른 습성들

▲ 김계수
달나무농장
닭은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롭고 낯선 것에 대한 경계심이 매우 강하다. 언젠가 씀바귀를 꺾어다 닭장 안에 던져 주었더니 닭들이 웅성거리며 씀바귀 주위에 원을 그린 채 목을 길게 빼서 낯선 물건을 관찰하고 있었다. 물론 이때는 엉덩이를 뒤로 뺀 채 언제든지 달아날 수 있는 자세를 취한 모습이다. 닭들에게 주는 풀이나 야채는 작두로 짧게 썰어서 사료와 섞어 주기 때문에 통째로 던져진 풀은 닭들에게 매우 낯선 것이었다. 그중에서 그래도 용기가 있는 놈이 먼저 나서서 이 낯선 물건을 부리로 건드려보다가 풀이 움직이면 녀석들은 흠칫 놀라서 뒤로 물러선다. 잠시 이런 행동이 반복되어 이 물건이 저희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벌떼처럼 달려들어 새로운 먹이를 맛있게 뜯어 먹는다.

닭장 안에는 칸마다 먹이통 여덟 개가 네 개씩 두 줄로 놓여 있는데, 사료를 줄 때는 먹이통에 항상 같은 순서로 사료를 부어주어야 닭들이 혼란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사료를 노란 손수레에 싣고 다니면서 주는데, 그 일이 항상 반복되다 보니 닭들은 내가 이 수레를 밀고 나타나면 사료를 받아먹을 수 있다고 느끼며 흥분한다. 내가 다른 일로 수레를 써야 할 때는 닭들이 실망하게 될까 봐 사료를 싣고 다닐 때와는 다르게 수레를 내 몸 뒤에 두고 끌고 다니면 녀석들이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또 먹이를 주는 칸의 순서도 가능하면 항상 하던 대로 하는 것이 좋다. 닭이 산란을 시작해서 1년 정도 지나면 산란율도 떨어지고 달걀의 품질이 안 좋아지기 때문에 1주일 정도 강제로 단식을 시켜 산란을 중지시킴으로써 달걀의 품질을 회복시킨다. 이때 사료를 목마르게 기다리는 녀석들의 앞을 지나쳐서 다른 칸에 사료를 줘야 할 때는 녀석들의 실망하는 모습이 보기에 참 안쓰럽고 미안하기 그지없다.

닭은 행동반경이 참 좁은 동물이다. 양계 교재에는 그게 30미터 안팎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닭들은 혼자서는 무리에서 절대 멀리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안에서 왕따를 당해 문만 열리면 밖으로 뛰쳐나오려는 녀석들도 저녁이 되면 닭장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안타깝게 철망 앞을 배회한다. 나는 처음에 닭장 문이 열렸을 때 날개까지 가진 이 녀석들이 집단으로 멀리 달아나 버리지 않을까 조바심을 내고 이들을 닭장 안으로 몰아넣기 위해 막대기로 때리거나 위협하는 등 거칠게 다룬 적이 있었다. 또 안에서 달걀을 깨먹거나 다른 닭의 항문을 쪼는 버릇이 있는 놈들은 나에게서 발로 걷어 채이거나 목이 붙들려 혼나기도 하는데, 이런 경험이 있는 놈들은 나중에도 나를 보면 두려움을 느끼며 피한다. 반면에 안에서 다른 닭들에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녀석은 내가 들어가면 내 그늘 밑으로 찾아 들어와 보호를 기대하기도 한다. 나는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닭에게도 미약한 형태로나마 영혼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보기에 인간의 폭력은 근원적으로는 상대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으로부터 오는 것 같다. 나는 귀농해서 지금껏 다른 뱀은 죽이지 않았지만 독사는 스무 마리 이상을 죽였던 것 같다. 그것은 독사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내가 농사를 짓고 있는 13년간 나는 물론 동네 사람들과 옆 동네 사람 누구도 독사에게 물린 적이 없었다. 사실 독사들은 저희가 공격당하지 않으면 사람을 잘 물지 않는 것 같다. 인간에게 폭력과 공격성을 야기하는 불안과 두려움은 근원적으로는 상대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에서 오는 것일지 모른다.
양계 초창기에 있었던 일이다. 어떤 닭 한 마리가 닭장 안에서 공중을 날아다녔다.

내가 닭을 키우니 참 대단한 놈이 나온다 싶어 뿌듯했다.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니 녀석은 바닥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처지였다. 녀석은 자구책으로 나는 능력을 개발했던 것이다. 길짐승으로 진화된 닭은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땅 위에서 조달하기 때문에 굳이 날 필요가 없다. 보호와 먹이가 보장된 축사에서는 더욱 그렇다. 실제로 강한 닭들은 품위 있게 천천히 걷되 날지 않는다.

인간의 비행도 그런 것이 아닐까.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고 바다와 대륙을 건너는 것은 삶터에서 자급하고 자족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거나, 문명에 의해 조장된 필요 때문에 느끼는 결핍이 원인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비행의 목적이 일이건 학문이건 관광이건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이다. 나무는 한번 뿌리박은 그 자리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조달하면서 수십 년, 더 나아가 수백 년을 생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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