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는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화투판에는 팻발이 있고, 여자들 얼굴에는 화장발이 있다. 배경이 좋은 사람들에게 끗발이 있고, 성직자들에게 영발이라는 게 있다면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신호발과 승강기발도 있을 터이다.

계란을 들고 아파트 현관 앞에 서면 언제나 승강기에 신경이 쓰인다. 승강기가 18~19층에 있으면 약간 짜증스러워지고, 1층에 있으면 반가운 마음 한 켠에 내가 승강기까지 가는 동안에 이놈이 움직이지나 않을까 마음이 바빠진다. 승강기 오름 버튼을 누른 순간 숫자가 2로 바뀌어버리면 맥박이 조금 빨라질 때도 있다. 간혹 숫자판에 ‘점검중’이 나오면 계란 한 줄을 들고 10여 층을 걸어 올라가거나 옆 라인으로 옥상까지 갔다가 맨 위층에서 걸어 내려오기도 한다. 배달해야 할 집이 고층인 경우 어떤 배달부들은 꼭대기 층을 눌러놓고 배달일을 마친 다음 되돌아오는 승강기를 타고 내려오면서 시간을 아끼는데, 나도 그런 유혹을 느낄 때도 있지만 이건 좀 반칙인 것 같다.

승강기 안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중학생 정도까지 대개 인사를 잘 한다. 그러나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은 배달 바구니를 낀 내 모습에 주민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채고 인사에 인색하다. 요즘 새로 지어진 아파트들은 승강기 안에 거울을 두지 않거나 한 개만 붙어 있는데, 오래된 아파트의 승강기 안에는 출입문을 뺀 3면에 거울을 붙인 곳이 많다. 이런 승강기를 여럿이 탈 때는 시선을 둘 곳이 마땅치 않다. 모르는 사람끼리 거울을 통해 가까운 거리에서 시선이 마주치는 것은 꽤 어색해서 대체로 거울 아래쪽으로 시선을 두는 것이 편하다.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낯설게 느끼는 것 중 하나가 거울이 너무 많다는 것이라는데, 3면에 거울이 붙은 승강기는 좀체 볼 수 없는 내 뒤통수를 볼 수 있어 좋을 때도 있다.

승강기를 혼자 탈 때 나는 거울을 자주 본다. 나이 40이 넘으면 그 사람의 삶이 나이테처럼 얼굴에 새겨진다는 생각에 거울 속 내 모습을 유심히 보게 된다. 배달하는 도중에 본 내 얼굴은 여유나 평온 같은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배달 일이 워낙 시간을 다투는 일인데다 정확한 배달과 수금 등 신경 쓸 일이 많아 얼굴은 좀 긴장돼 있고 무엇엔가 쫒기는 듯한 모습이다. 길을 찾는 사람이 부담 없이 다가와 편하게 말을 건넬 수 있는 얼굴이면 좋겠다는 평소의 바람과는 꽤나 거리가 있는 얼굴이다. 얼굴을 편한 모습으로 꾸며보지만 다음 승강기에서 보면 금방 이전의 얼굴로 되돌아가 있다.

삶이 아름다우면 얼굴도 아름다울 것이다. 20대 전후의 젊은 사람들 얼굴은 예쁘기는 해도 아름다움을 새겨 넣기에는 아무래도 시간이 좀 모자란 듯하다. 얼마 전 우리나라를 찾은 제인 구달이라는 사람을 TV에서 잠깐 본 적이 있다. 1934년 영국 태생으로 50년간 아프리카에서 침팬지를 연구했던 사람이다. 나이 80에 가까운 그의 얼굴은 삶에 대한 긍정, 지혜와 기품, 평화와 배려 등으로 가득 찬 것 같아 눈부셨다. 나이가 들면서 얼굴에 그런 것들을 새길 수 있다면 늙어간다는 것도 꼭 그렇게 경원해야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늙어가는 것을 그렇게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죽음 또한 그러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죽음은 삶에 대한 부정(否定)이나 반명제(反命題)가 아니지 않을까. 삶에 대한 부정(否定)은 죽임이다. 죽음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확실하게 예견할 수 있는 유일한 미래이고 반추해볼 수 없다는 점에서 다른 경험들과는 구분되지만 오히려 아름다운 삶의 누적 끝에 오는 삶의 완성이고 정점이 아닐까. 다음 시처럼.

계란 몇 줄 배달하면서 별 생각을 다 해본다.


<으뜸가는 길> - 헤르만 호이베르스

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일은 무엇?

즐거운 마음으로 나이를 먹고,

일하고 싶어도 쉬고,

지껄이고 싶어도 입 다물고

실망스러운 때 소망하고,

순하게, 조용하게 나의 십자가를 지는 일

젊은이가 힘차게 하나님의 길을 달리는 것을 보아도

시샘하지 않고,

남을 위해 일하기보다는

겸허하게 남의 도움을 받고

힘없어, 이제 남의 도움이 별로 안 될지라도

친절하고 부드러움을 간직하는 일.

늙음이란 무거운 짐은 실은 하나님의 선물.

낡은 마음에, 이것으로 마지막 손질을 가하시나니

참 고향에 가기 위해

나를 이 세상에 매어 놓은 사슬을 조금씩 풀어 가는 일은 참으로 위대한 일.

이러다가 아무 것도 못하게 되는 날이 오면,

이제 그것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일이다.

하나님은 이제 마지막으로 제일 좋은 일을 남겨 주신다.

그것은 바로 기도다. 손은 아무 것도 못해도 마지막까지 합장은 할 수 있을지니!

사랑하는 모든 사람 위에 하나님의 은혜를 빌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하면, 임종의 자리에 하나님의 소리를

‘오너라 나의 친구여, 나 그대를 버리지 않을지니’라는.                      

김계수 
달나무 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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