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의 성과 사랑

▲ 김계수
달나무농장
암평아리가 커서 발정이 오게 되면 따로 키우던 수탉을 암탉 칸에 합사시킨다. 이 때 암탉들이 보이는 반응은 호기심과 경계심이 반반씩 섞여 있다. 닭은 신참자에 대한 텃세가 어떤 동물보다 심한 편이다. 암탉들은 처음에 수탉을 껄끄러운 침입자로 여겨서 피하거나 기가 센 놈은 결기를 세우고 수탉과 겨뤄보려 하는데,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수탉의 무력시위에 금세 제압당한다.

낯선 방에 들어온 수탉들도 처음에는 짝짓기보다는 암탉들을 우선 힘으로 제압하기 바쁘다. 이때 기가 약한 수탉은 떼로 몰려드는 암탉들에 기세가 눌려 슬금슬금 피해 다니는 경우도 있다. 이런 놈들은 수탉 후보군 중에서 벼슬이 크고 체격이 당당해 보이는 놈으로 교체해야 한다.

양계 첫해에는 빈칸에 선발된 수탉과 그보다 숫자가 적은 암탉을 넣어서 짝짓기 훈련을 시켰는데, 이 암탉들은 나중에 닭 구실을 못할 정도로 시달려서 이후에는 그 훈련을 하지 않았다.

짝짓기는 수탉들이 방안의 분위기를 장악하는 2-3일 후에나 이루어진다. 그때까지 암탉들은 수탉 앞이 아닌 내 앞에서 발정난 자세를 취하는데, 크고 강한 수컷에 대한 본능적 선호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러면 나는 쫙 벌린 날개를 손바닥으로 눌러주거나 닭의 성감대로 보이는 항문 아래(사람으로 치면 단전에 해당하는) 말랑말랑한 부분을 손으로 만져주면 짝짓기한 후의 몸짓을 한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속담을 닭에게 가르칠 도리는 없다.

처음 짝짓기를 시도하는 수탉들의 서투른 모습은 밖에서 지켜보기에 민망스러운 경우가 많다. 발정난 암탉의 날개 위로 올라서서 암탉의 뒷덜미를 부리로 물고 짝짓기를 시도하지만 앞으로 고꾸라지기도 하고, 시샘하는 다른 수탉의 방해를 받기도 한다. 전에는 짝짓기라는 말 대신 교미라는 말을 많이 썼다. 닭의 짝짓기를 보면 수탉의 구부리는 꼬리와 암탉의 치켜 올리는 꼬리가 같은 방향에서 부딪히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모종의 신호가 오갔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동물에 있어서는 짝짓기라는 직설적 표현 못지않게 한자어로 된 교미라는 은유적 표현도 꽤 운치가 있는 말이라 생각한다.

수탉이 암탉에게 구애하는 행동을 보면 홍학의 수컷이 암컷의 환심을 사기 위해 우아한 춤을 추는 것과 같은 로맨틱한 모습은 볼 수 없다. 기껏해야 먹잇감이 될 만한 것을 물었다 놓았다 하면서 레너드 코헨과 같은 중저음 목소리로 꾹꾹거린다. 배려와 아량, 중후함이 가득 담겨 있는 목소리다. 그러면 암탉 몇이 달려와 먹는다. 가끔 꽤 많은 수탉들이 작은 나무 막대기나 돌멩이 같은 가짜 먹잇감으로 암탉들을 유혹하는 경우도 있는데, 목소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얌체 같은 행동이다. 물론 달려온 암탉들은 실망해서 금방 돌아선다.

수탉들은 행동보다는 외모와 소리로 암탉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 하는 것 같다. 수탉의 외모를 보면 횃불처럼 타오르는 듯한 머리 위의 벼슬과 부처님의 귀처럼 길게 드리워진 턱벼슬, 부리부리한 두 눈, 길게 포물선을 그린 꼬리 깃털 등 말 그대로 위풍당당이다. 닭의 벼슬은 건강과 성적 활력을 나타내는 지표와 같다. 색깔이 선홍색으로 선명하고 크면 건강한 것이고, 이런 암탉들은 알도 잘 낳는다. 몸에 병이 있으면 벼슬의 색깔이 자주색으로 어두워지고 영양이 부실하면 크기가 위축되고 백태 같은 것이 낀다. 벼슬의 상태가 이런 암탉들은 십중팔구 알을 낳지 않아 항문이 쫄아들어 있다. 수탉이 ‘꼬끼오’ 하고 길게 홰를 치는 소리 또한 암탉에게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것이다.

닭은 일부다처형이어서 수탉 한 마리가 암탉을 열다섯 마리 정도 거느릴 수 있고 한 번의 짝짓기로 암탉은 일주일 정도 수정된 알을 낳는다고 한다. 짝짓기는 닭들이 활동하는 낮 시간에 수시로 이루어지지만 사료를 주고 나면 더 활발한 것 같다. 사료를 먹느라 머리를 숙이고 엉덩이를 쳐든 암탉들의 뒤태에서 수탉들이 매력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노련한 수탉들은 독재자처럼 예고도 없이 암탉들의 등 위로 성큼성큼 걸어올라 짝짓기를 하는데 먹이를 입에 물다 짝짓기를 당한 암탉들은 생뚱한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고 몸을 좌우로 부르르 떨며 흐트러진 깃털을 가지런히 한다.

마치 ‘오늘도 모진 놈 만나서 팔베개 베었네. 내 팔자가 그렇지 뭐’하며 옷맵시를 추스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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