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의 갈등과 투쟁

▲ 김계수 달나무농장
동네 할머니들은 ‘닭 손님은 못 본다’고 말한다. 그만큼 닭은 무리에 새로 들어온 닭에 대한 텃세가 심하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우연히 다른 칸의 수탉이 옆 칸으로 들어간 경우 싸움이 일어나는 데는 1분이 걸리지 않는다. 암탉도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수탉은 특히 외부의 침입자에 대항해서 무리를 지키려는 본능이 매우 강하다. 가끔 농장에 견학 온 사람들이 달걀을 수거하러 우리 안으로 들어간 경우 수탉에게 공격당하는 경우가 많다. 어린아이나 여자들은 더 쉽게 공격한다. 상대의 기를 가늠하는 모양이다. 가끔 주인인 나한테도 대들다가 혼쭐이 나기도 한다. 안에서는 가만있다가도 내가 밖으로 나오면 철망 안에서 밖을 향해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는 허세를 부리는 놈도 있다. 조금만 더 지체했으면 자기가 가만두지 않았을 거라는 듯해서 내가 다시 들어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하다.

수탉들의 치열한 싸움은 피투성이가 된 채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얇은 턱 벼슬이 찢기기도 하고 벼슬과 하얀 목 깃털에 선혈이 낭자한 가운데 두 눈만 여전히 형형하게 반짝거리는 것을 보면 진 놈이나 이긴 놈이나 비장하고 처연하기까지 하다. 닭의 공격 무기는 부리뿐만 아니라 날개를 접었을 때 뼈가 구부러진 부분, 즉 사람의 팔꿈치에 해당하는 부위도 쓰인다. 싸우면서 날개를 퍼덕거리는 것은 이 날개 뼈로 상대를 가격하는 것이다. 나도 이 공격을 한 번 받은 적이 있는데, 마치 망치로라도 얻어맞은 듯 묵직한 통증이 꽤 오래 지속되었다.

수탉들 간의 갈등은 다른 수탉이 강해지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먹이 먹는 것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암탉을 차지하는 문제에 집중되는 것 같다. 낮은 서열이 짝짓기를 하면 옆에 있던 높은 서열이 그 수탉의 뒷덜미를 쪼아서 짝짓기를 못하게 하거나 옆구리로 밀쳐내고 대신 자기가 짝짓기하는 일은 다반사다. 언젠가 짝짓기 하다가 뒷덜미를 쪼인 수탉이 고개를 들자 이를 공격한 수탉이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뒷걸음질 하는 것을 보았다. 서열이 한참 높은 놈을 본능적으로 공격해버린 것이다. 서열이 낮은 놈은 암탉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홰치는 행동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 인간 세상에서 성욕은 많은 범죄의 배경이 되지만 닭들에게서도 이 본능적 욕구는 서열의 고하를 막론하고 고통의 주된 원인이다.

암탉들 간의 갈등은 싸움보다는 힘이 약한 한 마리를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모습으로 주로 나타난다. 힘이 약한 것으로 드러난 암탉은 도처에서 모든 암탉의 공격을 받기 때문에 먹이를 먹지도 못하고 도망 다니기에 바쁘다. 무리에서 한 번 찍힌 암탉은 사료를 먹지 못해 몰골이 초췌할 뿐 아니라 제가 먼저 낑낑거리며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자세를 낮춘다. 사람들 중에는 신체적인 결함을 가지고도 정신과 영혼의 고결함으로 위엄을 간직하는 경우가 많지만 힘이 약한 동물에게서 그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수탉들은 이런 암탉을 공격하는 데 가담하지는 않지만 싫어한다. 이런 닭을 빨리 격리시키지 않으면 깃털이 다 뽑히고 가죽을 벗겨놓기도 한다.

또 암탉들은 특이한 색깔 특히 붉은색에 대한 공격 본능이 매우 강하다. 양계 초창기에 어느 칸에 닭들이 갑자기 웅성거리고 분위기가 뒤숭숭해서 보니 닭들이 커다란 지렁이 같은 것을 물고 다니는 것이었다. 들어가 보니 암탉 한 마리가 반쯤 눈을 감은 채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는데, 항문 부위가 시커멓게 뻥 뚫려 있었다. 그 닭은 바닥에서 알을 낳다가 붉은 항문이 다른 닭에게 노출되어 쪼이게 되고 나중에 내장까지 뜯긴 것이었다. 주변을 보니 많은 암탉들의 부리에 피가 묻어 있었다. 암탉들의 이런 행동은 일조량과 기온이 올라서 생리적·신체적 활동이 활발해지는 봄철에 주로 나타난다. 이 시기는 자연 상태에서라면 닭의 번식철이어서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공격 성향이 더 강해지기 때문인 것 같다. 이때는 부리와 벼슬에 피를 묻힌 놈들을 골라 시멘트 벽돌에 부리를 피가 나도록 갈아준다. 이런 징벌을 받고도 다른 닭의 항문을 일삼아 기웃거리며 노리고 다니는 암탉은 공격을 주도하는 놈으로 제거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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