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닭과 달걀, 그리고 사람들-최종회

▲ 김계수 달나무 농장
닭의 생애가 있듯이 달걀 또한 한 생애를 겪는다. 어린 닭이 처음으로 낳은 알은 어른 엄지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크기로 아주 작고 모양이나 색깔이 불안정하며 때로는 노른자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로부터 한 달 쯤 지나야 상품화할 수 있을 만큼 아담한 크기가 되는데, 이때부터 서너 달 동안에 낳는 달걀이 맛도 가장 좋고 모양이나 색깔도 예쁘다. 이 시기의 달걀을 깨서 접시에 올려보면 봉긋한 노른자와 그 주변을 둘러싼 묽은 젤리 모양의 중간층, 액체 상태로 퍼지는 세 부분으로 뚜렷이 구분된다. 이때 노른자를 나무젓가락으로 찔렀다 빼면 겉이 그대로 아물기도 하고 이쑤시개를 노른자에 꽂아 접시 위에서 끌고 다닐 수도 있다. 달걀의 품질을 보여주기 위해 흔히 행해지는 퍼포먼스다.

이 시기에 산란율(하루 낳은 달걀의 개수를 암탉 마릿수로 나눈 것)은 90%를 넘기기도 하는데 시간이 흐르면 산란율은 점차로 떨어져서 초산 후 1년이 지나면 50∼60%가 된다. 젊은 닭과 나이 든 닭이 함께 있다면 전체적으로 산란율을 75% 정도로 유지해야 닭이 건강을 해치지 않고 알을 꾸준히 낳을 수 있다고 한다. 산란율은 주로 일조량과 사료양의 함수다. 따라서 해가 길어지고 기온도 오르는 봄에 알을 가장 많이 낳고 혹한기에는 추위에 몸의 열량을 빼앗기기 때문에 산란율이 15% 정도 떨어지는 것 같다.

한여름 무더위 때는 닭들이 지쳐서 알도 적게 낳지만 품질 또한 좋지 않다. 인공으로 냉난방을 하지 않은 환경에서 추워서 죽은 닭은 보지 못했지만 더워서 죽은 닭은 더러 있었다. 한겨울에 바깥 기온이 영하 7∼8도 이하로 내려가면 아침 일찍 낳은 알은 얼어 터지기도 한다. 낳은 달걀을 시장에 넘기면 문제가 없겠지만 소비자와 직거래를 하는 우리 경우에는 겨울에는 달걀이 모자랄까 봐 배달 전에 걱정이고 여름에는 달걀이 좋지 않다는 전화를 받게 될까 봐 배달한 후에 신경이 많이 쓰인다.

닭이 1년 정도 알을 낳으면 산란율도 떨어질 뿐 아니라 색깔과 모양도 들쭉날쭉해지고 껍질도 약해진다. 그러면 봄에는 7일 정도, 가을에는 5일 정도 강제로 단식을 시켜 산란을 쉬게 했다가 사료를 주면 이후 반년 간은 다시 좋은 알을 낳는다. 이 후에도 알은 계속 낳지만 산란율과 품질 면에서 상업적으로 의미가 없어 퇴출하게 되는데, 동네 할머니들에게 3천원에 팔려간 이 녀석들은 이후에도 1년 정도 굵은 알을 잘 낳는다고 할머니들이 좋아한다.

달걀의 맛은 닭의 건강 상태와 사료의 내용에 좌우되는 것 같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방사한 닭이 낳은 알을 선호한다. 자연 상태에서 굼벵이나 지렁이 등을 먹을 수 있는 닭이 낳은 알이 맛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사료에 단백질 함량이 많으면 알이 커지고 탄력은 떨어진다. 오늘날 공장에서 나오는 배합사료에는 단백질 함량이 적정 수준보다 높다고 하는데, 이는 산란율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 아닐까 생각된다. 배합사료만 먹여서 낳는 일반 달걀의 맛이 비릿한 것은 단백질 함량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사료에 포함시킨 어분 때문이라고 한다.

달걀이나 닭고기의 맛은 닭이 건강한 상태에서 풀을 얼마나 많이 먹는가에 달려 있다고 한다. 닭의 사료에는 풀을 30%까지 넣어도 된다고 하고 일본에서 나온듯한 교재에는 풀은 닭이나 알에 분석할 수 없는 신비한 힘을 주는 것 같다는 내용이 있다. 실제로 닭에게 모이를 주고 나면 풀이나 호박, 고구마 등 야채를 알곡보다 먼저 먹는다. 대표적인 육식동물인 고양이나 개가 풀을 자주 뜯어 먹는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달걀을 배달하다보면 유정란과 무정란이 어떤 차이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성분상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학자들의 이야기를 TV에서 봤다는 이야기도 한다. 답하기에 꽤 난감한 질문이다. 두 가지 달걀을 육안으로 구분하기는 어렵다. 유정란은 달걀 노른자에 있는 눈이 더 크고 또렷한 것 같다는 느낌이 있을 뿐이다. 나는 달걀의 맛과 질을 결정하는 것이 유정과 무정의 차이라기보다는 닭이 생활하는 환경과 조건의 차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층층이 쌓인 케이지에 갇혀 밤에도 사료를 먹도록 불을 켜놓은 상태에서 수탉은 구경도 못한 채로 낳은 알이 닭의 본성에 최대한 맞춰진 환경에서 사는 닭이 낳은 알과 같을 수는 없지 않을까. 보이지 않는 것, 혹은 검증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과학은 그래서 좀 미덥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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