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닭과 달걀, 그리고 사람들-16
나는 닭을 키우면서 옥수수와 밀이 주성분인 사료를 하루에 100kg씩 쓰고 달걀은 약 30kg을 얻는다. 물론 달걀이 사람에게 필요한 동물성 단백질을 공급한다고는 하지만 달걀의 총열량을 계산하면 사료로 쓰인 곡물의 절반도 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을 부양하는 능력으로 보았을 때 나는 자원을 매우 어리석게 쓰고 있는 셈이다. 양계 뿐 아니라 현대적인 축산 자체가 이렇게 미친 짓이지만 투입과 산출을 돈으로 환산하면 이득이 되기 때문에 닭농사는 제법 합리적이고 현명한 일로 탈바꿈한다. 나는 이것을 돈이 부리는 마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마술은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마술이고 오늘날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주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들을 인식하면서도 그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너무 어렵다. 그 어려움은 우리가 현대교육과 의료, 자동차와 같은 자본주의적 소비 생활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사실과 직결되어 있다. 현대인들이 물질적 삶과 관련해서 추구하는 가치는 풍요와 편리라는 두 가지로 수렴된다. 이 두 가치에 대한 사람들의 충성은 너무나 강력한 것이어서 소비 생활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사실을 상상하지도 못한다. 그리고 이 두 가치는 오직 화폐를 통해서만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다 많은 화폐를 획득하기 위한 경쟁에 몰입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리석음이나 폐해에 대한 고민은 눈앞의 목적을 성취하는 데 방해가 되는 악덕으로 여겨질 뿐이다.
큰 아이가 대학을 다니고 보니 들어가는 돈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다. 이 상황에서 닭농사를 그만둔다고 하면 우선 가족과 친지들로부터도 강한 저항과 비판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평균 국민소득의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입을 안겨주는 일이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대안이 없는 한 이 일을 계속해야 한다고 할 것이 뻔하다.
미국에 쉐브론텍사코라고 하는 거대 석유회사가 있다고 한다. 이 회사가 아마존 밀림에서 석유를 채굴하면서 주변 지역에 오염을 줄일 수 있는 고급 기술이 있는데도 아주 원시적인 방법을 써서 그곳을 터전으로 살고 있는 인디오 원주민들의 삶을 황폐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회사가 원래 사악한 유전자를 가졌기 때문에 한 일일까. 오늘날 1등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무한경쟁의 상황에서 생존과 시장지배력이라는 지상과제를 두고 일상화된 절박함을 느끼지 않는 기업은 없을 것이다. 고급 기술에는 당연히 많은 비용이 들어갈 터인즉 이들은 가능하면 적은 비용으로 수입을 최대화하려고 한 일이었을 것이다.
생존을 위해서 불가피하다는 명분으로 자신의 경제 활동에서 짓는 어리석음과 폐해를 정당화하려 한다면 우리는 돈의 마술에 갇혀 있는 셈이고, 또한 우리 마음속에도 작은 쉐브론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마음속의 작은 쉐브론을 정확하게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밖의 커다란 쉐브론도 바로 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