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달걀배달부 - 내가 본 닭과 달걀, 그리고 사람들 ④

 
지금부터 원고지에 닭을 그려보려 한다. 우리가 키우는 닭의 품종은 하이라인 브라운이다. 하이라인은 서양의 어느 육종회사 이름이라 하고 브라운은 말 그대로 닭의 깃털 색깔인 갈색을 이름으로 정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대부분의 달걀은 이 닭이 낳은 것이다.

산란계는 크게 백색계와 갈색계로 나뉘는데, 갈색계 닭이 백색계보다 체격은 약간 작고, 성격이 덜 까다로워서 키우기에 무난하다고 한다. 그러나 옛날에 산란계의 주종이었던 레그혼 같은 백색계 닭이 거의 사라지게 된 것은 이런 특성의 차이보다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겉이 흰 달걀보다 붉은 달걀을 더 선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색깔이 진한 것이 영양적으로 더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선입관 때문이다.

진하고 화끈한 것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이런 성향은 달걀 노른자에도 적용되는데, 노른자가 진한 것일수록 좋은 달걀일 것이라는 생각은 급기야 생산농가들로 하여금 노른자가 거의 붉은색으로 보일 수 있도록 사료에 색소를 첨가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달걀 노른자가 붉은 것이 정상이라면 애초에 노른자가 아니라 붉은자로 불리지 않았을까. 지금도 소비자들 중에는 노른자가 진하지 않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이 어쩌다 있는데. 노른자의 색깔이 그 달걀의 영양 상태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하이라인 브라운이라는 품종의 가장 큰 특징은 암수의 색깔이 확연히 다르다는 점일 것이다. 수평아리는 흰색에 가까운 노란색인데, 나중에 흰색으로 성장하고, 암평아리는 노란색이 섞인 갈색으로 나중에 완연한 갈색이 된다. 옛날에 병아리 감별사라는 꽤 전문적인 직업이 있었는데, 병아리 색을 이렇게 달리하고 보니 부화장에서는 병아리를 감별하는 데 따르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품종이 우리나라에 널리 보급된 것은 부화장의 이런 사정도 분명히 작용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런데 무정란 농장에서는 수컷이 아예 필요 없고, 유정란 농장에서도 대개 암탉 15마리에 수탉 한 마리가 필요하다보니 부화장 입장에서는 절반정도 태어나는 수평아리가 반갑지 않은 존재다. 그래서 수평아리는 우리에게 공짜로 주거나 하고 남은 것들은 학교 앞 문방구에서 아이들 호기심을 자극하며 헐값에 팔려나가는 신세가 된다.

내가 처음 양계를 시작하면서 병아리를 받으러 갈 때도 새벽에 일어나 목욕재계하고 조신한 마음으로 전북 고창까지 먼 길을 되도록 잡생각 하지 않고 닭 잘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다녀왔었다. 체격이 작은 가축은 워낙 질병에 약하고 기르기 까다롭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너 해 지나면서 닭 기르기에 제법 이력이 붙고 별 탈 없이 닭이 크는 것을 보면서 애초에 가졌던 조신하고 정성스런 마음도 슬며시 무뎌져 버렸다. 시작하고 서너 해가 지난 이때가 가축 기르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위험한 때라 한다. 처음에는 잘 모르기 때문에 겸손한 마음으로 작은 변화에도 긴장하고 경험자에게 물으면서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는데,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방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비단 가축 기르는 일에서만 일어나겠는가. 바둑 격언에 기칠운삼(技七運三)이라는 말이 있다. 바둑의 승패를 좌우하는 요인으로 실력이 7이면, 운이 3 정도 작용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따와 성칠기삼(誠七技三)이어야 하겠다고 말한다.

가축 잘 기르는 데에는 기술보다 정성 곧 사랑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가축뿐만 아니라 자식 키우고 작물 기르는 일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할 말이다. 생명 대하는 일에 정성보다 기술이 앞설 수 없다. 그러나 요즘에는 뭔가를 키우는 일에도 관련 지식을 습득하는 데 더 열을 올린다. 기술로써 생명현상을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간은 겸손으로부터는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다.                  

김계수 
달나무 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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