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닭과 달걀, 그리고 사람들-17

▲ 김계수
달나무농장
닭에게 흔히 나타나는 전염성 질환으로는 뉴캐슬병과 전염성기관지염, 계두 등이 있다. 계두는 닭의 벼슬을 모기가 물어서 머리 전체가 부스럼 투성이가 되어 잘 먹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 병은 병아리가 70일 정도 됐을 때 약액을 묻힌 침으로 날개의 살갗을 찌르는 예방 접종(백신)을 하면 평생 걸리지 않는다. 뉴캐슬병과 전염성기관지염은 공기로 전염되는 세균성 질환으로 역시 병아리가 30일 되기까지 먹는 물에 타서 주는 백신을 하면 크게 걱정하지 않고도 닭을 키울 수 있다. 병아리 때 흔히 나타나는 콕시듐이라는 병은 흙 속에 있는 곰팡이 포자가 장에 흡착되어 피똥을 싸는 것인데 여기에는 예방백신이 없고 바닥을 최대한 건조하게 유지하는 것이 대비책이다.

나는 양계 교육을 받으면서 그곳에서 가르치는 방식대로 닭을 키우면 백신도 필요 없다는 말을 듣고 그대로 따라 해서 양계 첫해에 크게 낭패를 본 일이 있었다. 기온의 일교차가 매우 큰 봄날 닭들이 사료를 잘 먹지 않고 산란율이 크게 떨어지며 시들시들해지고 몇 마리는 죽기도 했다. 사람의 감기와 비슷한 전염성기관지염이었다. 나는 달걀 소비자들에게 편지로 상황을 알리고 경험자에게 도움을 받아 항생제 없이 치료를 하기로 했다. 바닥을 생석회와 숯가루로 소독하고 볏짚을 새로 깔아주고 밤에는 각종 효소와 현미식초를 희석한 물을 닭의 머리 위에 스프레이로 뿜어 줬다. 또 현미식초를 희석한 물에 멥쌀 현미를 12시간 정도 담가 불렸다가 사료에 섞어주었는데, 이것은 질병으로 약해진 닭의 소화력을 돋우는 데 최선이라 한다. 이후에도 닭이 사료를 잘 먹지 않았을 때 이 처방은 효과가 아주 컸다. 나중에는 김치 국물이 효과가 있다고 해서 난생 처음으로 김치를 담가 닭이 먹는 물에 넣어주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을 나에게 알려준 양계 경력 30년 농부는 불린 현미와 김치 국물 처방은 서양 사람들은 알 턱이 없는 것이라며 자부심을 가지고 말했다.

귀농 초기에 몇 백 마리 닭에 생계를 의존하고 있던 나는 닭이 앓는 동안 세상이 온통 흐려 보였다. 깊은 밤에 닭의 숨소리를 듣기 위해 닭장으로 갈 때, 아침에 일어나 어제 준 사료를 얼마나 남겼는지 점검할 때, 횃대 밑에 똥을 살필 때, 산란 상자의 문을 들출 때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일을 하기 싫었다. 어제보다 더 나빠진 모습을 보게 될까봐 두려웠다. 미세한 긍정적 변화에 마음이 밝아지다가도 반대의 현상을 보고는 금방 마음이 무거워진다. 다행히 닭들은 서서히 회복되었고 이후에는 병아리 키우면서 백신은 빠짐없이 하게 되었다.

닭의 건강은 벼슬의 모양과 사료 먹는 양, 산란율, 똥의 상태 등으로 가늠할 수 있다. 건강하지 않은 닭은 사료 섭취량이 줄고 선홍색이었던 벼슬의 색깔이 어두워지며 위축된다. 당연히 산란율도 낮아지고 낳은 알도 껍질이 허옇거나 꺼칠꺼칠하고 크기는 작아진다. 똥은 회갈색에 흰 크림 같은 것으로 겉이 도포된 모양으로서 무르지 않아야 건강한 닭이 눈 것이다. 닭이 병에 걸리면 검거나 녹색을 띤 점액질 똥을 눈다. 따라서 사료의 양은 닭의 마릿수에 비례해서 날마다 정해진 양을 주어야 하고 산란 상태도 기록해 두어야 변화를 빨리 알아챌 수 있다. 또 눈이 밝아야 가축이 나타내는 작은 변화도 빨리 감지하고 대처할 수 있다. 작물이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하듯이 가축도 주인이 애정을 가지고 자주 살펴보는 것보다 좋은 기술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건강과 관련해서 음식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지만 사람이나 가축에게나 건강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는 첫 번째가 공기, 둘째가 물이고 음식은 그 다음일 것이다. 하루 중 섭취하는 양을 봐도 그렇고 그것들을 섭취하지 않았을 때 생명체가 견딜 수 있는 시간을 생각해봐도 그렇다. 따라서 축사의 위치와 구조는 채광과 통풍, 배수가 잘 되도록 고려해야 한다. 무창계사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창문을 두지 않고 외부의 위험요소가 유입되는 것을 차단한 채 인공조명과 통풍, 완벽한 소독 시설을 갖추고 그 조건에 맞는 사료로 닭을 키우는 것이다. 기술로써 생명을 관리하겠다는 생각의 극치다. 어떤 농사든 관리와 (자연상태에의)방임 사이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할 것 같은데 가능하면 관리를 줄이고 생명체가 갖고 있는 본래의 생명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 수월하고 현명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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