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지나치게 높은 인간 지능

▲ 김계수 달나무 농장
닭은 넉 달 정도 키우면 알을 낳기 시작한다. 부화해서 100일 무렵이 되면 암탉의 벼슬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하고 색깔도 더욱 붉어진다. 얼굴도 붉어지기 시작하는데 초경을 시작할 무렵의 여자 아이들 얼굴이 복사꽃처럼 화사해지는 것과 같은 생리적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다. (어떤 신심이 깊은 성당의 자매님이 와서 이 모습을 보고 하느님의 섭리를 떠올리기도 했다.) 이때에 내가 모이통을 들고 들어가면 날개를 약간 벌리고 바닥에 달라붙어 바들바들 떠는 동작을 하는 녀석들이 생긴다. 큰 죄를 짓고 석고대죄하는 듯한데, 이때는 몸이 많이 경직되어 발로 건드리면 몸뚱이가 굴러갈 것 같다. 나는 맨 처음 닭의 이런 행동을 보고 당황스러웠는데, 발정이 온 것이었다. 수컷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면 따로 키우던 수탉을 암탉 15마리당 한 마리 비율로 합사한다.

(부화장에서 주는 안내 책자에는 이 품종의 닭은 126일만에 초산을 시작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산란을 시작하는 시기는 닭에 따라 편차가 커서 모든 닭이 알을 낳는 데는 이 날짜 전후로 대개 한 달이 걸리는 것 같다. 닭이 초산을 시작해서 보름 정도 기간 동안에 낳는 달걀을 초란이라 한다. 보통 달걀 무게의 2/3 정도 되는데 꿩알처럼 아담하게 예쁜 모양이다. 생리적으로 가장 왕성한 시기에 낳은 것이라 단단하고 탄력도 좋아 특별히 이것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많다. 내가 먹어봐도 닭이 일생 동안 낳는 달걀 중에서 맛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이 시기에 낳는 달걀 중에는 노른자가 두 개 들어 있는 쌍란이 특히 많다. 생리적으로 가장 활성화된 시기라서 그러는 건지 아직 산란 초보라서 실수가 많은 탓인지 잘 모르겠다.

닭은 알을 낳을 때 약간 높고 어두운 곳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걸어가면서 알을 흘리듯 낳는 녀석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닭들은 알을 낳으면서 상당한 산고를 겪는다. 산기를 느끼면 행동이 둔해지면서 합판으로 지은 산란상자로 들어가 한참을 앉아 있다가 마지막 순간이 되면 일어서서 상체를 거의 수직으로 세우고 엉덩이를 바닥에 가까이 댄 상태에서 여러 번 힘을 써야 된다. 이 자세는 알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깨지는 것을 막는 부수적 효과도 있지만 알을 보다 수월하게 낳기 위한 본능적인 자세인 것 같다. 오늘날 병원에서 아이를 출산할 때 요구하는 자세가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으로 산모를 훨씬 힘들게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볼 일이다. 때로 거의 주먹만 한 알을 낳는 닭이 있는데, 이때는 항문이 찢어지게 되고 이것이 반복되면 항문이 딱딱해져서 알을 밖으로 배출하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헛힘만 쓰는 경우도 있다.

오전 10시 무렵 알을 수거할 때에 산란상자의 문을 갑자기 열면 산란중인 닭들은 짜증을 내거나 놀라서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문을 열기 전에 노크를 두세 번 하고 나면 닭들의 반응이 훨씬 누그러진다. 짐승을 대하는 데에도 최소한의 에티켓이 필요하다. 알을 꺼낼 때 어떤 닭은 날개를 들어 품 아래 있는 알을 꺼내는 데 협조하는 듯 순한 닭이 있고, 어떤 녀석들은 내 손등을 콕콕 쪼아대는 앙탈을 부리기도 한다. 나는 늘 짐승들에게도 개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쨌든 녀석들 눈에 나는 오갈 데 없는 알도둑일 것이다.

양계 10년이 넘은 지금도 신기한 것 중에 하나는 알이 몸 속에서 금이 가거나 구멍이 뚫린 흔적이 있는데, 금이 간 알은 아파트 외벽 도색하기 전 접착제로 틈을 메꾼 것처럼, 구멍은 접착제 한 방울을 그 자리에 정확하게 떨어뜨린 모양을 하고 나온다.

그 작은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이런 신비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언젠가 도자기 하는 친구의 전시회를 보고 오면서 나도 이런 특이한 계란을 모아 전시회를 해도 되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좀 아둔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닭대가리’라 부른다. 사실 닭은 썩 영리하지도 않을 뿐 더러 매우 고집스럽기도 해서 낮은 지능을 조롱하는 데에 그 이름이 동원되는 것 같다. 그러나 닭은 그 지능으로도 제 목숨을 유지하고 자손을 번식시키는 데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

세상을 멍들고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닭의 낮은 지능이 아니라 유전공학이나 핵발전 같은 기괴한 것을 고안해 낸 인간의 지나치게 높은 지능이다. 닭은 풀과 한 줌의 옥수수로 소박하게 배를 채우고 거의 매일 산고를 감내하면서 맛있는 달걀을 낳다가 종국에는 몸을 고기로 제공하며 그들의 분변과 깃털은 땅을 기름지게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공을 밖으로 드러낼 줄 모른다. 인간 세상에서 이 정도의 미덕을 갖춘 사람도 그리 흔치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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