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배달 11년, 세월따라 사람도 세상도 변해간다

▲ 김계수
달나무농장
올해로 만 11년째 한 주에 두 번씩 순천시내의 아파트를 돌며 아내와 함께 달걀을 배달하고 있다. 물론 내가 키운 닭이 낳은 달걀이다. 주부들이 시장이나 목욕하러 갈 때 가지고 다닐법한 바구니에 달걀을 몇 줄씩 담아 들고 다니는 것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처음에는 약간 망설이기도 했다. 오후 서너 시에 달걀을 싣고 집을 나와 밤 10시를 넘겨야 끝나는 일이다. 추석과 설 연휴만 빼고 그 동안 이 일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으니 지금 생각하면 내가 제법 대견해 보이기도 한다.

같은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자주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택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바쁘다. 무거운 짐을 두 개씩 들고 승강기를 타고, 그 안에서 배달할 집에 전화를 하고, 계단을 퉁퉁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내려간다. 명절 때면 물건이 훨씬 많아져 밤늦은 시간에 만난 그들은 대개 녹초가 된 모습이다. 방문 과외 교사들도 바쁘기는 매한가지다. 항상 종종걸음으로 움직이며, 승강기 안에서 전화기와 컴퓨터를 겸한 기계에 뭔가를 체크하고, 어느 집 엄마에게 전화를 하고, 초인종을 누르며 친근한 톤으로 아이의 이름을 크게 부르는 소리는 좀 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세탁물을 몇 개씩 한 손에 들고 배달하는 아주머니도 꽤 힘들어 보인다. 긴 옷은 높이 쳐들어야 하고, 무겁다고 해서 바닥에 둘 수도 없다. 배달하려는 집에 문이 잠겨 있으면 우리는 대문 앞에 달걀을 두고 올 수 있지만 그들은 세탁물을 다시 들고 돌아가야 한다.

늦은 시간에 양념 치킨을 배달하는 사람들은 우리에게는 좀 야속한 사람들이다. 저녁을 먹지 않아 배가 출출한 때에 승강기 안에 번지는 진한 양념 냄새는 내 코에 좀 가혹해서 일 끝내고 한번 먹어볼까 하는 충동을 느끼게 한다. 이런 사람들과는 약간의 유대감도 있어 때로는 승강기 안에서 서로의 고충을 잠깐 얘기하기도 하고, 배달을 마치고 같이 내려갈 수 있도록 승강기 문을 붙잡아 주는 배려가 오가기도 한다. 월드컵 경기라도 있으면 이들을 더욱 자주 만나게 되는데, 우리는 아파트 인도를 걸으며 집집에서 갑자기 터지는 함성 소리로 골 소식을 듣는다.

11년 세월이 결코 짧지 않아서 그동안 세상이 많이 변했다. 처음 시작할 때 코흘리개 초등학생이었던 아이가 지금은 내가 올려봐야 할 만큼 키가 큰 청년으로, 혹은 군복을 입은 모습으로 달걀을 받기도 하고, 엄마 뱃속에 있던 아이가 어느덧 자라나 대문을 열어 주기도 한다.

언젠가부터 아파트 현관문 열쇠가 디지털 번호키로 바뀌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순진해서 한손으로 번호판을 가리고 번호를 누르면서 한편으로 뒤에 서있는 나를 흘낏 쳐다보기도 한다. 전에는 금속 열쇠에 줄을 묶어 아이들 목에 목걸이처럼 걸려 있었던 것이다. 어른들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번호를 누르지만 뒤에 서 있는 내가 신경 쓰일 것이다. 나는 내가 거기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 주인과 약간 떨어진 곳에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두어야 한다.

시간이 좀더 흘러 새로 지은 아파트들은 공동현관에도 번호 키를 붙여 진입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번호를 눌렀을 때 흘러나오는 전자음은 낮보다는 밤에 더 크고 자극적이어서 듣기에 그다지 편하지 않다. 아파트 주민과 함께 그 앞에 서면 나는 또 세대 현관문 앞에서처럼 새로운 에티켓을 보여줘야 한다. 열쇠와 관련된 새로운 기술이 가져온 편리함은 동행하는 옆 사람에게 민망함을 줄 뿐 아니라 집주인의 품격도 높여주지 못한 것 같다. 그래도 이를 발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있을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김계수 
달나무 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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