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소비 행태에 따라 다양한 집주인 개성

▲ 김계수 달나무 농장
최근에 달걀을 배달해주는 세대수를 많이 줄였는데, 얼마 전까지 순천과 벌교에 걸쳐 1주일에 모두 300세대 정도에 달걀을 배달했다. 배달해 온 달걀을 받거나, 대금 결제, 1줄 들이 빈 달걀 용기를 되돌려 주는 일, 달걀의 소비 행태 등에 있어 세대마다 집주인의 개성이 드러난다.

초인종을 누르면 금방 안에서 대답이 들리고 바삐 문을 열어주는 집이 있다. 우리가 늘 시간에 쫒기면서 배달 일을 한다는 것을 알고 이를 배려하는 것이다. 월말에 달걀 값을 계산할 때도 잔돈까지 정확하게 준비해두고 있다가 달걀과 맞바꿈으로써 우리에게 시간을 절약해준다. 이런 집에서는 대체로 잘 먹겠다거나 감사하다는 말을 듣게 되는데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계란을 선물하는 것으로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어떤 집에서는 삼겹살을 굽고 있다가 달걀을 받으면서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얹어 주기도 하고 또 다른 집에서는 소박한 나물 안주에 막걸리를 먹다가 나를 억지로 끌고 들어가 막걸리 한잔에 10여분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마음은 바쁘지만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 것도 소중한 일이다 싶다. 모두 되로 주고 말로 받는 느낌이다.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한 주에 달걀을 한 줄씩 소비한다. 한 줄 반, 두 줄, 석 줄씩, 때로는 격주에 한 줄씩 소비하는 집도 있다. 전에는 달걀 10개 한 줄이라는 말이 당연했지만, 요즘은 한판이나 한 팩이라는 말이 흔해져서 젊은 사람 중에는 달걀 한 줄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소비자 중에는 10여 년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주 한 줄씩 달걀을 받는 집들이 있다. 내가 집에서 달걀 먹어봐도 알지만 매주 달걀을 10개씩 꾸준히 먹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달걀이 남아서 남에게 선물하거나 한꺼번에 삶아서 사람들과 나눠 먹을 때도 있을 것이다. 이런 배려는 묵은 김치맛처럼 제법 긴 세월이 흐른 후에야 드러나는 것이고,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닌지라 감사를 전하기도 애매해서 마음속에 담아둘 수밖에 없다.

또 어떤 집에서는 달걀이 밀려 있으니 다음 주에 쉬어 달라고 하기도 한다. 가지고 온 달걀을 그냥 돌려보내기 미안한 것이다. 이럴 때는 다음 주에 신선한 것으로 받으시라고 하고 그냥 돌아온다. 굳이 받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언젠가 집에 사람이 없어 현관문 앞에 달걀을 놓고 내려오는데 승강기 앞에서 주인을 만났다. 달걀이 밀려 있다고 다시 가져가기를 원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올라가 달걀을 회수해 왔다. 결제도 워낙 깔끔하지 않았던 터라 그 집에는 다시 가지 않았다. 또 현관문 앞에 달걀을 두고 가기를 원하는 집도 있다. 이런 경우는 서로간에 달걀과 달걀값이라는 등가물의 교환 이외에 어떠한 추가적 관계도 필요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 같다. 경제적으로 순수하다고 할까.

달걀 대금을 결제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월말 결제를 기본으로 하고 우리가 영수증을 발행하지 않기 때문에 계좌 입금을 부탁한 일이다. 어떤 사람은 한 줄 값도 외상을 못하고 바로 주려는 사람이 있고, 거의 1년치를 모아서 주면서도 평온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몇 달치 대금을 먼저 입금해 두고 먹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무조건 우리가 청구하는 대로 결제하고, 또 40대 이후의 허술한 기억력에 의지하면서 청구서를 미심쩍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돈을 받는 우리가 생각해도 월말이 이렇게 빨리 찾아오는데, 돈을 내는 입장에서는 오죽하랴 싶다.    

이런 차이들은 옳고 그름이나 선악을 가릴 문제가 아니라 기질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기록을 남길 수 있도록 계좌 입금을 부탁하는데도 굳이 현금을 주는 사람들은 전화기나 컴퓨터 같은 기계를 사용해서 결제하는 일을 매우 힘들어 하는 것 같다. 그 점은 나도 마찬가지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녹음된 소리에 따라 수많은 단추를 정확하게 누르는 일은 너무 어색하고 힘들었다. 하지만 아내는 이 일을 곧잘 해낸다. 내 기준으로는 아파트라는 주거 방식은 모든 생명의 모태인 땅으로부터 인간을 격리시킨다는 것 외에 기계(승강기)의 도움을 받아야만 ‘내집’에 입장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도 좋은 집이 아닌 것과 같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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