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은 2004년 신춘문예에 소설로 등단하였다. 현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순천대학교에서 현대문학을 강의하고 있다.「평화고물상」은 1970년대 순천의 공마당을 배경으로 여순사건 피해자인 어른들의 아픔을 지켜보면서 반공교육을 받는 11살 소녀의 성장담을 다룬다.이즈음 엄마는 점점 대범해져서 그 곳에서 머무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며칠 전 그 곳에 들어간 엄마가 좀체 나오지 않았다. 곧 공떡 할머니가 돌아올 시간이었다. 공떡 할머니가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아서 겁이 났다. 나도 모르는 사이 그곳으로 들어갔다. 아니
나는 눈가에 배어나오는 눈물을 찍어 누른다. 이상한 일이다. 그들이 내는 가위소리는 들을 때마다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 속에서 엿가락처럼 끈적끈적한 무엇이 묻어나온다. 엄마는 가끔 ‘산다는 것이, 참……’ 하고 홀로 읊조린다. 엄마가 저 소리를 듣는다면 산다는 것은 저들이 내는 가위소리처럼 신명나면서도 별순이 집 장판에 들러붙어 있는 엿조각처럼 끈적끈적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말수가 적은 엄마가 사람들에게 덤비듯이 나를 착하다고 항변할 때 나는 못마땅하다. 그 말 속에는 엄마처럼 살아야한다는 뜻이 담겨있는 것 같다. 엄마는
정미경은 2004년 신춘문예에 소설로 등단하였다. 현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순천대학교에서 현대문학을 강의하고 있다.「평화고물상」은 1970년대 순천의 공마당을 배경으로 여순사건 피해자인 어른들의 아픔을 지켜보면서 반공교육을 받는 11살 소녀의 성장담을 다룬다.나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한겨울의 하늘은 살얼음 얼은 호수 같다. 혹은 성에 잔뜩 낀 유리창이거나. 바늘 끝이라도 닿으면 쩌어억 금이 가 금시 유리구슬 같은 파편을 쏟아 내릴 듯하다. 출근길 등굣길을 재촉하는 걸음들로 분주했을 공마당은 잠시 숨을 돌리며 휴식
시골학교에서는 매일 아침 애국조회를 했다. 국민의례를 마치면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 노래를 불렀다. 일하시는 대통령 이 나라의 지도자 삼일정신 받들어 사랑하는 겨레위해 오일육 이룩하니 육대주에 빛나고 칠십 년대 번영은 팔도강산 뻗쳤네 구국의 새 역사는 시월유신 정신으로.반란군이 그 괴뢰군과 같은 것일까. 엄마의 말투로 보아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냥 내뱉는 것 같지는 않다. 문득 참샘 가는 길, 미로와 같은 좁은 골목 으슥한 길에서 어느 집 시멘트 담장에 페인트로 쓴 반공방첩이라는 글자들을 검정 페인트로 덧칠하던 미친 청년이 불쑥 떠오
“네 엄마가 나와 이렇게 만나는 사실을 알고 있니?”뜨끔했다. 머뭇거리는 사이 별순은 같이 집에 가서 엄마에게 말해줄 수도 있다는 엉뚱한 소리를 지껄였다. 마을 사람들이 평화고물상을 얼마나 꺼려하는가 하는 것을 모르지 않을 터였다. 나는 펄쩍뛰었다. 호락호락 별순의 말을 따를 수는 없었다. 공마당에서 우등생으로 군림하는 내가 그깟 영화 때문에 별순 따위에게 굴복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다만 땅거미가 짙어가는 것을 초조하게 바라보면서 엄마를 생각할 뿐이었다. 그때 별순이 다가와 내 귀에 속삭였다.“오늘 밤 그 작자를 죽일
뚜벅뚜벅 앞서 걷는 별순의 뒤를 종종 걸음으로 따라 걸으며 왜 언니들이 집을 나갔느냐고 물었다. “우리들이 보는 앞에서 엄마에게 또 쇠파이프를 휘둘렀어. 다신 안 그러겠다고 무릎을 꿇고 혈서까지 썼던 작자야.” 그 작자는 별순의 아버지를 말하는 것이다. 별순은 화가 날 때 아버지를 작자라고 한다. 별순은 작은언니 대신 엿물을 고아야 하고, 큰언니 대신 제과점과 만화방, 그리고 극장에 엿 배달을 가야 한다며 투덜거렸다. 극장이라는 말에 나는 솔깃해졌다. “엄마가 하면 되잖아. 네 엄마는 왜 일을 하지 않는 거야?” 온몸에 멍이 든 채
건물 끝 좁은 골목 입구에 평화고물상 간판이 비죽 나와 있다. 고물상답게 간판도 낡아 철판에 흰 색페인트로 써놓은 글자는 다 떨어져 나가고 간신히 형체만 남아 있다. (지난 호에 이어) 그 바로 앞집은 멋쟁이 일수 아줌마 집이다. 법원 서기 아저씨집 대문은 여느 때처럼 굳게 닫혀 있다. 마치 평화고물상을, 아니 공마당의 모든 집을 완강히 거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때 평화고물상 엿장수들이 리어카를 내밀며 꾸물꾸물 모습을 드러낸다. 강아지 털과 같이 보풀보풀한 털이 들어 있는 귀마개 겸한 검정 모자를 머리에 쓰고, 마스크를 두른 채다
(편집자 주) 지난 호 누락된 부분 "거기까지 딴은, 멀다."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진 남녀 평균 연령이 31.6세라는 데이터도 그렇지만 남자보다 여자가 더 빨리 ‘크리스마스 감흥’을 느끼지 않는다더라, 고 했을 때, “지금도 재미없는데.”곧 25세 되는, 중소기업일망정 졸업과 동시에 취업한 내 딸, ‘청춘’은 심드렁하게 말했다.“크리스마스 이
정미경은 2004년 신춘문예에 소설로 등단하였다. 현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순천대학교에서 현대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평화고물상」은 1970년대 순천의 공마당을 배경으로 여순사건 피해자인 어른들의 아픔을 지켜보면서 반공교육을 받는 11살 소녀의 성장담을 다룬다.양옆으로 땋은 갈래머리를 달랑거리며 나는 집에서 폴짝폴짝 뛰어나와 공마당에 선다. 엄마는 이 갈래머리를 뒷머리 중앙에 일직선으로 가르마를 내어 양쪽으로 높이 치오르게 묶은 후 다시 촘촘히 땋아 내렸다. 그 탓에 얼굴 목 등의 살갗이 위로 당겨 고개 움직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