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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고물상
정미경  |  72109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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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호] 승인 2019.11.14  11:5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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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옆으로 땋은 갈래머리를 달랑거리며 나는 집 에서 폴짝폴짝 뛰어나와 공마당에 선다. 엄마는 이 갈래머리를 뒷머리 중앙에 일직선으로 가르마를 내어 양쪽으로 높이 치오르게 묶은 후 다시 촘촘히 땋아 내렸다. 그 탓에 얼굴 목 등의 살갗이 위로 당겨 고개 움직임이 몹시 불편하다.

아침마다 되풀이 되는 일이지만 오늘 따라 엄마는 유난스레 내 머리에 공을 들였다. 엄마가 가르마를 타는 동안 나는 부산스럽게 왔다 갔다하는 괘종시계 추를 쏘아보느라 눈알이 핑그르르 돌았다. 가르마 타기는 큰바늘이 1에서 3으로 넘어 가도록 계속 되었다. 오늘은 엄마가 직접 손뜨개질한 분홍빛 스웨터를 고르는 데도 한참이 걸렸 다. 거기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기까지 했다. 엄마는 예쁘다. 작은 얼굴에 박혀있는 외꺼풀의 눈과 오똑한 코와 그리고 적당히 도톰한 입술. 그것들은 따로 떼어놓고 하나하나 볼 때 더욱 사랑스럽다. 사람들은 엄마를 보며 참하고 예쁘다고 말하고 나를 보며 엄마를 쏘옥 빼박았네, 하고 말한다. 대신 엄마와는 다르게 당차 보인다고 한다. 그럴 때 엄마는 아니요, 착해요 하고 그들의 말을 수정한다. 그러니까 나는 엄마에게는 착한 아이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당찬 아이로 보이는 모양이다. 엄마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볼 때 나는 긴 생머리를 하나로 묶은 엄마가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몇 번이고 머리를 묶고 푸는 것을 반복하는 것 때문에 짜증이 났다. 나를 바라보던 엄마는 또 한 마디의 말을 잊지 않았다.

"고물상 가지 말고. 그 반란군떼 득실대는 도적들 소굴 같은 곳."

목소리를 높이며 엄마가 말했다. 평소 엄마의 말소리는 나직하고 조용하다. 높이는 일도 낮추는 일도 없다. 엄마는 크게 기뻐하는 일도 화를 내는 일도 없다. 나는 반란군이라는 말을 할 때 엄마의 음성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그 말을 할 때 때로는 높아지고 때로는 낮아졌으며 가끔씩은 웅얼거린다. 내가 혼이 날 때는 가끔 옷차림이 흐트러질 때인데 그럴 때 엄마는 말했다.

"옷이 그게 뭐야. 꼭 반란군 새끼 같이."

어쩌다 가끔 듣는 말이지만 그럴 때 엄마의 목소리는 단호하다. 엄마의 것 같지 않다. 그럴 때 나는 반란군이 북한 괴뢰군쯤 되는 모양이라고 상상한 다. 세상에서 북한 괴뢰군만큼 무서운 것이 있을 까. 그러니 대통령이 반공방첩을 이야기 하고 학 교에서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하고 말한 이 승복의 동상을 세우고 동네 담장마다 붉은 페인 트로 멸공 혹은 반공이라는 글자를 써놓고 하지 않은가? 이 모든 것을 보면 북한 괴뢰군은 필시 뿔 몇 개쯤 달린 도깨비처럼 생겼을 것임에 틀림 없다. 포스터를 보면 대부분 험악한 표정을 한 뿔 달린 도깨비가 날카로운 가시박힌 방망이를 들고 있지 않던가.

 

   
▲ 삽화 김민주 (순천대학교 사진예술학과)

그래서 나는 1학년 때부터 올 4학년 까지 현충일과 6.25가 들어있는 6월이 되면 공산당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를 물리치는 대통령이 얼마나 훌륭한지 하는 내용의 글을 써서 상을 받고는 하였다. 이번 호남예술제에서는 대상을 받았다. 전학을 오기 전의 시골학교 애국조회 내용을 담은 글이었다.

시골학교에서는 매일 아침 애국조회를 했다. 국민의례를 마치면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 노래를 불렀다. 일하시는 대통령 이 나라의 지도자 삼일정신 받들어 사랑하는 겨레위해 오일육 이룩하니 육대주에 빛나고 칠십 년대 번영은 팔도강산 뻗쳤네 구국의 새 역사는 시월유신 정신으로. 반란군이 그 괴뢰군과 같은 것일까 엄마의 말투 로 보아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냥 내뱉는 것 같지 는 않다. 문득 참샘 가는 길, 미로와 같은 좁은 골 목 으슥한 길에서 어느 집 시멘트 담장에 페인트 로 쓴 반공방첩이라는 글자들을 검정 페인트로 덧칠하던 미친 청년이 불쑥 떠오른다. 마을 사람 들이 미친놈이라고 부르는 청년이다. 그는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미쳐버렸다고 했다. 그리고 뒤이 어 떠오른 얼굴은 별순이 오빠였다. 별순이 오빠 는 기술중학교에 다닌다. 또래에 비해 나이가 너 댓 살이나 많다. 오빠는 머리가 좋은데 아버지 때문에 입학을 시켜주지 않아 국민학교도 못 다녔 다. 기술중학교는 죽도봉 가는 으슥한 길에 있다. 엄마는 죽도봉 이야기가 나오면 또 기겁을 한다. 아마 그 곳이 지저분한데다 깡패들이 들끓기 때문일 것이다.

   
▲ 정미경 소설가

나는 가끔씩 그렇게 엄마에게 톤이 높아진 채 로 ‘반란군’이라는 말을 듣는다. 나는 그것이 또 예비군 국군 월남군과 같은 군인들 중 하나일 거 라고 짐작한다. 아버지는 6‧25 참전 용사이고 예비 군 중대장이다. 또 별순이 집에 사는 김 씨 아저씨 는 월남참전군인이다. 반란군이 무엇이길래 엄마 가 저렇게 목소리를 바꾸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저 괴로군이거나 군인의 다른 이름일 거라고 생각하고 만다.

나는 조바심이 났다. 별순이가 기다리고 있을 것 이다. 엄마가 앞이마의 잔머리 두어 올까지 정리하기를 마치는 순간 나는 서둘러 집에서 나왔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한 겨울의 하늘은 살얼음 얼은 호수 같다. 혹은 성에 잔뜩 낀 유리창이 거나. 바늘 끝이라도 닿으면 쩌어억 금이 가 금시 유리구슬 같은 파편을 쏟아 내릴 듯하다. 출근길 등굣길을 재촉하는 걸음들로 분주했을 공마당은 잠시 숨을 돌리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재향군인회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건물 벽은 온통 낙서로 덮여 있고 유리창은 아이들의 돌팔매질로 여기저기 깨어져 있다. 재향군인회 건물은 공마당에서 가장 큰 건물인데 대부분 문이 잠겨 있다. 고등학교 다니는 사환 오빠가 밤이나 공일에 공부하는 모습만 보았을 뿐 군인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우 리 집 고흥상회 앞 쪽으로 나 있는 후문 쪽 한켠은 체육관으로 활용된다. 그 곳에서는 웃통을 벗은 괴물의 형상을 한 아저씨들이 무거운 쇠붙이로 된 기구를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 올리는 모습 을 볼 수 있다.

건물 끝 좁은 골목 입구에 평화고물상 간판이 비죽 나와 있다. 고물상답게 간판도 낡아 철판에 흰색 페인트로 써놓은 글자는 다 떨어져 나가고 간신히 형체만 남아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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