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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고물상제2회
정미경 소설가  |  72109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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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호] 승인 2020.01.07  15:4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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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미경 소설가 순천 출생. 순천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졸업. 2004년 광주매일 신춘문예 소설 당선. 현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연구원

건물 끝 좁은 골목 입구에 평화고물상 간판이 비죽 나와 있다. 고물상답게 간판도 낡아 철판에 흰 색페인트로 써놓은 글자는 다 떨어져 나가고 간신히 형체만 남아 있다. 

(지난 호에 이어) 그 바로 앞집은 멋쟁이 일수 아줌마 집이다. 법원 서기 아저씨집 대문은 여느 때처럼 굳게 닫혀 있다. 마치 평화고물상을, 아니 공마당의 모든 집을 완강히 거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때 평화고물상 엿장수들이 리어카를 내밀며 꾸물꾸물 모습을 드러낸다. 강아지 털과 같이 보풀보풀한 털이 들어 있는 귀마개 겸한 검정 모자를 머리에 쓰고, 마스크를 두른 채다. 그들은 차례대로 리어카를 빙 둘러 세우며 엿판의 엿들을 정돈한다. 엿판에는 강엿 흰엿 깨엿 콩엿 가락엿들이 맛깔스럽게 놓여 있다. 여린 아침 햇살이 총총걸음으로 엿판 위에 내려앉자 엿들은 더욱더 눈부시게 빛난다.  

하루를 함께할 엿판 점검을 끝내고 엿장수들은 손가락에 가위를 걸친 채 각자 쩔거덕쩔거덕 소리를 낸다. 합주에 들어가기 전 각기 자신이 맡은 악기를 맞춰보는 것처럼 가위 소리를 점검한다. 누군가의 입에서 ‘어~허~ㅅ’ 하는 구성진 소리가 흘러나오자 리어카 주인들이 빙 둘러섬과  동시에  일제히 가위들의  합주가 시작된다. 그들은 신명나게 가위질을 한다. 가락을 탄 흥겨운 가위소리는 길게 누워 있던 공마당을 깨우고 골목을 돌아 청명한 겨울 하늘을 가른다. 내 가슴은 마치 가을 운동회 때 펄럭이던 만국기를 바라볼 때처럼 부풀어 오른다. 소리가 하늘에 가 닿았다 돌아올 때쯤 그들은 차례로 골목을 빠져나간다. 그들이 돌아올 때 엿판 위의 달콤한 엿들은 사라지고 낡고 닳은 물건들이 각각의 시간과 함께 리어카 가득 실려올 것이다. 
나는 눈가에 배어 나오는 눈물을 찍어 누른다.

이상한 일이다. 그들이 내는 가위소리는 들을 때마다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 속에서 엿가락처럼 끈적 끈적한 무엇이 묻어나온다. 엄마는 가끔 ‘산다는 것 이, 참……’ 하고 홀로 읊조린다. 엄마가 저 소리를 듣는다면 산다는 것은 저들이 내는 가위소리처럼 신명나면서도 별순이 집 장판에 들러붙어 있는 엿조각처럼 끈적끈적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말수가 적은 엄마가 사람들에게 덤비듯이 나를 착하다고 항변할 때 나는 못마땅하다. 그 말속에는 엄마처럼 살아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는 것 같다. 엄마는 어둠을 좋아한다. 우리 집 안방은 볕이 들지 않아 대낮에도 캄캄하다. 엄마는 항상 어두운 방에서 군용 담요를 네 귀 흐트러짐 없이 깔아놓고 오롯이 앉아 있다. 

엄마는 밖에 나가는 일이 거의 없다. 외가에도 친가에도 가지 않는다. 가는 곳은 시장과 극장이 유일하다. 엄마는 해질녘에 시장에 가고 이른 아침에 극장에 간다. 그때마다 엄마는 예쁜 옷을 입고 간다. 그럴 때 엄마는 한없이 가벼워서 나비처럼 보인다. 아지랑이처럼 둥둥 떠가는 것 같다. 옷장에는 엄마의 옷들이 많다. 외출도 하지 않는 엄마가 옷은 왜 사는지 또 언제 사는지 나는 늘 의문이다. 옷장 속에서 옷을 꺼내 벽에 걸어두고 그것을 바라보기 만한다. 옷은 매번 바뀐다. 나는 엄마가 그 옷들과 함께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삽화 김민주(순천대학교 사진예술과)

엄마는 때로 우리 집 주인인 공떡 할머니 구멍가게에 간다. 엄마는 할머니를 고흥댁 어른이라고 하지만 공마당 사람들은 공떡이라고 한다.  나는 공떡 할머니라고 부른다. 그것이 공마당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공떡 할머니는 혼자 살면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남편의 사진과  6·25때 전사했다는  공군 아들의 사진을  구멍가게에 들어서는  사람이 볼 수 있는 자리에  걸어두고 있다. 그러나 볕이 들지 않은 구멍가게에서 사진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다. 그 구멍가게가 얼마나 어두운지 나는 안다. 세상의 모든 어둠과 고요가 거기 구멍가게에 다 모여 있다. 귀와 눈이 어두운 공떡 할머니는 외출을 할 때 공마당 쪽으로 난 유리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그 뒤로 양은 철판 문을 붙여닫고, 우리가 사는 안 채로 이어진 문에 자물통을 걸어 잠근다. 

어느 날 나는 공떡 할머니가 외출하고 없을 때 그 곳에서 나오는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가만히 자물쇠를 꾸욱 눌러 채워두고 주위도 돌아보지 않은 채 허적허적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 엄마의 발은 땅에 붙어있지 않았다. 엄마는 발이 두웅 뜬 채로 날아 가는 것 같았다. 시커먼 먹물 같은 어둠이 엄마를 감싸고 있었다. 엄마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나는 지켜보고 있다가 자물쇠 고리를 가만히 들어올려 보았다.

자물통은 잠겨있지 않았다!

이즈음 엄마는 점점 대범해져서 그 곳에서 머무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며칠 전 그곳에 들어간 엄마가 좀체 나오지 않았다. 곧 공떡 할머니가 돌아올 시간이었다. 공떡 할머니가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아서 겁이 났다. 나도 모르는 사이 그곳으로 들어갔다. 아니 빨려 들어갔다. 어찌나 어두운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때 마룻장 아래서 몸을 웅크린 채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엄마를 보았다. 나는 엄마의 기이한 행동에 너무나 놀라서 곧장 그곳에서 뛰쳐나왔다. 무서웠다. 엄마의 기이한 행동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어둠이었다. 커다란 동굴 같은 어둠이 덥석 나를 삼켜 버릴 것 같았다. 

엄마가 강조하는 ‘착해요’ 하는 말에는 어둠이 묻어 있는 것 같다. 어둠 속에서 살면서 그것을 감추려는 엄마의 필사적인 노력. 그래서 나는 착하다는 말은 딱 질색이다.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 나는 어제 수업을 마치고 교문 앞에서 엄마가 그 토록 싫어하는 고물상 집 딸 별순을 기다렸다. 교실에서 우리는 서로 알은 체를 하지 않는다. 감지 않은 헝클어진 머리와 땟국물 절은 옷을 입은 별순이 곁에 반 아이들은 누구도 가려하지 않는다. 숙제도 해오지 않고 수업 시간에 졸기 일쑤여서 선생님한테도 늘 꾸지람을 듣는다. 

별순의 뒤를 따라걷다 공마당에 이르는 골목길로 접어들었을 때야 나는 곁으로 가서 어깨를 툭 쳤다. 별순은 무심한 눈길로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숱 많은 단발머리가 앞으로 쏟아져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었다. 

“나 이제 너랑 못 놀아.” 

별순은 다짜고짜 말했다. 입술을 깨물며 왜냐고 묻자 언니들이 집을 나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평화 고물상은 내 유일한 놀이터이고 별순이가 있어야 그곳에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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