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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고물상』 (3)
정미경  |  72109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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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호] 승인 2020.02.17  10: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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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앞서 걷는 별순의 뒤를 종종 걸음으로 따라 걸으며 왜 언니들이 집을 나갔느냐고 물었다.

   “우리들이 보는 앞에서 엄마에게 또 쇠파이프를 휘둘렀어. 다신 안 그러겠다고 무릎을 꿇고 혈서까지 썼던 작자야.”

  그 작자는 별순의 아버지를 말하는 것이다. 별순은 화가 날 때 아버지를 작자라고 한다. 별순은 작은언니 대신 엿물을 고아야 하고, 큰언니 대신 제과점과 만화방, 그리고 극장에 엿 배달을 가야 한다며 투덜거렸다. 극장이라는 말에 나는 솔깃해졌다.

  “엄마가 하면 되잖아. 네 엄마는 왜 일을 하지 않는 거야?”

  온몸에 멍이 든 채로 반쯤 넋이 나가 있는 별순 엄마를 떠올리며 물었다.  

   
 

  “함부로 말하지 마. 울 엄마 욕하는 사람은 다 죽일 거야, 누구든.”

  별순은 할퀼 듯이 으르렁댔다. 바짝 따라붙어 틈새를 노려 평화고물상에 갈 기회를 엿보고 덤으로 극장까지 따라붙을 속셈이었던 나는 별순이 발악해대는 것을 보고 엄마 얘길 꺼낸 것을 곧 후회했다.

  “내가 도와줄게.”

  우뚝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선 별순은 입 언저리를 추켜세운 채 니가? 옷 때문에 놀이에도 끼어들지 못하는 주제에?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시장에 엿물도 받으러 가야하고, 장작불 피워 엿물을 고아서 아저씨들이 엿을 만들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해. 너 집에서 나올 수 있어? 늦은 밤까지 일해야 해.”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입었던 옷을 벗어 단정하게 옷걸이에 걸어놓는다. 별순이는 옷 한 벌로 한 계절을 나는데 비해 나는 학교에서 입는 옷과 집에서 있는 옷 그리고 잠옷이 갖추어져 있다.

  엄마가 차려준 점심을 먹은 뒤 숙제를 하고, 복습과 예습을 하고, 다음 날 준비물을 챙긴다. 엄마는 옆에서 연필을 깎는다. 내 2단 필통에는 12자루의 연필이 키 순서대로 가지런히 꽂혀 있다. 이는 날마다 순서가 바뀌는 일 없이 되풀이 된다. 그것은 엄마가 정해놓은 규칙이다. 엄마에게 규칙은 생명이다. 이 모든 일을 마쳐야 나는 공마당에서 놀 수 있다. 그러나 옷이 더럽혀져서는 안 되기 때문에 아이들과 엉켜 놀지 못하고 물끄러미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간다.    그것을 알고 있는 별순은 입을 삐죽거리며 재차 집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인지를 물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나는 그럴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별순은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대신 조건이 있어.”

  나는 기분이 확 나빠졌다. 공부도 못하고 친구도 없는 주제에 나 같은 친구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 처지였다. 나의 그런 심사를 알아차린 듯 별순은 싫으면 관두라하며 등을 돌렸다.

  “그래 좋아.”

  내 대답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별순이는 곧장 걸음을 되돌려 만화방으로 향했다. 만화방에 도착한 별순은 주인에게 이제부터 자신이 엿 배달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만화에 빠져 들었다. 나는 구석에 앉아서 별순이를 기다렸다. 만화 따위는 별순이와 같이 미래에 대한 꿈이 없는 아이들이나 보는 것이다. 나는 책읽기를 좋아한다. 방안에 틀어박혀 있는 엄마 곁에서 나는 책을 읽는다. 소공녀를 읽고 소공자를 읽고 삼총사를 읽고 장 발장을 읽는다. 그러나 사실은 옷을 더럽히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엄마 때문에 책을 읽는다. 아이들과 뛰어놀 수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다. 별순이는 순식간에 만화를 읽어치우고 만화방을 나와 시장으로 갔다.

 

  “오늘밤 올 거지?”

   
 

  공마당에 이르러 번갈아 들고 왔던 엿물이 담긴 철통을 번쩍 들어 머리에 이면서 당당하고 명령하듯 별순이 물었다. 나는 망설였다. 반나절을 끌려 다닌 탓에 나는 몹시 피곤했다. 공마당에 거뭇거뭇한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네 요년, 엄마 잘 살펴야 해.’ 집에 올 때마다 종주먹을 들이대는 외할머니가 떠오르면서 잊고 있었던 엄마가 생각났다.

 

삽화 : 한가연 (순천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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