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은 2004년 신춘문예에 소설로 등단하였다. 현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순천대학교에서 현대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평화고물상」은 1970년대 순천의 공마당을 배경으로 여순사건 피해자인 어른들의 아픔을 지켜보면서 반공교육을 받는 11살 소녀의 성장담을 다룬다.

 

나는 눈가에 배어나오는 눈물을 찍어 누른다. 이상한 일이다. 그들이 내는 가위소리는 들을 때마다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 속에서 엿가락처럼 끈적끈적한 무엇이 묻어나온다. 엄마는 가끔 ‘산다는 것이, 참……’ 하고 홀로 읊조린다. 엄마가 저 소리를 듣는다면 산다는 것은 저들이 내는 가위소리처럼 신명나면서도 별순이 집 장판에 들러붙어 있는 엿조각처럼 끈적끈적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말수가 적은 엄마가 사람들에게 덤비듯이 나를 착하다고 항변할 때 나는 못마땅하다. 그 말 속에는 엄마처럼 살아야한다는 뜻이 담겨있는 것 같다. 엄마는 어둠을 좋아한다. 우리 집 안방은 볕이 들지 않아 대낮에도 캄캄하다. 엄마는 항상 어두운 방에서 군용 담요를 네 귀 흐트러짐 없이 깔아놓고 오롯이 앉아 있다.

엄마는 밖에 나가는 일이 거의 없다. 외가에도 친가에도 가지 않는다. 가는 곳은 시장과 극장이 유일하다. 엄마는 해질녘에 시장에 가고 이른 아침에 극장에 간다. 그때마다 엄마는 예쁜 옷을 입고 간다. 그럴 때 엄마는 한없이 가벼워서 나비처럼 보인다. 아지랑이처럼 둥둥 떠가는 것 같다. 옷장에는 엄마의 옷들이 많다. 외출도 하지 않는 엄마가 옷은 왜 사는지 또 언제 사는지 나는 늘 의문이다. 옷장 속에서 옷을 꺼내 벽에 걸어두고 그것을 바라보기만 한다. 옷은 매번 바뀐다. 나는 엄마가 그 옷들과 함께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엄마는 때로 우리 집 주인인 공떡 할머니 구멍가게에 간다. 엄마는 할머니를 고흥댁 어른이라고 하지만 공마당 사람들은 공떡이라고 한다. 나는 공떡 할머니라고 부른다. 그것이 공마당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공떡 할머니는 혼자 살면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남편의 사진과 6‧25때 전사했다는 공군 아들의 사진을 구멍가게에 들어서는 사람이 볼 수 있는 자리에 걸어두고 있다. 그러나 볕이 들지 않은 구멍가게에서 사진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그 구멍가게가 얼마나 어두운지 나는 안다. 세상의 모든 어둠과 고요가 거기 구멍가게에 다 모여 있다. 귀와 눈이 어두운 공떡 할머니는 외출을 할 때 공마당 쪽으로 난 유리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그 뒤로 양은 철판 문을 붙여 닫고, 우리가 살고 있는 안채로 이어진 문에 자물통을 걸어 잠근다.

어느 날 나는 공떡 할머니가 외출하고 없을 때 그곳에서 나오는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가만히 자물쇠를 꾸욱 눌러 채워두고 주위도 돌아보지 않은 채 허적허적 방으로 들어갔다. 그 때 엄마의 발은 땅에 붙어있지 않았다. 엄마는 발이 두웅 뜬 채로 날아가는 것 같았다. 시커먼 먹물 같은 어둠이 엄마를 감싸고 있었다. 엄마의 손에는 아무 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나는 지켜보고 있다가 자물쇠 고리를 가만히 들어 올려 보았다. 자물통은 잠겨있지 않았다!

소설가 정미경 (2004년 광주매일 신춘문예 소설 당선. 현 순천대학교 강사, 여순연구소 연구원)
소설가 정미경 (2004년 광주매일 신춘문예 소설 당선. 현 순천대학교 강사, 여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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