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본지는 기획시리즈 ‘순천 청년들이 사는 진솔한 이야기’(청사진)을 연재한다. 순천에 사는 청년, 순천을 떠난 청년, 순천으로 온 청년들을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싣는다. 열 번째로 청년한약사 이경숙(39) 씨를 지난 7일 인터뷰했다.

동네 사랑방 한약국

이경숙 씨는 순천 신대지구에서 한약국을 운영한다. 한약국은 한약 조제를 전문으로 하는 약국이다. 환자와 상담하고 처방에 맞게 조제하고, 약재를 씻어 달이고, 약탕기를 청소하고 소독하는 일까지 그의 오롯한 일과다. 

그의 고향은 고흥이다. 지금도 고흥에서 출퇴근한다. 그와 순천의 인연은 고등학교다. 그 시절 좋은 추억이 많은 까닭에 순천은 그가 오랜 타지 생활에서 돌아와 한약국을 열어야겠다 마음먹었을 때 마음에 둔 유일한 도시다. 그 때는 없었던 신대지구가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출근길에 마주치는 학생들, 손에 손잡고 동네를 산책하는 어린이집 친구들을 보며 활력을 얻는다.

“개국할 때 한약국이 동네 사랑방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테이블도 큰 거 놨어요.”

2020년 5월, 코로나19가 막 터지고 한약국을 연 탓에 여태 사람들을 한 번도 못 모았다. 지난 4월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해제되어 지난달부터 캘리그래피 선생님을 모시고 주 1회 수업한다. 환자로 오신 요가 선생님이 요가 수업도 해보자 하셔서 큰 테이블을 치우고 요가 매트를 깔 궁리를 하고 있다.

이경숙 씨는 한약국이 동네 사랑방이 되기를 희망한다. (제공=이로운 캘리그래피 강사)
이경숙 씨는 한약국이 동네 사랑방이 되기를 희망한다. (제공=이로운 캘리그래피 강사)

영화계에서 한약사로

어릴적 꿈이 방송 PD였다는 그는 첫 대학교에서 영상학을 전공했다. 졸업하고 방송 프로덕션, 단편영화 작업 등을 하다가 메이저 영화 제작사에 들어갔다.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은 즐거웠지만 시나리오 쓰고 영화 찍는 일이 적성에 썩 맞지 않다는 것을 영화 스텝 일을 하면서 깨달았다. 손에 쥘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싶어서 수능을 다시 봤다. 한약학을 선택한 것은 자신과 타인을 도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약사가 하는 일은 의약 분업 전의 약사와 비슷하다. 환자의 증상에 따라 한약을 처방하고 조제한다.

그는 약 조제와 더불어 복약지도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환자와 상담할 때 생활 습관, 식습관 등에 관한 정보를 안내하고 환자 개인 삶의 질을 전반적으로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환자분들 특히 중노년층 여성분이나 중고등학생들과 상담하다 보면 ‘이분들이 이야기를 나눌 데가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려움을 말하지 못하는 게 스트레스가 돼서 몸에 안 좋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드리려고 해요.”

그는 서른 살 무렵 두 번째 대학교에 입학했다. 총여학생회 활동을 하며 매주 위안부 피해자들의 수요시위에 연대하는 글을 썼다. 학우들과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세미나를 하고 책모임을 했다.

한약학과 여성학을 공부하면서 여성의 몸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다른 여성들과 서로의 몸을 이야기하고 그동안 몸에 가졌던 부정적 인식과 편견을 지워나갔다. '여자들은 감정적이다', '여자라서 우울하다' 등의 선입견들이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라는 것을 것을 알았다. 

"신약 개발조차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이루어져요.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내 몸을 보고 있었던 거에요."

상업영화 연출부 시절 (제공=이경숙)
상업영화 연출부 시절 (제공=이경숙)

페미니즘은 '차별을 반대'하는 일

그는 최근에야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했다고 고백했다. 그전에는 행동, 사상 등 모든 면에서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껴서 페미니스트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 지금은, 여전히 부족하지만, ‘이런 페미니스트도 있지’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게 모험인 시대여서 오히려 더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게 됐어요.”

그가 ‘노키즈존’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가 있는 두 친구, 비혼인 한 친구와 넷이서 노키즈존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비혼인 친구가 아이들 없는 조용한 공간에 있고 싶다고 했고, 기혼인 두 친구는 아이 때문에 입장을 거절당하면 불쾌하겠지만 업주 입장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어요. 두 경우 모두 노키즈존이 차별이라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더라고요.”

그는 아이가 들어오는 것을 막을 것이 아니라 떠들거나 뛰어다니는 아이의 행동을 제재하고 아이에게 안 된다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차별을 반대’하고, ‘모두가 평등한 삶’을 지향하는 것이다.

청년한약사 이경숙 씨

“저는 스스로를 잘 세우고 싶지만 제 파이만 구하려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요.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어요.”

관련 단체 후원하기, 페미니즘 독서 모임 외에 일상에서 좀 더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실천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는 이것이 “진짜 숙제”라고 말했다.

“하루는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동조단식으로 하루를 굶기로 했어요. 그런데 단식해야겠다고 생각하니까 출근길에 식당 이름들이 더 크게 보였어요, 배고픈 상태도 아닌데! 이 이야기를 한약국 SNS 계정에 쓰고 싶었는데 쓰기가 망설여졌어요.”

언젠가 한 어르신께서 ‘다양한 환자가 올 텐데 굳이 너의 색깔을 강하게 표현해서 좋을 게 있느냐’고 하신 말씀을 들은 후로 그는 ‘몸을 사리게’ 됐다. 동조단식은 주변에 소문을 내야 효과가 더 높고, 이런 그의 모습을 좋아해 주는 분들도 많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는 결국 동조단식 후기를 비공개 계정에 올렸다. 그는 한약국 계정이 공개 계정이고 팔로워도 더 많은데 무엇이 두려울까 생각했다.

“사실 이런 걱정을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잖아요. 죄지은 것도 아닌데…”

그 목소리가 너무 투명해서, 차별과 혐오가 공기처럼 당연하고 만연한 현실이 퍼뜩 떠올랐다.

몸과 마음의 안녕

그에게 환자들이 어떤 이유들로 한약국을 찾아오는지 물었다. 그는 네 살 아이부터 팔십 세 어르신까지 각자의 불편함이 있다고 답하며, 비슷한 증상, 목적으로 온 환자라도 사람은 서로 다르다고 말했다. 그가 사람과 사람 사이 다름을 발견하고 인정하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달인 한약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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