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본지는 기획시리즈 ‘순천 청년들이 사는 진솔한 이야기’(청사진)을 연재한다. 순천에 사는 청년, 순천을 떠난 청년, 순천으로 온 청년들을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싣는다. 열한 번째로 육아휴직 중인 이상진(37) 씨를 지난 6일 인터뷰했다.

이상진 씨는 지난 3월부터 육아휴직을 하고 17개월 딸 육아에 집중하고 있다. 고향은 경기도 안양이고 충청도에서 대학을 다녔다. 먼저 취업한 친구를 따라 순천에 왔다. 아내도 순천에서 만났고, 둘 다 순천에서 살고 싶어 했다.

“순천은 시민을 위한 인프라와 각종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경상도와도 가까워 확장성이 좋다”라고 말하는 그는 “수도권이 전혀 그립지 않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기에 순천은 어떤가?

결혼, 출산에 국가나 지자체에서 어떤 혜택을 주니, 돈을 얼마 주니 하는 것에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결혼이나 출산에 실제적 지원이 사실 어렵다. 나라에서 '스드메'를 지원할 수는 없지 않나. 출산에도 산부인과 병원만 잘 갖춰져 있으면 그 외 혜택이 필요치 않다. 육아에도 아이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이 지원금보다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순천에는 산후조리가 가능하고 신생아집중치료센터가 딸린 큰 산부인과 병원이 두 개나 있고,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장난감 대여, 각종 프로그램, 영유아 놀이방 등을 이용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 그림책도서관, 인근 광양의 도립미술관 등도 아이가 커갈수록 잘 이용하게 될 것이다.

아쉬운 것이라면, 지난 3월 개원한 순천공공산후조리원의 병상 수가 매우 적고(5개), 신청하기 위해 매달 1일 클릭 전쟁을 벌여야 하는 점이다. 우리가 공공산후조리원을 이용하게 되면 당연히 좋지만, 실제 그 혜택이 가장 필요한 사람이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했으면 한다.

출산을 결심한 이유는?

아내가 원했기 때문이다. 임신, 출산은 현재로서 100% 여자가 지는 부담이기 때문에 그 결정권은 아내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는다면 나는 아빠로서의 모든 책임을 다할 것이라 했고, 아내는 내 말을 믿어 주었고, 그렇게 함께 출산을 결정했다.

육아휴직 해보니 어떤지? 남성으로서 육아하는 소감은?

작년에 아내가 육아휴직 하면서 아이를 돌볼 때는 아내 의견을 많이 따랐다. 지금은 내가 주로 돌보고 있어서 아내가 전적으로 내 방식을 응원하고 맞춰준다. 책과 유튜브를 통해 육아 공부를 많이 하는 편이다.

육아휴직 전에도 목욕시키고 재우는 건 내가 했다. 초반에는 많이 힘들었지만 이제 아내보다 내가 아이에게 못 하는 것은 모유 주기뿐이다. 육아인으로서 자부심이 자라고 있다.

육아휴직 중 어려움은?

육아하는 아빠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육아를 함께 하는 모임이 없는 점이 아쉽다. 문화센터를 같이 다닐 육아 친구를 찾고 싶어도 남자는 ‘맘카페’에 가입할 수 없게 돼 있다. 아내 아이디로 들어가 육아하는 아빠를 찾는다고 올렸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내가 육아휴직 중이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대단하네요’ ‘이런 남자들이 많아져야 하는데’ ‘부러워요’ 말하지만, 아빠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배경과 장치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남성이 육아휴직을 해야 하는가?

부모 중 누가 육아휴직을 할지, 누가 먼저 할지, 얼마나 할지는 그 가정 구성원이 합의하여 결정할 일이다. 각 가정의 상황이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아내와 나의 급여 차이가 거의 없어서 좀 더 쉽게 둘 다 휴직을 결정할 수 있었다. 내 친구네는 아내보다 남편이 급여가 높아서 아내만 육아휴직을 했다. 어떤 가정은 아내보다 남편이 아이를 돌보기에 더 적합한 성격이어서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고 육아에 더 집중할 수도 있다.

가사와 육아, 부불노동에 보상할 방법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가사와 육아는 가정의 안정과 가족의 생활·복지를 유지하기 위한 행위이지 ‘타인에게 필요할 것이라 상정하고 생산하는 활동’이 아니다. 그러므로 가사와 육아를 ‘시간당 얼마’라고 값을 매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가사와 육아를 제도적 노동으로 인정하고 이른바 ‘최저가사노동비’를 정하도록 국가에 요구하는 것은 탁상행정식 방법이다. 가사와 육아의 가치를 가족과 가정 내에서 인정받도록 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를 만드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고 가사와 육아에 본질적으로 보상하는 방법이다.

물론 이혼할 때 재산분할 등을 위한 법적 근거로 가사노동의 가치를 측정하는 것은 필요하다.

결혼, 출산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취업 준비할 때 인터넷 강의 강사가 “합격자들 후기를 읽고 합격할 방법을 찾아야지, 불합격한 사람들끼리 위로하며 동병상련을 느끼는 것은 합격에 도움이 안 된다”라고 한 말이 기억난다.

나도 미디어와 인터넷에서 접하는 결혼, 출산 등에 관한 불행들이 두려워 여차하면 혼자 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20대를 보냈다. 이런 막연한 두려움을 다스리고 싶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룬 지인들을 직접 찾아가 이야기를 나눴다.

미디어가 아니라 주변을 둘러보길 권한다. 온라인의 설정되고 편집된 행복 말고, 주변에서 행복한 가정의 내면을 꼼꼼히 살펴보면 배울 점이 많고 관점이 바뀌기도 한다. 나 역시 결혼, 출산, 육아 경험과 행복을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다.

그는 “육아는 문화”라고 말하며 “이전 세대와 소통이 단절되면서 육아 경험이 전해지지 않고 ‘화장실도 못 가게’ 육아가 어려워졌다. 가까이 지내는 가정들이 서로 보고, 듣고, 이야기 나누는 것만으로 육아가 한층 편해질 것”이라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결혼, 출산, 육아 등을 함께,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세상이라면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동화 같은 결말이 어쩌면 가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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