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 학생들과 함께하는 노동인권 수업 중에 이솝의 ⌜개미와 베짱이⌟를 각색해 보는 활동이 있습니다. 그들의 노동관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지요. 성실하게 일한 개미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일하지 않고 노래하며 논 베짱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개미가 베짱이를 잔인하게 죽이는 결말을 그림으로 나타냈다.
개미가 베짱이를 잔인하게 죽이는 결말을 그림으로 나타냈다.

먼저 이렇게 개미가 베짱이를 잔인하게 죽이는 결말입니다.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장르이지만 수업 중에 마주하기에는 상당히 당혹스러운 장면입니다. 베짱이에 대한 개미의 분노와 증오가 소름 돋게 생생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개미는 베짱이가 미운 걸까요? 베짱이가 개미를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인즉슨 “우리는 졸업하면 개미처럼 손에 기름때 묻히고 힘들게 먹고살게 되잖아요. 이 학교 나오면 우리 어떻게 되는지 샘도 다 아시잖아요. 그런데 베짱이가 우릴 비웃고 놀렸잖아요.” 이 이야기 속 베짱이는 누구일까요? 나는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은연중에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거나 모든 노동은 신성하고 소중하다는 말을 뱉은 적이 있었고 그것은 이들에게 비웃음과 놀림의 말이었을 테니까요.

베짱이가 개미를 약탈하고 죽이는 결말을 그림과 만화로 그렸다.
베짱이가 개미를 약탈하고 죽이는 결말을 그림과 만화로 그렸다.

반대로 베짱이가 개미를 약탈하고 죽이는 결말도 흔합니다. 개미는 식량뿐만 아니라 목숨까지 다 잃게 된다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우리 사회는 적어도 목숨과 재산은 보호해 준다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요? 대답은 이렇습니다. “샘은 순진하게 왜 그러세요? 강도가 따로 있나요? 사람들이 자살은 왜 해요?” 이 이야기 속 베짱이는 월세를 받으러 온 건물주, 아니면 빚을 받으러 온 사채업자랍니다. 말문이 막히고 숨도 막히고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순간입니다. 어디 건물주와 사채업자뿐인가요? 그들은 아주 작은 약탈자에 불과하고 형체라도 있지요. 문화의 탈을 쓴 ‘소비’란 이름의 강도는 어떤가요? 투자란 이름의 코인, 주식은 어떤가요? 자본주의란 이름으로 자본과 밀월 중인 국가는 어떤가요? 개미가 아무리 문을 잘 걸어 잠가도 베짱이의 침입을 막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 이런 결말은 어떤가요?

청소년 대다수는 우리 사회가 철저하게 위계화된 불평등한 노동구조로 되어 있다는 데에 동의합니다. 이 헬조선의 청소년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 좋을까요?
청소년 대다수는 우리 사회가 철저하게 위계화된 불평등한 노동구조로 되어 있다는 데에 동의합니다. 이 헬조선의 청소년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 좋을까요?

따듯한 겨울을 꿈꿨던 개미는 겨울이 오기도 전에 과로사하거나 어떻게 살아남아 겨울을 맞이했지만, 모아온 식량을 제대로 먹어 보지도 못하고 늙고 병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 일하는지 죽기 위해 일을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만나는 청소년 대다수는 우리 사회가 철저하게 위계화된 불평등한 노동구조로 되어 있다는 데에 동의합니다. 마치 태어나면서 신분과 할 일이 정해지는 조선시대 같다고요. 특히 특성화고 학생들은 그 구조 속 자신의 위치가 어디쯤이라고 콕 짚으며 “샘, 너무 애쓰지 마세요. 우리는 갈 길이 이미 정해져 있어요”라고 합니다. 헬조선이 따로 없습니다. 

이 헬조선의 청소년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 좋을까요? 헬조선에서 개미처럼 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베짱이처럼 살라고 할 수도 없고요.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다만 너무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는 노동은 인간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이라 하고 누군가는 노동을 통해 자기를 실현하는 것이라 하고 또 누군가는 노동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 노동은 어떤 노동일까요? 그런 노동이라면 “주 69시간이라도 개미처럼 열심히 최선을 다해 보자”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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