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 청소년노동인권 활동가 기고문

[편집자 주]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영역에서 한국이 요동치고 있다.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은 어떤 상황인가? 청소년이 겪는 한국의 본모습은 무엇인가? 이를 알아보기 위해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에서 오랫동안 청소년을 만나고 같이 부대낀 김신 활동가의 글을 연재한다.

필자가 거주하고 있는 장흥군에서 최근 청소년 노동인권의 지평을 넓히기 위한 흥미로운 조사가 있었습니다. 일하는 청소년의 노동인권 실태와 함께 일반 청소년의 노동인권 의식을 알아보는 조사였는데, 이는 지난 2019년 말 제정된 ‘장흥군 청소년 노동인권 증진 및 보호 조례’에 따라 장흥군에 특화된 청소년 노동인권 자치 정책 및 중장기 사업계획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장흥교육희망연대가 주관하였습니다.

구조적 차별에 관한 인지도 높을수록 노동인권 의식 높아

노동3권 지지도 높은 반면 개별적 노동 권리에 관한 인지도는 낮아

장흥군 청소년 가운데 63%는 우리 사회는 능력이 같더라도 성별⋅학력⋅나이 등에 따라 고용과 승진, 임금 등에 차별이 존재한다고 봤습니다. 이는 서울과 광주의 청소년과 비교했을 때 매우 높은 수준인데, 특성화고보다는 일반고 학생 사이에서 그 비율이 높게 나왔고 남성보다는 여성 청소년 사이에서 그 비율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그래프 1. 우리 사회는 능력이 같다면 성별·학력·인종·나이와 무관하게 고용·승진·임금 등에 차별이 없다
그래프 1. 우리 사회는 능력이 같다면 성별·학력·인종·나이와 무관하게 고용·승진·임금 등에 차별이 없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여타 노동 구조를 바라보는 데에서도 일관된 양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상대적으로 차별 인지도가 낮은 특성화고 학생과 남성 청소년에게서 가치 있는 노동을 위해 반드시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전체 58%, 일반고 53% : 특성화고 70%)는 응답이 높게 나왔습니다. 노동의 경제적 가치에 대해서도 이들 집단에서 돈을 더 많이 버는 일이 더 가치 있는 노동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전체 51%, 일반고 47% : 특성화고 60%, 여성 44% : 남성 57%)이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또 남성 청소년과 특성화고 학생 사이에서 기업의 이익과 노동자의 이익이 일치한다고 보는 비중이 높았습니다.

그래프 2. 가치 있는 노동을 하기 위해선 대학에 꼭 가야 한다

반면, ‘가사노동’에 관한 설문에서는 약 60%의 청소년이 가사노동이 임금노동과 동일한 가치를 가진다고 응답했습니다. 광주시 청소년 약 72%가 그렇다고 응답한 것에 비해 낮은 수준입니다. 이는 농어촌 지역의 가부장성이 청소년에게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농사 노동에 대해서는 약 92%의 청소년이 다른 모든 직업만큼 가치 있는 노동이라고 응답하고 60%에 가까운 청소년이 어느 정도 대우만 받는다면 농사를 짓고 살고 싶어서 했는데, 이 역시 농어촌 지역의 지역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프 3. 농사는 다른 모든 직업만큼 가치 있는 노동이다
그래프 3. 농사는 다른 모든 직업만큼 가치 있는 노동이다
그래프 4. 농민이 어느 정도 대우를 받는다면 나는 농사를 짓고 살고 싶다
그래프 4. 농민이 어느 정도 대우를 받는다면 나는 농사를 짓고 살고 싶다

장흥군 청소년의 비교적 높은 사회적 의식은 그대로 노동자의 권리에 관한 인식으로 이어져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대 약 82%가 같은 일을 하는 경우 성별⋅나이⋅학력 등에 상관없이 똑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응답하였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서도 약 80%의 청소년이 찬성하였습니다. 노동3권에 대해서도 높은 지지율을 보였는데 ‘노동조합의 필요성’에 대해 약 94%의 청소년이 찬성했고, ‘파업할 권리’에 대해서는 약 85%가 정당한 권리행사라고 응답했습니다. 여기서도 여성 청소년과 일반고 학생이 더 높은 비중을 보였습니다. 서울시 학생의 경우 약 58%만이 노동조합의 필요성에 찬성한 것과는 매우 대조적입니다.

그래프 5. 우리 사회가 잘 되기 위해 노동조합은 꼭 필요하다
그래프 5. 우리 사회가 잘 되기 위해 노동조합은 꼭 필요하다

반면 노동자의 개별적 권리 항목에 대해서는 인지 정도가 높지는 않았습니다. 근로계약서의 작성 의무가 사업주에 있음을 알고 있다고 답한 청소년이 67%에 그쳤는데, 이는 광주시 청소년 약 84%가 유사한 설문에 그렇다고 답한 것과 비교하면 낮은 수준입니다. 실제로 아르바이트를 경험한 청소년 약 74%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그 가운데 약 42%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야 하는지 몰랐다고 답했습니다. 나아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더라도 그중 62%는 받지 못했다. 법정 노동시간에 대해서는 약 64%의 청소년이 알고 있었고 퇴직금 지급요건에 대해서는 약 54%의 청소년이 알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노동인권 의식은 우리 사회가 누구의 어떤 노동에 경제적⋅사회적⋅문화적으로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지, 그러한 노동의 기회와 과정, 결과는 공정하고 평등한지에 대해 얼마나 인권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지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장흥군 청소년은 다른 지역 청소년에 비해 노동인권 의식 특히 노동 세계의 구조적 차별 문제에 대한 인지 정도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그런 구조적 차별에 관한 인지 정도가 높은 만큼 그 이상으로 노동 가치의 평등성과 노동3권 등 집단적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지지 정도도 높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개별 노동자의 권리를 규정하고 있는 노동관계법에 대해서는 대략 60%대의 청소년이 알고 있다고 해 다른 지역 청소년보다 인지 수준이 비교적 낮은 상태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래프 5. 비정규직은 동일 노동에 대한 차별이므로 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찬성한다
그래프 5. 비정규직은 동일 노동에 대한 차별이므로 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찬성한다

적게 벌어도 즐겁고 가치 있는 일 하면서 살고파

고향에서 농사지으며 살고 싶은 청소년을 위한 정책은?

장흥군에 거주하고 있는 청소년 가운데 약 40%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성인이 된 후에도 장흥에서 계속 살고 싶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 가운데 11.4%는 매우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그래프 7. 할 수 있는 일만 있다면 성인이 되어도 계속 장흥에 살고 싶다
그래프 7. 할 수 있는 일만 있다면 성인이 되어도 계속 장흥에 살고 싶다

같은 조사에서 청소년 51%가 ‘노동’이나 ‘노동자’란 말에는 거부감을 드러냈으나 ‘농사’에 대해서는 92%가 다른 모든 노동만큼 가치 있다고 보았습니다. 약 60%는 어느 정도 대우만 받는다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또한 ‘돈을 적게 벌더라도 가치 있거나 즐거운 일을 하면서 사는 게 행복’이라 생각한다고 응답한 청소년이 83.6%에 달했습니다.

그래프 8. 돈을 적게 벌더라도 가치 있거나 즐거운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행복이다
그래프 8. 돈을 적게 벌더라도 가치 있거나 즐거운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행복이다

이는 지역에 남는 것을 실패한 삶으로 규정짓고 농사를 비천한 일로 취급하는 기성세대의 생각이나 청소년 대다수가 도시 지향적 소비적인 삶을 추구할 것이라는 생각을 뒤집는 것으로 기존의 학교 교육 방향과 장흥군의 청소년 정책을 종합적으로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조사에 공동책임연구원으로 참여한 명인 인권교육연구소 ‘너머’ 소장은 “고향에 남아 농사를 짓거나 돈을 적게 벌더라도 가치 있고 즐거운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 청소년들을 위한 정책과 이런 진로를 희망하는 청소년을 지원하는 교육은 찾아보기 어렵다”라며 “지역사회가 이런 청소년을 일상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하며 비빌 언덕이 되어줄 수 있도록 군청과 교육기관, 지역민의 공동의 노력이 요구된다”라고 제안하였습니다.

지역의 청소년 정책이 그 지역에 살고 싶은 청소년이 아니라 학교 성적이 좋은 청소년에 집중되어 오히려 지역을 떠날 학생들을 배려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차별 없이 노동이 존중되는 지역사회를 만든다면 굳이 막대한 귀향 지원 예산을 쏟지 않더라도 청년들이 지역에 머물고 오히려 되돌아오지 않을까요.

김신 청소년노동인권 활동가
김신 청소년노동인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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