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세계유산 선암사’ 특별전 총괄 이종수 순천대 전 박물관장

이번 전시에 애 정말 많이 쓰셨다고 전해들었습니다. 준비는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그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작년 3월 10일에 국립순천대학교 박물관장에 취임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1년 후인 2023년 3월부터 연구년이 시작되어 해외로 나가기로 확정된 상황이었습니다. 짧은 박물관장 임기이지만 의미 있는 전시회를 열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2023년 4월부터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하기로 되어 있었죠. 그래서 정원도시이자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순천시에 걸맞은 전시를 해보고자 했습니다. 순천시에서 가장 큰 박물관이 바로 순천대 박물관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제가 관장에 취임했을 때 순천대 박물관에서 순천·여수·광양·보성·고흥의 교육청으로부터 지원받아 어린이들을 교육하고 있었는데, 그 아이들에게 훌륭한 우리의 문화재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순천시의 대표적인 문화재는 역시 세계유산 선암사와 승보사찰 송광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송광사는 사찰 내의 성보박물관에서 많은 유물을 전시하여 일반인들이 관람할 수 있는데, 그에 비해 세계유산 선암사는 오랫동안 분규 때문에 성보박물관 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일반인들이 소장 문화재를 관람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암사는 한국전쟁 이후에 결혼한 스님과 결혼하지 않은 스님들이 서로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분규에 휩싸여 왔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불교의 영향으로 많은 스님이 결혼해서 전국의 약 80%의 스님들이 결혼을 했는데, 해방되면서 결혼하지 않은 스님들이 전통사찰에서 결혼한 스님들을 쫓아내려 하면서 발생한 분규였습니다. 결국 결혼하지 않은 스님들이 대한불교조계종을 성립시켰고, 결혼한 스님들은 한국불교태고종을 만들었죠. 선암사는 바로 그 분규의 최전선이었습니다. 선암사는 한국불교태고종에서는 종단의 본사이자 총림이고, 대한불교조계종의 입장에서는 스물여섯 개 교구 본사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러한 소유권을 둘러싼 조계종과 태고종의 분규 때문에 그동안 선암사의 유물은 일반인들이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작년(2022) 5월 선암사의 태고종과 조계종 양측 주지 스님을 찾아뵙고, 2023년 4월부터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하니 이번 기회에 세계유산 선암사 불교 문화재를 국립순천대학교 박물관에서 전시하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다행히 양측 주지 스님이 순천대 박물관 전시를 흔쾌히 수락하면서 이번 전시회가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선암사 양측 주지 스님으로부터 승낙을 받았습니다만, 비용이 문제였습니다. 최소 수억 원은 있어야 제대로 된 멋진 전시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 예산으로는 이런 큰 전시를 감당할 수 없어서 순천시에 요청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작년 6월 1일 순천시장 선거가 끝나고 인수위원회가 설립되었고, 6월 17일 인수위원회를 찾아가 선암사 특별전 기획서를 제출하며 설명해 드리고 전시 비용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 아무런 답변이 없어서 전화로 문의하니 지원이 어렵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비서실장을 찾아가서 다시 요청을 드렸지만, 역시 부정적인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매우 실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전시를 포기할 수는 없어서 작년 8월 선암사와 순천대학교가 업무협약을 하는 자리에서 고영진 순천대 총장님께 선암사 특별전을 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고, 총장님은 전시에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을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해주셔서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순천대 전 박물관장 이종수 교수
순천대 전 박물관장 이종수 교수

도록 발간 등 부족 예산을 사비로 충당하셨다는데 얼마나 들었나요? 이렇게 물심양면으로 애쓰신 동기는 무엇인가요?

순천대 고영진 총장님의 도움으로 선암사 문화재를 박물관으로 이송하여 전시하는 것은 어찌어찌 해결되었는데, 지원금이 너무 부족하다 보니, 도록을 만들 예산은 되지 않았습니다. 도록 제작 비용을 알아봤더니, 순수 출판비만 최소 2천만 원이 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비를 털어서라도 도록을 만들고 판매해서 원금을 회수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도록 제작과 관련한 비용이 계속 증가하여 3천만 원을 훌쩍 넘었습니다. 이왕 진행된 일을 되돌릴 수도 없어서 빚을 내어가며 도록을 만들었습니다.

전시에 도록이 없다면 반쪽짜리 전시가 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전시의 격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더구나 세계유산 선암사 문화재의 전시에 도록이 없다는 것은 순천시와 순천대학교의 자존심에도 용납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도록을 만들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전시회를 관람하고 도록을 담아갈 수 있도록 승선교를 디자인한 에코백도 만들었습니다. 도록과 에코백은 순수 제작비만 받기로 하고 가격을 책정하였습니다.

전시회가 생각보다 성대하게 출발하였습니다. 생각나는 사람이나 에피소드, 개인적 소회를 알려주세요.

3월 23일 전시회 개막식에 순천시와 인근 사찰의 스님들을 비롯하여 정치인, 순천시청 직원, 학교 교직원과 학생, 박물관 문화대학 수료생, 일반 시민 등 많은 분이 참석해주셨습니다. 개막식을 하는 도중에 전시를 도와주셨던 많은 사람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박물관 학예사와 연구원들도 고생을 많이 하였지만, 박물관 소속도 아니면서 전시 전체를 기획하고 도록을 총괄 편집한 정선유 선생이 가장 먼저 생각이 났습니다.

정선유 선생(동국대 박사 수료)은 고성 옥천사와 해남 대흥사 성보박물관에서 학예사를 하면서 몇 차례 불교 문화재 전시 경험이 있었는데, 마침 작년 9월 이후 박사논문을 쓰기 위해 하던 일을 그만두고 공부에 매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급한 마음에 정선유 선생에게 선암사 전시를 도와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순천대 박물관에는 불교 문화재 전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전문가의 전시 기획이 필요하였습니다.

다행히 정선유 선생이 도와주기로 하고 순천과 해남을 오가면서 전시와 도록 제작을 총괄하였습니다. 순천에 오기로 한 날에 폭설이 내려서 며칠 동안 오지 못한 때도 있었고,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오가면서도 전시에 차질이 없도록 아픈 몸을 이끌고 와주었습니다. 또 전시에 필요한 받침대를 구입 할 비용이 없다고 하자 대구박물관에서 은해사 전을 마치고 폐기하려고 하던 받침대들을 구해 차에 실어 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정선유 선생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이번 전시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박물관에서 강다유, 이현호 연구원이 정선유 선생을 보조하였는데, 이 두 사람은 학예사 자격증을 발급받기 위해 박물관에 있는 연구원으로서 별도의 수고비를 받지 못하는데도 조금도 불만을 드러내지 않고 열심히 도와주었습니다. 이 외에도 선암사 박물관장 도산 스님, 조계종 이종길 종무실장님도 아무런 이익이 없는데도 전시가 성공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유물들이 많이 훼손되고 있다는 게 사실인가요?

선암사 성보박물관 수장고로 들어가면 온도 습도가 어느 정도 조절되고 있겠지만, 문화재라고 하는 것이 사람의 손길이 가고 애정이 가야 그게 빛이 나는데 오랫동안 관리하는 사람이 제대로 드나들지도 못하고 그대로 있는 상황이다 보니까 이 문화재들이 서서히 침식되어 가는 현상들을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면서 알게 모르게 훼손되어 가고 있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불상 같은 경우도 시간이 지나면 도금했던 금이 떨어져 나가고 서서히 변화돼 가는데 개금도 해야 하고 닦아도 줘야 하고 또 종교적인 성배물로서 사람의 손길이 가야 더 가치가 있고 빛이 나는데 그동안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던 거죠.

앞으로 선암사 유물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요?

제일 중요한 게 제대로 된 박물관을 짓는 게 중요한데요. 수십 년 전에 지어진 박물관 구조로는 유물들을 제대로 보존할 수가 없기 때문에 새롭게 현대의 기술로 새롭게 박물관을 짓고 수장고를 잘 만들어서 관리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상주하면서 유물들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하고, 또 많은 사람이 관람할 수 있도록 전시도 하고요. 우리 모두의 관심과 손길이 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생각하시는 순천대 박물관의 나아갈 방향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국립순천대학교 박물관은 순천시에서 가장 큰 규모의 박물관으로서 많은 발굴 경험과 기증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지역에서는 순천시립 박물관의 건립 필요성을 이야기해왔습니다만, 이런저런 여건 때문에 박물관을 짓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분간만이라도 순천대학교 박물관이 순천시를 대표하는 박물관의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더구나 순천대학교가 시내에 있고, 또 순천대 박물관의 접근성이 매우 좋으므로 순천시의 박물관으로서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순천대 박물관이 그러한 역할을 자임하지 못하였고, 순천시 역시 순천대 박물관을 활용할 생각을 하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순천대 박물관이 대학박물관으로서만이 아니라 순천시를 대표하는 박물관으로서 역할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뿐만 아니라 순천시는 정원도시이자 문화도시를 표방하고 있으므로 문화도시에 걸맞은 박물관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만약 순천대 박물관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순천시에 박물관이 새로 생기는 효과뿐만 아니라, 순천대학교의 위상도 한층 높아져서 지역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리라 생각됩니다.

한국사를 전공하는 학자로서 순천시민에게 하시고픈 말씀이 있을까요?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고, 문화재는 역사가 남겨준 선물입니다. 그 문화재는 우리가 소중히 보존하고 후손에게 물려줄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가문에 수치스럽다는 이유로 문화재를 외면하거나 훼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불교 문화재는 종교적 의미의 문화재가 아니라 우리 선조들이 남겨준 문화재입니다. 우리나라 문화재의 70% 이상이 불교 문화재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마치 서양에서 천주교 문화재들이 관리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선암사 불교 문화재를 종교적 유물로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 순천 시민의 문화재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그 가치를 보존하고 관리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는 점을 늘 인식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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