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편집국장
이정우 편집국장

한 발 앞으로 나아간듯 하다가 두 발 뒤로 물러서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앞으로 나아갈 때는 직진인지 사선인지 가름하기 어려웠지만, 뒤로 물러설 때는 성큼 뒷걸음치는 느낌이다. 앞으로는 주저주저 했는데 뒤로는 곁눈질도 안 한다. 한국 정치도 순천 정치도 그런 형세다.

시민들은 지난해 지방 선거를 통해 더불어민주당 일색인 지역 정치에 균열을 냈다. 본선보다 치열했던 경선을 치르고 간택된 민주당 후보를 탈락시키고, 무소속 시장을 선출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반대를 위한 선택은 생산적이지 않았고 퇴보를 초래했다. '미운 놈 혼내주는' 선거는 '더 미운 놈이 호령하는' 세상을 만들어버렸다.

무소속 시장은 천하무적 안하무인 거룩하신 '임금'이 되었다. 번득이는 발상으로 세금을 이리저리 끌어모아 근사한 치적 쌓기에 '올인'이다. 국가정원을 완전히 뒤집어 확 다 바꾸느라 여념이 없다. 수십억 원을 들여 멀쩡한 도로를 잔디밭으로 만들어버리는 배짱도 대단하고, 16억 원을 들인 평화정원을 단숨에 폐기처분해버린 몰역사성도 혀를 내두르게 한다.

그래 좋다. 번드르한 국가정원이 꾀죄죄한 정원보다야 낫겠다. 하지만, 따라가느라 바짓가랑이 찢어진다는 주위도 돌아보시라. 시청에 출퇴근할 때 이 추운 겨울 칼바람 맞으며 노숙하는 노동자에게 눈길이라도 한번 주시라. 아무리 뭐라 해도 다른 거 다 떠나서 사람이 갖고있는 기본, 측은지심을 저버리지 마시라.

법대로 하자면 왜 정치가 필요한가. 고리타분한 법 조문 위에 법 정신이 있고, 한낱 법률 위에 헌법이 있다. 법조인 출신이라면 헌법을 하늘처럼 받들어야 하는게 아닌가. 헌법의 기본 정신인 민주공화국의 의미를 되새겨보시라.

민주는 독재의 반대다. 공화정은 군주정의 반대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겉은 민주공화정으로 보이지만 속은 군주독재정의 모습이 다분하다. 민주공화정이라는 허울에는 선거라는 화장품이 일익을 담당한다.

독일의 철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가 1960년대 독일 사회를 보고 “민주주의에 ‘반’하는 파시즘보다, 민주주의 ‘속’에서의 파시즘이 더 위험하다”고 외쳤다. 아도르노가 비판한 ‘일상의 파시즘’은 우리 사회에 굳건하게 파고들어 여전히 건재하다. '박정희식 개발독재'의 망령이 우리 지역에 횡행한다.

2023국제정원박람회의 성과를 위해서는 한 마을의 불편함은 감수해야 하고, 일류 순천의 미래를 위해서는 한 부류의 반대는 무시해도 된다. 목적을 위해 과정은 보잘 것 없고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취급한다. 이런 시장의 생각이 일사천리로 시청 직원들에게 물들고 있다.

순천만잡월드사태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시청과 업체, 노동자 간의 협상 약속은 밥 먹듯이 지켜지지 않았다. 약속을 서로 해놓고 사전에 아무 말 없이 안 나와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이번 겨울, 순천만에 흑두루미가 사상 유례없이 몰려왔다. 역대 최대의 폐사체가 발견되었다. 그런데도 조례에서 규정한 습지위원회는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 조례는 순천 지역의 법이 아닌가. 나몰라라 하고 쿵덕쿵덕 처리해버린다.

사람은 밥으로 사는 게 아니다. 사람은 경제적 동물이 아니다. 신의가 무너졌는데 협상이 어떻게 제대로 될 수 있으며, 있는 조례도 안 지키는데 어찌 일류가 될 수 있겠는가.

높은 곳에 있는 사람만이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숙일 수 있다. 이미 아래에 붙박인 처지에선 더 내려갈 수 없다.

오호....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순천시청 전경 (제공=순천시)
순천시청 전경 (제공=순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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