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포항시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하였다. 이후 건축물의 내진 규정이 강화되어 건설 현장에 엄청난 양의 철근과 고강도 콘크리트가 들어가면서 건설단가가 올랐다. 같은 해 12월에는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에 화재가 발생해 각종 내화규정이 생기면서 건축비가 또 인상됐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물류비용이 상승하며 공사비가 10% 이상 높아졌다. 올해 초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또한 건축 원자재 값을 20% 이상 상승시켰다. 집을 짓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출을 일으켜 공사비 약 절반을 마련하는데 올 하반기부터 대출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여 지금은 10%대에 이르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파트 매매시장에 거래절벽이 와서 살고 있는 아파트가 팔리지 않아 더더욱 집을 지을 수 없다. 이 모든 상황이 건축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나를 비롯한 건축계 전반에 경제적 타격을 주고 있다. 하지만 풍요로운 자연의 품을 지향하는 나의 생태적 관점에서는 이로운 일이기도 하다.

집을 짓는 데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투입된다. 에너지 사용은 곧 탄소배출을 의미한다. 집에서 생활하는 과정에서는 더욱더 많은 탄소가 배출된다. 국제에너지및지속가능성컨설팅회사(ECOFYS)의 연구에 따르면 전체 최종에너지 소비량의 40%가 주택/건물 부문으로 가장 많고, 교통/수송(32%), 산업/상업(28%) 순으로 탄소를 많이 배출하고 있다. 건물에서 발생하는 탄소량 중 절반 이상은 냉방과 난방이 차지한다. 최근 건축물리학을 바탕으로 자연에너지만으로 살 수 있는 <탄소중립건축물>을 구현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긴 하다.

어찌되었건 지금은 건물을 짓기도 쉽지 않고 또 많이 지어서도 안 되는 ‘최소건축’의 시대가 왔다. 전국 평균 주택보급률은 2008년 100%를 넘어섰고, 인구 증가율(2022년 기준 –0.23%)이 감소세로 전환된 것을 고려하면 기존 건축물만 유지해도 충분하다. 공간 공유의 지혜가 필요하다. 청년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청년 셰어하우스, 초고령화 사회의 케어공유주거, 스타트업 기업을 지원하는 공유오피스 등 이미 공유건축의 여러 유형이 시도되고 있다. 순천 남초등학교의 비타민센터는 학교의 유휴교실을 지역사회와 공유하는 형태이다.

예전에는 건축물을 새로 짓는 일이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면 이제는 쓰이지 않는 공간을 혁신적으로 살리는 일이 활력이다. 과잉 건축을 경계하고 건축물의 용도를 확장해야 한다. 공공기관마다 있는 대회의실, 세미나실 등은 비어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건축물 간 네트워크를 통해 공간의 이용률을 높이고, 공공기관의 유휴공간을 민간에 개방하는 것도 필요하다.

생태문화도시에 어울리는 건축물을 ‘짓기’보다 생태문화적 ‘활용’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건축을 기획할 때 주변을 먼저 살펴보자. 우리가 필요로 한 공간이 이미 어딘가에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필요하다면 필요한 만큼만 최소한으로 짓자.

박병열 건축사, 순천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위원장
박병열 건축사, 순천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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