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냉난방비 수요량(제공: 시인공간)
연간 냉난방비 수요량(제공: 시인공간)

지구는 서서히 죽어가는 중이다. UN IPCC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의 추세대로 온실가스를 계속 배출한다면 21세기 말 한반도 평균기온은 6℃, 저감 노력이 실현된다면 3.4℃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어쩌면 지구의 멸망은 공상과학에서 말하는 행성 충돌이나 원자 폭발 같은 단기적인 방식이 아니라,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홍수·가뭄과 같은 방식으로 서서히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편리하고 쾌적한 삶을 누리고자 했던 그동안의 방식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르고 있다. 지금 인류가 겪는 각종 자연재해와 공해, 질병이 그 대가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문명을 모두 버리고 산업혁명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도리어 식기세척기, 공기청정기, 의류살균건조기 등 삶을 편리하게 하는 제품이 시시각각 출시됨에 따라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기후변화는 온실가스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온실가스는 에너지사용에서 기인한 것이다. 우리는 에너지사용을 파격적으로 줄일 수 있는 실천 가능한 방식을 찾아야 한다.

물론 여러 분야에서 에너지 절감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가장 획기적이며 저항 없이 줄일 수 있는 분야는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는 건축물의 냉난방이다. 건축 물리학적 원리를 정확히 이해하여 설계·시공한다면 건축물에서의 냉난방 에너지는 자연에너지로 100% 전환할 수 있다. 진공 보온병이 가열하지 않아도 오래도록 온기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일러가 필요 없는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남쪽에 설치된 커다란 창은 보일러보다 20% 정도 많은 열을 생산한다. 창이 겨울철 최고의 난방장치인 셈이다. 여름에는 햇빛을 잘 막아주는 처마가 에어컨보다 더 성능 좋은 냉방장치가 된다. 같은 체적 대비 외피 면적을 20% 줄였다면 단열재를 4cm 얇게 사용하여도 에너지 성능이 같게 된다. 에너지효율이 높은 집은 보일러와 에어컨의 용량을 기존과 비교해 1/4 정도로 줄여도 충분하다. 열 회수형 환기시스템은 사람의 폐(호흡기관)와 같은 역할을 하는데 빠져나가는 공기의 열을 외부에서 들어오는 공기에 전달하여 창문으로 환기를 할 때보다 열 손실이 80% 이상 줄어든다. 또한 외부의 공기가 필터를 통해 걸러져 급기 되므로 별도의 공기청정기나 산소발생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니 1석2조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건축방식을 생태건축 또는 저탄소 건축이라 할 수 있는데 보편적으로는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쓰지 않는다는 의미로 패시브(수동적)하우스라 부른다. 패시브하우스는 기존건물보다 난방비용 90%, 냉방비용 50% 정도를 절감하는 장점 이외에도 외부 소음, 미세먼지, 벌레 등 유해물질이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높은 기밀성을 가진다. 인체의 면역력은 온도와 산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체온 1℃ 저하 시 30%, 혈중 pH 농도 0.1 저하 시 10%가 감소한다. 패시브하우스에서의 실내 모든 지점은 온도 차가 3℃ 이내로 유지되어 복사온도 비대칭에 따른 면역 교란이 일어나지 않으며 CO2 농도를 1,000ppm 이하로 유지해 혈액의 산성화를 막는다. 결로나 곰팡이가 발생하지 않으니 건강은 물론 습기에 의한 하자도 발생하지 않는다. 일반 건물에 비해 연간 약 4,000kg 정도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니 인간과 지구 모두에게 매우 이로운 건축물인 것이다. 유일하게 지적된 초기 공사비가 비싸다는 단점은 프로젝트 관리 매뉴얼 구성, 자재의 국산화 및 전문시공 인프라 구축, 최적 시공을 위한 디테일개발, 건축주의 심플한 외피 디자인 추구 등으로 일반 공사비와 거의 차이가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패시브 기술은 신축뿐만 아니라 리모델링할 때도 적용할 수 있다. 그린뉴딜의 핵심과제인 그린리모델링은 노후건축물을 수리하여 패시브하우스 수준에 근접하게 만드는 것을 말하는데 공공기관을 시작으로 민간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집이나 아파트를 리모델링할 때 마감재와 디자인을 바꾸는 수준을 넘어 에너지 성능을 높여준다면 환경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삶을 지속해서 보장받는 게 쉬우면서 확실한 실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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