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자·의·삶·의·현·장 - 보물창고 지킴이 김점순씨

나에게 필요 없는 물품이 누군가에게는 알뜰한 생활용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라는 아나바다 운동이 생활 속에서 상설적으로 실천될 수 있도록 순천시는 1998년 ‘그린순천21자원재활용백화점’ 운영을 시작하였다. 자원재활용 백화점은 많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기증문화를 이끌어냈고 나눔장터라는 새로운 모델의 실천운동도 탄생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그 밑바탕에는 15년 긴 세월동안 청춘을 다 바쳐 헌신해 온 한 아줌마가 있다. 재활용품을 스스로 보물이라고 말하는 그린순천21자원재활용백화점 김점순씨(50세).

▲ 행복바이러스를 퍼트리는 편안한 아줌마 자원재활용백화점 지킴이 김점순씨. 사람을 좋아해서 늘 사람 곁에 있는 것이 행복하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누가 잠깐 아르바이트를 해보라는 거예요. 돈보다는 사회봉사 개념으로 시작했는데 여러 사람을 만나다보니 행복하더라고. 내가 사회를 위해서 뭔가를 하고 있는 뿌듯함도 있고, 보람도 있고. 그러다보니 내 청춘을 이곳에서 다 보내게 됐네!”

백화점 물품은 기증과 수거함을 통해 공급받고 있다. 기증하겠다는 전화가 오면 직접 가정으로 찾아가서 받아오고, 수거함은 정기적으로 순회하여 차로 싣고 오는데 그 무게나 양이 여자의 힘으로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다. 일하면서 얻은 건 튼튼한 근육과 힘이란다.

“어떤 것은 재활용할 수 없는 물품도 많이 있지만 수선하고 리폼해서 새롭게 탄생하기도 해. 결국 이 일이 내 자신을 살리고, 내 가정을 살리고, 우리 사회를 살리고, 지구를 살리는 일이니까. 비록 나는 좀 힘들지만 이 노력으로 인해 죽어가는 환경을 살리고, 내가 살고 있는 순천을 건강하고 아름다운 도시로 만든다고 생각하면 너무 좋아. 비록 누군가가 입었던, 사용했던 헌옷이고 중고 생활용품이지만 필요한 사람들이 저렴한 가격에 잘 사 입고 유용하게 쓸 수 있으니까 그런 모습을 볼 때면 흐뭇하고 기뻐.”

사랑방, 쉼터, 참새방앗간 그리고 나눔중독
1998년 시작한 자원재활용백화점 활성화와 함께 아껴 쓰려는 시민의식도 높아졌다. 아나바다운동이 생활실천으로 자리매김도 되었지만 경기침체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높아가는 물가는 가정경제를 힘들게 했고 그 여파로 개인이 운영하는 구제사업장도 우후죽순 늘어났다.

▲ 참새방앗간이 된 곳. 오다가다 이무롭게 찾아가는 곳.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쉼터이고 사랑방이다.
개인 구제사업장의 확산은 김점순씨가 일하는 자원재활용백화점의 공급에 큰 차질을 가져왔다. 시작 무렵에는 수선담당자와 수거담당자를 비롯해 함께 일하는 인력이 있었으나 지금은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공공근로 1명의 인력지원만 받고 있다. 중년 여인의 몸으로 옷 보따리 물품보따리를 이고, 지고, 수거하며, 분류하며 지칠만도 하지만 보람 하나로 버티고, 사람이 좋아 버틴다.

“오래 지속적으로 운영하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와서 이야기를 나누고, 쉬었다 가는 사랑방 역할이자 쉼터가 됐어. 사람들이 이런저런 사연을 말하면서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고 가. 참새방앗간처럼 오지 않으면 허전하다고도 하고. 중독이 되었다고들 말해. 아무래도 개인사업장이 아닌 시가 운영한다는 점에서 공익을 위한 일이라는 공감대가 있는 것 같아. 그래서 더 편안하게 생각하고 부담없이 찾아오는 곳이지. 오다가다 차 한 잔 마시러 오고, 때론 화장실 때문에 들르기도 하고. 떡 먹어라, 고구마 먹어라, 김치 한 조각 들고 오기도 하고. 없는 반찬에 함께 밥도 먹고. 모두가 편안하게 생각해. 그런 점이 다른 곳과 차별성이 있다고나 할까?”

오랜 동안 늘 찾는 단골이 많다. 그래서 단골에게 붙여진 별명도 다양하고, 단골의 취향과 치수도 잘 안다. 단골에게 권하는 옷마다 백발백중 좋아한다. 김점순씨는 단골들의 코디네이터인 셈이다. 2천원 3천원의 저렴한 가격에 뽐낼 줄 아는 사람들,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 김점순씨는 그런 사람들이 좋다.

“편지를 보내주신 80대 할머니 한 분이 계셨어. 일본에서 공부했을만큼 잘 살았고 남편도 경찰이었는데 이혼을 하고 외아들과 살았다고 해. 아들 하나 바라보고 삯바느질로 공부 가르쳐서 교장까지 되었는데 정작 나이든 어머니를 모시지 않아 혼자 사셨어. 얼마나 외롭고 한이 많았겠어. 그 할머니가 절절한 당신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위안이 많이 되었나봐. 나중에 아들이 모시고 가면서 연락이 끊겼는데 그때 떠나시면서 너무 고마웠다고 편지를 보내셨더라고. 건강하게 잘 계시는지 궁금하네.”

내 손길이 필요한 곳을 찾아서
김점순씨는 고아원을 운영하셨던 큰아버지의 영향으로 사회복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뭔가 도울 일이 없는지, 사람을 생각하고, 사람만 생각하는 사람이다.

▲ 나에게는 필요 없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유용한 살림의 보탬이 된다. 더불어 지구를 살리고 환경을 지키는 일이다.
 
50이 넘은 나이에 젊은이들 틈에서 사회복지학과 양성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하고 지금은 심리상담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학교 다니며 피곤함보다는 사회에 내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 아주 많구나하는 생각부터 들더란다. 좀더 공부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고, 아픔을 달래주고 싶단다.

“다문화 가정에 도서랑 아동복 지원도 하고, 독거노인 물품지원, 해외 선교활동 나갈 때 의류 지원도 많이 하고 있어. 초창기에 남북관계가 좋을 때는 북한에 옷도 보내고 했는데 지금은 못하고 있어 아쉽네.”

▲ “재활용품은 곧 보물이다” 버리지 말고,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가시게요!
나누다 보니 나눔에 중독되어 버린 김점순씨. 요즘 자원재활용 백화점을 찾는 발걸음은 여전한데 공급이 많지 않아 힘들다. 가정마다 살림이 어렵다보니 누구나가 허리띠를 졸라 매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기증도 많지 않다. 2천~3천원에 살 수 있는 구제물품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지는 추운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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