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탐방-교사도 학생도 학교생활이 재미있다는 벌교여고

학교존폐위기를 창의, 인성교육의 기회로 만들다

▲ 전체학생회의시간 풍경
“학교생활이 재미있습니다.”

벌교여고 혁신부장을 맡고 있는 정홍윤(45세) 교사의 말이다.

입시위주의 교육으로 찌들어 있는 한국 사회에서 교사가, 그것도 고등학교 교사가 학교생활이 행복하다니, 대체 학교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 걸까?

인구 5만이 넘던 벌교읍은 이제 인구 1만 4000명으로 줄었고, 한 때 1100명이던 벌교여고 학생은 겨우 66명이 되었다. 그나마 해마다 학생 수는 더 줄어들 전망이다. 전국 시골학교의 사정은 비슷하다. 학교로서는 뭔가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될 형편이었다. 벌교여고 교직원들은 교육의 위기와 학교 존폐의 위기 상황을 인식했고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가 있었다.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언제나, 해답을 찾게 하는 힘이 되어 준다.

전교조 전임 활동가로 정책실장을 맡았던 정홍윤 교사가 2년 동안의 전임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논의가 본격화 됐다. 그는 전교조 정책실장으로 일하면서 혁신학교로 발돋움하는 다른 학교의 다양한 사례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고, 앞으로의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 벌교 환경운동연합과 함께 벌교지역 생태탐사
지난해 12월 학교로 복귀한 후, 교사들과의 연수를 통해 “21세기 교육은 입시경쟁교육이 답이 아니다. 20세기 산업사회는 막바지에 왔고, 이제는 창의, 인성교육으로 전환할 때”라며 그동안 혁신학교로 시도된 열다섯 군데 학교의 사례를 들어 벌교여고에 맞는 교육과정을 제시했다. 교사들은 현행 입시위주 교육의 문제를 절실하게 느끼던 터라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교육의 형태에 갈급했고 토론은 치열했다. 학교 시스템을 전면 수정하는 혁신 학교는 전체 교직원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열띤 토론을 통해 “학교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 구체적인 상에 대해 합의할 수 있었다. 벌교여고 이명은 교장은 교사들의 움직임에 동의하고 지지해주었다. 들어갈 예산이 만만치 않았으나 변화를 지체할 이유는 아니었다. 기존에 있는 학교 예산을 필요한 곳에 집중했다. 어디에 방점을 두느냐에 집중하고, 다른 예산은 줄였다. 먼 길을 와야 하는 외부 강사는 학교의 취지를 이해하고 마음을 내주었다

▲ 사제지간 아침산책
학생과 교사가 행복한 배움터를 꿈꾸는 이곳은 등교하는 첫 풍경부터 다르다. 학교에 등교하여 바로 수업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학생과 교사가 함께 아침산책을 한다. 길을 걸으며 교사와 아이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때로는 풀리지 않는 가슴앓이도 드러낸다. 아침산책으로 기분 좋게 시작하는 첫 시간은 하루의 배움을 엮어나가는 데 중요한 일이었다. 학생들은 여느 학교의 고등학생들과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학교생활 어떠니?” 묻자 활짝 웃으며 대답한다.

“재미있어요. 다양한 활동을 해요. 선생님들은 우리들 말을 잘 들어주고 존중해줘요.”

학생들은 교사의 일방적 지시와 계획으로 이루어진 수련회가 아닌,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해서 떠났던 통합기행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하루 다녀오는 소풍은 형식적인 것에 그치고, 수련회의 경우 아이들에게 획일화된 것이라 의미 없는 것으로 인식하여 학생 스스로가 코스와 주제를 정해 기행하는 형태의 통합기행을 추진했다. 1학년은 전주한옥마을, 2학년은 동학혁명 유적지 답사를 했다. 여름방학에는 ‘나를 찾아 떠나는 지리산 둘레길’ 기행을 했고, ‘세계 속의 나를 찾아 떠나는 해외문화체험’으로 일본을 다녀왔다.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텃밭일구기, 동아리 활동, 독서토론, 한 달에 한번은 책이나 시집을 쓴 인물들을 초청해 인문학 아카데미를 진행한다.

▲ 벌교여고 동아리(연극부)
교사 전원이 독서토론 모임을 한 팀씩 맡았다. 3개월에 한권의 책을 선정하여 읽고, 토론하는 모임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신문반, 방송반, 그룹사운드, 댄스부, 연극부 등 동아리 운영도 하고 있다. 그뿐 아니다.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병행되고 있다. 벌교환경운동연합과 영화를 함께 보고, 지역사회 생태조사도 함께 진행한다. 학교가 단순히 공부만 하는 공간이 아닌 놀이의 공간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시와 영화가 있는 뒤뜰야영’도 기획했다.

▲ 교사와 학생들이 텃밭에서 일군 야채를 나누어 먹으며‘시와 영화가 있는 뒤뜰 야영’
전교생이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나눌 수 있으니 대학 원서를 쓰거나 취직을 할 때 자기소개서에 쓸 이력도 많겠다.

▲ 노동상담소를 운영하는 하종강씨의 강연을 듣고 감동한 학생들은 학교 문밖까지 나와 배웅했다.
지금 벌교여고의 비전은 ‘인문학을 중심에 둔 고등학교’로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올해는 혁신학교의 프로그램을 시도했고, 내년에는 차차 수업을 혁신해 나갈 계획이다. 현재 교사들은 모둠활동을 통해 학생들 사이에서 배움이 일어나도록 하는 ‘배움의 공동체 수업’에 대한 연수를 받고 있다. 2013년의 경험을 토대로 무지개 학교도 신청할 계획이다.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학교생활에서 다양한 활동과 경험을 거친 벌교여고 학생들은 10년 후 어떤 모습일까? 이런 교육이라면 미래를 기대할만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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