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요...

선생님, 아직 아무에게도 얘기해보지 못한 일을 지금 얘기하고 싶어요. 저는 중학교 3학년 고아라(가명)인데요, 아직도 잊히지 않는 일이 있거든요. 딸이 없던 외숙모는 저를 매우 예뻐하셨고, 그래서 저는 방학 때가 되면 곧잘 며칠씩 놀러 가곤 했어요. 제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인 거 같아요. 그때도 삼촌네 집에 놀러 갔는데, 사촌오빠는 저랑 무척 친하고, 잘 해줬어요. 어느 날 놀고 있던 저를 오빠가 방으로 불렀어요. 그리고는 갑자기 문을 잠그고, 제 입에 혀를 집어넣었어요. 또 저를 침대에다가 눕히고는 옷을 벗기고 성기를 막 갖다 대었어요. 저는 반항을 했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결국 한참을 실랑이를 하다가 멈췄는데요, 그때는 어려서 무슨 일이 어디까지 일어난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 이후 무슨 일이 있을까 봐 항상 불안에 떨었는데, 다행히 지금까지 신체적인 증상은 없었어요. 그렇지만, 저는 그때 그 장면이 생생하게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고, 모든 남자를 혐오하게 되었어요. 정말 어떻게 하면 좋지요?

이러면 어떨까요

아라양의 이야기를 들으니 참으로 마음이 아프네요. 그것도 믿었었고, 또한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사촌오빠에게 그런 일을 당했으니 얼마나 사람들을 신뢰하기 어려울지 안타까운 마음이 드네요.

우선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그동안 그 이야기를 마음속에 묻어두었었는데, 이렇게 글로나마 표현하게 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격려와 위로를 드리고 싶네요. 더더군다나 그때의 그 심정을 누가 정말 이해해 줄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들고, 또 얘기하면 다시 그때 무섭고 정말 치를 떨 만큼 싫었던 기억이 자꾸 되살아나기 때문에 묻어두고 싶은 마음이 들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데도 얘기하지 않고 묻어둔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초등학교 4학년 때에 일어난 일이지만 계속해서 마음속에서 그 장면이 되풀이되고, 그렇다 보면 지금은 어느 정도 큰 중학교 3학년이지만 마치 어린아이처럼 그 일에 대하여 무력하게 느낄 때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아라양이 겪은 일로 인해 신체적인 커다란 문제는 생기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혹시 내가 알지 못하는 내부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다거나, 통증이 가끔 느껴진다거나 한다면 지금이라도 산부인과의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유익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사춘기를 지나지 않은 여자아이의 몸은 성인의 몸과는 달라서 상처가 생기는 수도 있고, 균에 감염될 염려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심한 마찰이 있지 아니하고 다행히 생리도 정상적으로 하는 상태라면 신체적 부분에 대해서는 안심을 하셔도 될 것 같네요.

그렇지만, 그 일의 가장 큰 영향은 아마도 심리적인 영향일 것입니다. 혹시 처음에는 이게 무엇이었나 멍하기도 하고, 혼란스러운 상태이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그때의 영상은 점점 더 뇌리에 강하게 박히고, 그로 인해 계속해서 죄책감, 우울, 분노, 남자들에 대한 혐오감으로 시달리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믿기도 어렵게 되고요.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요, 나에게 정말 예상할 수 없었던 그런 일이 일어났지만, 그것은 내가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잘못한 것은 없습니다. 내가 사람들을 믿었던 것도 잘못은 아니랍니다. 오히려 나 자신이 어렸을 때 겪었던 그 일에 대해 충분히 슬퍼하여도 될 것 같습니다. 그건 내가 원했던 일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결과적으로 나는 성적으로 더럽힘을 당한 것도 아니랍니다. 그것은 마음의 문제이지 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런 어려운 일을 경험했어도 여전히 변한 것은 없으며 소중한 존재랍니다. 그리고, 또 그것 때문에 내 인생을 가로막을 어떠한 일도 없답니다.

또 한가지, 이 사건을 통해서 아라양은 내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새롭게 배워야 합니다. 흔히 성폭력은 뭐가 뭔지 모르는 모호한 상태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사촌 오빠가 그렇게 나에게 돌변할지도 몰랐고, 나는 싫지만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도 모르고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초등학교 4학년이 아니라 중학교 3학년으로서 당당히 그러한 비슷한 상황에 부닥칠 때에 단호하고도, 엄중하게 거절하고, 또 내 의사를 명확히 전달하는 것이 나를 스스로 보호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주위의 믿을만한 사람과 꼭 상의할 수 있으면 좋겠고요. 혼자가 아니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음을 꼭 기억하세요.

조연용 순천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센터장
순천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 (국번없이) 1388/www.scyouth1388.or.kr / (061)749-4402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