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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날, 그녀들의 의상실
임숙영 기자  |  lsy@agora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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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 승인 2013.08.14  15: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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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에 괴목장옆 하천으로 큰 나무 아홉그루가 있었다하여‘괴목구나무장’이라고 한다. 괴목에 큰수해가 있었는데 이 아홉 나무를 잡고 살아남은 사람이 많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생일이여, 생일. 생일잔치하는 날!”

“어? 오늘 어머니 생신이세요? 축하드려요!”

생신을 맞으신(?) 아주머니 주름살에 순박한 미소가 번진다. 도통 모르는 소리를 하고 말았다.

“장에 오면 그날은 일을 안하고 쉴 수 있으니까 장날을 생일날이라고 해. 생일이여서 생일날인 것이 아니고”

요즘은 점심무렵이면 생일잔치가 끝나버리는 괴목장을 찾았다. 일찌감치 자리털고 빈자리인 도로변 채소전, 몇몇 어전과 과일좌판대. 도심 아파트 앞 노점보다도 한산한 재래시장이 되고 말았다.

장날이면 머리에 파마도구를 꽃처럼 달고서 한 바퀴 돌다가 안 살 것도 하나씩 사게 되고, 나선 걸음에 동무와 탁주도 한 사발씩 나누나보면 한나절이 그렇게 훌쩍 가곤 했다.

“아침 7시쯤 되면 사람들이 와. 장 봐다놓고 아침밥 묵을라고. 밥맛이 없응께 그냥 일찍 장으로 와부러”

   
▲ 47년 넘게 재래시장에서 옷장사를 하고 있는 윤상오, 조정숙 부부. 괴목장에는 간판도 없는 옷가게가 두 곳 뿐. 오늘이라도 당장 안하고 싶지만 몸이 따라줄 때까지 해보자는 천생연분.
시골 대부분이 노부부거나 독거노인이다 보니 밥맛도 없으려니와 일찍 장을 보고 다시 밭으로 들로 일을 나가야해서 재래시장은 아침 무렵 잠깐 활기가 있을 뿐이다. 지금은 반나절 생일이 된 것이다. 그것도 어쩌다 가끔.

47년을 넘게 괴목장, 구례장, 산동장을 오가며 옷을 팔고 계시는 윤상오(68), 조정숙(66) 부부는 건강이 따라주는 날까지 장사를 하고 싶지만 이들의 건강보다도 시장이 먼저 문을 닫는 실정이다.

“구례장으로 합해분다. 순천장으로 합해분다 해싼디 안 없애고 있어. 요렇게라도 있응께 다행이여”

   
▲ 사람구경 나온 고행수(75세) 어르신. 밭에 뿌릴 무씨와 경노당에서 나눠먹을 부침개재료 부추 한 다발 사셨다.
   
▲ 색깔이 너무 곱아 부담스러운데 주위에서 자꾸 나이들수록 곱고 화사한 걸 입으라한다. 잘 어울리요?
   
▲ 지난 장에 샀던 유리구두(?). 상표도 떼지 않고 이번 장날에 개시했다.
   
▲ 장에서 만난 우리는 사돈지간, 사돈지간이라고 어려울 건 없다.
   
▲ “이왕이면 색이 고분 것이 좋제! 어떠요? 우리 이삐요?”새 바지 하나 샀다. 기분이 좋아 살랑살랑 춤이 절로 난다. 서로 색깔도 봐주고, 치수도 봐주고, 처음 만나도 그저 동무다.
   
▲ 오래도록 아껴두었던 구지폐를 오늘 옷 사는데 쓴다.“자식들이 또 용돈 줄 것잉께 뭐^^”
   
▲ “참기름 짜고, 깨 볶고, 영감 쓰봉(바지) 하나, 나 몸빼 하나 샀어. 오늘 돈 많이 써부렀구만”
마을 경노당에서 부침개를 해먹을 요량으로 부추 한 다발을 사신 고행수(75) 어르신. 딱히 장에서 살 건 없어도 사람구경하러 나오셨단다.

“예전에는 순천장보다 컸어. 질로 컸제. 황전, 구례 요짝으로는 다 여그로 왔응께. 옛날에 여가 고추가 많았어. 지금이야 딴디도 많제만 그전에는 고추가 별로 없었거든.”

월등이 농작물이 많아 괴목장이 인근 재래시장 중에서 제법 크고 ‘박이 터졌다’고 한다.

“돈도 많고, 장사도 잘 됐는데 인자는 순천장으로 다 빠져불고 쪼깐해져붓네. 그래도 이 장이 없어지지는 안헐 것이네”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라도 있으세요?”

“그런 건 모른디…”

바람일 것이다. ‘내가 좋다는데, 내가 기쁘다는데, 그래서 돈은 없어도 사람구경이라도 하고 싶어서 온다는데 이 소소한 행복을 누가 없앤다는 말이냐?’는 내일을 알 수 없는 75세 한 노인의 간절한 바람이고 저항인 것이다.

“이유같은 건 몰라도 없어지진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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