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곡마을 어르신대상 미디어교육


마을어르신대상 미디어교육
마을 사진촬영
엄마의 영상편지


매주 토요일 오전이면 순천 월곡마을 경로당이 수런수런합니다. 호미를 들었던 손에 작은 카메라를 하나를 쥐어듭니다. 뒤돌아서면 우후죽순 자라나는 무성한 잡초들이 걱정이지만 하루쯤은 색다른 여유를 만끽해 봅니다.

색이 고운 옷을 입어야 하네, 화장을 해야 하네, 형님 파마가 이쁘네, 동생 옷이 여~엉 좋아 뵈네…. 월곡마을 어머님들의 사진수업이 계속 진행됨에 따라 관심이 깊어갑니다.

70세, 80세가 훌쩍 넘으신 어머님들은 천상 여자입니다. 꽃을 좋아하고, 주름 가득해도 예쁘게 사진 찍히고 싶고, 보기 싫다면서도 다시 보고, 또 보며 미소 짓는 수줍은 소녀 할머니들입니다. 그렇게 작은 카메라가 차츰 내 손에 익숙해져 갑니다.

눈이 침침해서 카메라 화면이 잘 보이지 않지만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고 즐거운 시간입니다. 찰칵! 찰칵! 차~알~칵! 열심히 셔터를 눌러보는데 손이 자꾸 떨려서 꽃도 나무도 나처럼 흔들흔들 떨고 있습니다. 카메라를 통해 본 우리 마을이 다시 보여집니다. 담벼락에 작은 꽃도 오늘에야 보이고, 길도, 지붕도, 하늘도 사진으로 보니 우리 동네가 이렇게 멋있고 이쁜지 새삼 알게 됩니다. ‘오래 살다보니 이런 재미진 날도 옵니다.’

장마가 시작입니다. 흐리다가 맑다가 종잡을 수 없는 하늘이 하필 촬영해야하는 오늘 비가 내립니다. 차라리 잘 된 일입니다. 들에 나가지 않고 맘 편히 쉴 수 있는 날이 되었습니다. 동네 여기저기 찍으려고 눈여겨 봐 둔 곳이 많았는데 어쩔 수 없이 오늘은 실내촬영. 진짜 같은 가짜 꽃, 인형, 나무, 화분들을 상 위에 펼쳐두고 열심히 셔터를 눌러 봅니다. 잘 찍고 싶어서 숨도 참아가며 찍었는데 날씨가 안 좋아서인지 사진이 자꾸 흐리게 나옵니다. 그래도 인형들을 찍다보니 옛날 옛날 한 옛날이 떠오릅니다. 애기 등에 업고 자장가 불러주던 가난했던 지난날이 비처럼 젖어듭니다.

자급자족 미디어교육입니다. 현수막을 제작할 예산이 없습니다. 간판이 없으면 도대체 우리가 하는 일을 알릴 길이 없어 아쉬울 수밖에 없지요. 이빨이 없다고 음식을 쳐다만 볼 수는 없는 일, 원단가게에서 하얀색 광목을 사왔습니다. 밑그림을 그리고 모두가 둘러앉아 ‘크레용’으로 색칠을 합니다. 나비도 그리고 꽃도 그려 넣고, 간만에 숨겨둔 그림솜씨를 발휘합니다. 조금씩 조금씩 색이 입혀지면서 아기자기한 우리만의 현수막이 만들어 집니다. 현수막 완성 자축으로 국수 한 그룻! ‘이빠지’가 없어서 후루룩 후루룩 씹지도 않고 넘기지만 ‘항꾼에’ 먹으면 다 맛있습니다.

점점 날씨가 더워지고 있습니다. 열심히 우리가 만들려고 했던 마을 영화를 찍어야 합니다. 갑자기 경로당 한 쪽 벽에 파란 천을 붙여 달고 분주하게 준비합니다. 쭈글쭈글 어설픈 블루스크린이 설치됩니다. 마을 영화는 마을 뉴스로 제작하기로 했습니다. 이 기회에 동네 자랑도 하고 홍보도 해볼 참입니다. 아나운서 어머님 한 분이 치과를 가셔서 방송사고가 날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왕에 여자, 남자로 하면 좋겠네!” 느닷없이 옆 방 남자 경로당에서 주무시고 있던 남자 어르신을 긴급투입! 우와~! 갑작스런 뉴스 아나운서 역할을 척척 잘 해주십니다. ‘○○○ 기자~’라고 아무리 주문을 해도 ‘○○○ 씨~’라고 말씀하십니다. ‘기자’면 어떻고 ‘씨’면 또 어때요! 써준 글도 읽기 힘들고 어려워서 마이크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지만 끝 멘트까지 ‘스튜디오’촬영을 잘 마무리 하셨습니다.

오늘은 자식들에게 영상편지를 써보려고 합니다. “못 해”, “못 해”, “못 해”모두가 글을 잘 몰라서 편지를 쓸 수 없다고 항의하십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말로 이야기 해주시면 제가 받아 적을께요.”그냥 묻는 말에 생각 난대로 말했을 뿐인데 집도 없이 험하게 살던 옛날 얘기까지 하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가 영상편지로 된다니 ‘참 요상시런 시상’입니다. 글을 못 배워 글로 편지는 못 쓰지만 떨리는 손에 힘을 주어 자식들 이름만이라도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적어봅니다. 삐뚤빼뚤 내가 쓴 글을 보고 있자니 서러워서 눈물이 납니다.


직접 제작해 보는 마을뉴스
"참말로 요상시런 시상이네"

날씨가 화창합니다. 카메라를 목에 메고 밖으로 나갑니다. 오늘은 사진촬영도 하고 마을뉴스 현장촬영도 해야 합니다. 동네가 한 눈에 보이는 ‘산지등’으로 꼬브랑 허리를 편 듯 굽은 듯 저벅저벅 오릅니다. 젊어서는 자주 오르던 곳인데 다리가 아파서 지금은 엄두를 못 내던 마을 언덕에 올라서니 참말로 시원하고 좋습니다. 기자님은 마이크를 잡고 촬영을 시작합니다. 그저 ‘선상님’이 시킨대로 하는데 그것도 어렵습니다. 계속되는 NG에 마냥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마을 뉴스 2차 현장촬영입니다. 동네를 대표할 수 있는 ‘큰샘’으로 이동합니다. 옛날에는 ‘작은샘’도 있어서 모두가 우물물을 떠다 먹고, 우물에서 수다도 했는데 지금은 몇몇 사람만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월곡마을 큰샘은 여전히 시원하고 깨끗한 최고의 샘입니다.

월곡마을은 부녀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전통메주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재배한 메주콩을 수매해서 가마솥에 콩을 삶아 절구통에 찢어서 황토방에서 띄우는 전통방식의 메주를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느닷없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홍보를 하라는데 평상시 잘 했던 말도 심장이 벌렁벌렁, 콩당콩당 혀가 자꾸 꼬입니다.

마을 미디어교육 내용을 기사화했더니 원고료가 나왔다며 고무신을 선물로 사왔습니다. 밭에 신고 가면 흙투성이가 될 고무신인데 다같이 둘러앉아 이쁘게 꾸며보자는 별스런 제안을 합니다. 멀쩡한 새 신발에 왜 구멍을 뚫느냐고 핀잔도 해보지만 다들 모처럼 하는 바느질에 집중합니다. 리본도 달고 알록달록 구슬도 붙이고 ‘대차나~’꾸미고 보니 고무신이 너무 이쁩니다. 들일 할 때는 아까워서 안 되고 외출할 때 신고 나가서 뽐낼 생각에 자꾸 눈길이 갑니다. 시간이 참 잘도 지나갑니다.

어느새 교육이 다 마무리되어 작품시사회를 하는 날입니다. 주말이여서 아들도 오고, 며느리도 오고, 손주도 오고, 멀리 시집간 딸로 와서 함께 작품을 감상합니다. 메이킹 영상에 내 얼굴이 나올 때 마다 추억이 새록새록합니다. 이어서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장면과 함께 ‘월곡뉴스’가 화면에 나옵니다. 화면에서 보이는 우리들의 표정이 너무 재밌습니다. 저것을 참말로 우리가 했다니 새삼스럽습니다. 영상편지가 상영될 때는 괜히 눈가가 촉촉해 집니다. 엄마를 응원하러 먼 길 달려 온 딸, 며느리는 몰래 몰래 눈물을 찍어냅니다. 평생 자식걱정에 잠 못 이루던 엄마의 마음은 다 똑같은가 봅니다. 그렇게 작품을 통해 모두가 조금씩 마음의 위로를 받습니다.
 
참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격려 속에 월곡마을 어머님들은 노년에 찾아온 소소한 추억하나 가슴에 새기며 뜨거운 여름을 보냅니다. ‘방바닥 영화관’ 월곡마을은 매월 영화관이 열립니다. 오늘은 낮에 마을뉴스를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2차로 작품상영을 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찍혔는지 궁금했는데 막상 화면으로 보니 부끄럽기도 합니다. 함께 했던 어머님들은 새삼스럽고, 함께 하지 못한 어머님들은 살짝 시샘도 납니다.
 
‘방바닥 영화관’을 아세요? 우리끼리 보는 영화이니 눈치 볼 것이 없습니다. 뻑쩍지근한 다리를 쭉 펴고 누워서 영화를 봅니다. 고단했던 하루가 방바닥으로 흘러내리는 것 같습니다. ‘보다 자다 보다 자다’그래도 참 재밌게 잘 봤습니다. “보고 싶은 영화 있으세요?”, “우리는 슬픈 영화가 좋아!”, “슬픈 영화요? 왜요?”, “자고로 눈물을 쪽! 빼줘야 영화를 본 것 같애!” 다음부터는 눈물을 쪽! 뺄 수 있는 영화를 고민해 봅니다. 
 



순천 월곡마을 미디어교육은 시청자미디어재단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주관한 ‘미디어교육 강사지원사업’으로 진행되었다. 이 교육은 미디어교육 강사가 미디어교육을 기획하여 진행하는 것으로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교육, 대상에 따른 차별화된 교육으로 창의적인 미디어교육을 발굴하고 신규 미디어교육을 확산하기 위해 지원되고 있다. 2015년 진행된 월곡마을 미디어교육은 “고향에서 온 매일매일 엄마의 영상편지”라는 주제로 총 10회 교육이 진행되었다. 교육참가 대상은 65세 이상으로 대부분 70대 80대의 고령의 어르신들이 참여하였다. 마을 사진촬영을 비롯하여 마을뉴스, 영상편지 등 직접 촬영하고 출연하여 영상작품을 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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