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장 뻥튀기 부부의 호루라기

 
연일 계속된 장마 뒤 끝에 숨이 턱턱 막힐 정도의 무더위가 찾아왔다. 앉아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이 삼복더위에 장터 한쪽에선 이열치열 열가마를 돌리는 분이 있다.

‘후루루루’ 짧은 호루라기 소리에 ‘뻥’하는 외침.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뿌연 연기 속에서 손놀림이 부산하다. 예전에는 “뻥이요!”했던 신호가 지금은 호루라기가 대신한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변한 건 호루라기뿐만이 아니다.

“처음에는 장작을 때서 했어. 뻥튈 사람이 직접 나무를 가져오는데 그때는 나무도 귀한께 좋은 나무도 아닌 요상한 것들을 가져와. 그럼 도끼로 다 쪼개서 그걸로 뻥을 튀겨. 그러다가 석유로 바뀌고 지금은 가스로 하제.”

장모님이 뻥 튀기는 일을 하셨는데 틈틈이 돕다보니 지금은 전업이 되었다는 뻥튀기 32년 경력의 이기성(60세)씨.

▲ 뻥튀기 32년 경력의 이기성씨. 장모님의 뻥튀기 일을 돕다보니 지금은 전업이 되었다.
“나무를 땔 때는 불똥이 튀어서 여그저그 몸이고 옷에 구멍이 나서 못 살 것더니 석유로 바꾸니깐 얼굴이 온통 시커멓게 되더라고. 도무지 좋은 옷이 하나도 없었어.”

▲ 인파로 북적였던 어제를 뒤로한 채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오일장(아랫장).
내가 어려서 봤던 건 석유가마였나 보다. ‘뻥’소리가 작은 시골마을을 뒤흔들면 한달음에 뛰어 나갔던 것 같다. 쉼 없이 돌아가는 뻥튀기 가마 옆으로 줄줄이 늘어선 깡통들. 말린 떡국이나 옥수수에 흰쌀을 섞어 한 깡통 수북하게 담기면 단맛을 내줄 새하얀 당원이 한 숟가락씩 얹어진다. ‘뻥’할 때 마다 주변에 날려지는 눈송이 같은 뻥튀기 잔해들. 줄지어 선 깡통들 마냥 쭈그려 앉아 있다보면 한 주먹씩 뻥튀기를 나눠주곤 했다. 먹어도 먹어도 포만감이 오지 않던 뻥튀기. 그 옛날 오물오물한 추억이 다행히 나에게도 아직 남아 있다.

“예전에는 리어카에 기계를 싣고 시골 동네 가서 하루 종일 튀겨주고 어둑어둑 해지면 다시 리어카 끌고 집으로 돌아오고 했어. 그러다가 경운기가 생겨서 훨씬 편해졌제. 지금은 기계도 자동으로 돌리니까 허리도 안 아프고 아주 수월해.”

“어떻게, 살림은 뻥튀기처럼 ‘뻥’하니 좋아지셨어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지금은 동네에서도 부자라고 할 만큼 잘 살아. 남편이 워낙 부지런하고, 성실하다고 소문이 날 정도로 열심히 살았어. 이녁 몸 아낄 줄도 모르고. 내 이상형이 아니어서 결혼 안한다고 우겼는데 엄마가 사람을 잘 봤제. 우리 남편만한 사람 없어.”

▲ 뻥튀기집 둘째딸로 태어나 뻥튀기 부부로 살아가는 전원자씨. 힘들 때 많았지만 하기싫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이상형은 아니었지만 살아보니 성실한 남자가 최고더라고 남편자랑이 뻥튀기 보따리마냥 한가득인 아내 전원자(55세)씨. 뻥튀기집 둘째딸로 태어나 큰딸 역할, 아들 역할을 할 수밖에 없어 여군이 되고 싶었던 꿈도 접고 엄마를 도와 리어카를 밀며 마을을 따라다녔단다.

 
“어려서는 창피하고 그랬제. 아는 사람 오면 숨어버리고 했는데 워낙 힘들 때였으니 어쩔 수 없었제 뭐.”
뻥튀기 일은 전원자씨 친정아버지께서 총각시절 일본에서 기계를 들여오면서 시작됐다. 당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부모님이 이 마을 저 마을 다니시며 뻥튀기를 했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셨단다. 어머님은 혼자 몸으로 무거운 불가마를 돌려가며 아들 딸 여섯 형제를 가르치고, 먹이고, 시집 장가 다 보낸 여장부시다. 지금도 광양장에서 뻥튀기 일을 하고 계시다는 어머니. 늘 어머니 곁에서 손과 발이 되었던 딸인지라 어머니 생각에 눈시울을 붉히고 마는, 엄마를 꼭 닮은 둘째딸 전원자씨.

“이 때쯤 되면 방학 때 먹을 간식으로 뻥튀기를 많이 했는디, 뻥튀기도 예전처럼 먹지 않아. 일도 많고 사람도 많았던 것이, 인자는 옛날에 비해 반도 안 돼. 어제가 옛날이 돼부렀어!”

어제가 옛날이 되어버린 우리네 재래시장. 마트가 낯설고 불편해서 아직은 재래시장을 찾는 어르신들이 있어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오일장. 이 분들이 세상을 떠나면 이곳 장터도 없어질거라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세상의 변화를 겪어왔기에 세상의 흐름도 잘 아는 어르신들의 한결같은 생각이다. 점점 추억이 되어가고 있는 이 풍경이 내 세대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난 지독히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이 세상의 흐름에 발걸이를 하고 싶다. 그래서 오일장 ‘봉다리쇼핑’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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