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는 물론 곡을 둘러싼 이야기를 알기 쉽게 설명하며 청중에게 다가가는 피아노 연주자. 가요를 피아노로 치며 노는 것이 취미라는 데서 대중(음악)과 소통하는 것이 몸에 밴 사람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유학 시절 마음이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상황에 그는 들국화의 사랑한 후에를 찾아 듣고 피아노 앞에서 비틀즈의 이매진을 줄곧 연주했다. 앞이 캄캄한 현실에 음악보다는 지갑에 들어오는 한 장 지폐가 더 큰 위로라고 우기면서도 결국 음악으로 버텨낸 김유상 피아니스트. 그가 11년의 미국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한 곳은 아내의 고향인 전라남도 순천이었다.

고향이 서울인 김유상 씨는 지난 2018년 아내, 세 아이와 함께 순천에 왔다. 아이들이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지 걱정했지만, 못하는 건 어른들이지 아이들은 금세 뚝딱 적응했다. 그는 순천이 자녀교육에 좋은 도시이며 무엇보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교통이 잘 돼 있다고 느낀다.

그는 매년 전국의 크고 작은 무대에서 꾸준히 연주해 오고 있다. 최근 1년 동안에는 독주회만 4번 했다. 그는 이에 대해 고통스럽다라고 하면서도 독주회는 꼭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무대에 서게 되면 음악에 대한 감이 날이 서게 된달까. 그렇게 자신을 채찍질해서 몰아세우는 일이 없으면 음악적으로 무뎌져 밍숭밍숭해지는 면이 있다.”

공연을 이어 나가는 힘은 청중이 감동하고 좋아해 줄 때 그 희열이다. 그가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관객이 얼마나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느냐이다. 예전에는 자신을 어떻게 보여줄까, 어떻게 더 대단하게 보일까를 생각했지만, 지금은 관객이 지루해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역량을 보여주는 방법을 고민한다.

그는 연주자로뿐만 아니라 교육자로도 순천대학교, 전남대학교에 출강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한다. 그는 대학생, 입시생, 아마추어 성인, 아이들을 가르칠 때 마음가짐이 각각 다르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는 남다르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목표는 그들이 끝끝내 피아노를 치게 하는 것이다. 피아노가 지긋지긋해서 또는 어려워서 그만두는 것을 막는 것, 언젠가 그 아이가 피아노를 친구 삼아서 스스로 음악을 즐기는 사람이 되면 목표 달성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아이가 어떤 성격인지, 어느 정도 연습을 무리 없이 받아들일지 등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또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에도 솔직하다. 그는 미국에서 유학하던 20144월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에 만삭인 아내와 집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세월호 때는 정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았고아이가 곧 태어날 입장인데 그렇게 생때같은 아이들이 많이 죽었다는 얘기를 들으니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굉장히 적극적으로 활동을 했다.” 이렇게 소신껏 행동하는 그이지만 다소 보수적인 음악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일은 사실 조심스러울 것이다.

순천시 음악 관련 정책에 관해서는 최근 시 주최 음악 공연이 버스킹 위주임을 지적했다. 그는 전문 연주자를 뽑아놓고도 버스킹을 시킨다라고 하며 전문 음악인이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장르별, 분야별 특성에 맞는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순천문화예술회관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점 역시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그는 일반 공무원이 돌아가면서 관장을 맡기 때문에 활성화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 같다라고 안타까워했다.

2018년 금호아트홀에서 귀국 독주회로 한국 활동을 시작한 그는 순천을 기반으로 지역 연주자들과 연구 및 연주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오는 824일에는 서울 영산아트홀에서 열리는 제논 피쉬바인 교수 추모음악회무대에 선다. 10월에는 멘델스존 스페셜 콘서트에서 연주하며 청중과 만날 계획이다.

많은 경험을 했다. 이것을 어떻게 음악에 녹여내느냐가 앞으로 숙제라고 말하는 김유상 씨. 그의 피아노에서는 피아니스트 내면의 묵직한 신중함과 세상을 향한 따뜻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의 담백한 진심이 음파를 타고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

김유상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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