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이 좋아하는 생태 텃밭

학교 텃밭에는 황금색으로 익은 밀과 보리가 흰 면사포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새들이 먹어버릴까 봐’ 씌운 거란다. 신현미 순천중앙초등학교 과학 전담교사는 “전날 오후 새 떼가 와서 밀, 보리를 너무 좋아했대요. 수확하고 씨를 확보해야 해서 주무관님이 묶으셨어요”라고 사연을 전했다. 신 교사는 생태환경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2학년 1반 푯말이 꽂힌 밭에는 유독 뭐가 없다. 전체에서 제일 먼저 씨앗을 심은 탓에 가장 먼저 싹이 났고 그래서 새들이 그 보드라운 순을 홀랑 먹어버렸다는 슬프지만 재밌는 이야기. 같은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교실에서 모종을 내서 옮겨심기로 작전을 변경했다.

중앙초 학급 텃밭은 씨앗도서관에서 빌린 씨앗이 파종돼 있다. 텃밭 대신 화분에 기르는 반도 있다. 도움반 학생을 비롯한 전교생이 참여하고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부모 텃밭 동아리도 함께 농사를 짓는다.

신 교사는 “학부모 동아리가 하시는 것이 모델이 되더라고요. 정말 제대로 하시거든요”라고 하며 학생들도 참 좋아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와서 보고 “우리 엄마가 심은 딸기야. 너도 와서 봐봐” 한다고.

학생, 학부모가 함께 가꾸는 학교 텃밭에 황금색 밀과 보리가 흰 면사포를 뒤집어쓰고 있다.
학생, 학부모가 함께 가꾸는 학교 텃밭에 황금색 밀과 보리가 흰 면사포를 뒤집어쓰고 있다.

생명을 잇는 씨앗도서관

중앙초는 지난 4월 19일부터 순천 토종씨앗모임에서 기증받은 32종 토종 씨앗을 학급 단위, 동아리, 개인, 학부모 등 지역민에도 대출한다. 대출받은 씨앗을 심고 식물을 재배해서 채종한 씨앗을 반납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실패했을 경우 재배기록, 사진 등으로 대체할 수 있다. 심고 가꾸는 과정을 경험한 것만으로도 가치있기 때문이다.

씨앗도서관은 지속가능한 농법으로서 생명이 대를 물려 이어가게 하는 활동임과 동시에 학생들이 스스로를 하나의 씨앗으로 이해하고 삶을 통해 인류와 지구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방법을 훈련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씨앗도서관이 종자회사의 씨앗이 아니라 지역사회로부터 받은 ‘생명력이 있어서 대물림이 가능한 토종씨앗’을 대출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프로젝트를 준비한 신 교사는 “씨앗도서관은 세대와 세대 그리고 지역사회와 학교를 연결하는 매개체”라고도 덧붙였다.

독서 동아리 학생들도 씨앗도서관을 마련하는데 손을 보탰다. 종이상자를 재활용해 씨앗도서관을 설명하는 안내판을 만들고, 도서관 창가에 한 뼘 텃밭을 일궜다. 동서동아리 학생들은 “씨앗을 빌려주니 도서관이 인기가 더 많아졌다” “책을 보는 재미와 새싹을 보러 오는 재미가 더해졌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애초 운영 계획은 5월 3일까지였으나 ‘싹이 안 나서’ ‘새가 먹어서’ 등의 이유로 씨앗을 찾는 학생이 많아져 상시 대출로 변경됐다.

중앙초는 토종씨앗모임에서 기증받은 32종 토종 씨앗을 대출하는 씨앗도서관을 운영한다. (제공=순천중앙초등학교)
중앙초는 토종씨앗모임에서 기증받은 32종 토종 씨앗을 대출하는 씨앗도서관을 운영한다. (제공=순천중앙초등학교)

생태환경교육 프로젝트

중앙초는 올해 생태환경교육을 특색교육으로 정했다. 올 한 해 교내 모든 행사가 생태, 환경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특별한 점은 학교와 마을 교육 공동체하고 협력하면서 지역 생태계와 더불어 지역의 교육 생태계까지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것이다. 신 교사는 “학교가 직업인을 양성하는 게 아니라 지구 생태 시민을 육성하는 것을 목표”라고 소개했다.

신 교사에 따르면 기후위기 수업을 할수록 학생들이 두려움을 많이 느낀다고 한다. 또한 지금까지 생태환경교육은 ‘해야 한다’라는 의무나 지식으로 강요하는 면이 많았다. 그는 "두려움도 에너지니까 그 에너지를 책임감으로 전환할 수 있는 교육이어야 한다"라고 하며 "가치와 문화로서, 생태적 생활 문화가 잡혀 있으면 생활하는 모습 자체가 배움이 돼요. 그런 문화를 접하고 습득하면 따로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지구도 돌볼 수 있잖아요”라고 설명했다.

이에 중앙초는 좋으니까 무작정 하자가 아니라 학교 전체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에 정성을 기울였다. 각자가 마음을 열고 참여하게끔 전교생 온 책 읽기를 시도했다. 책 『콩알 하나에 무엇이 들었을까?』를 박수영 교장이 먼저 읽고 제비를 뽑아 다음 읽을 반을 정하고, 다 읽은 반이 다음 읽을 반을 또 제비뽑기로 정해 학교 전체가 읽게 된다. 학교 방송반 학생들은 책 읽기 활동에 관한 홍보 영상을 제작하여 방송했다. 학생들이 활동의 취지를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한 것이다.

책 『콩알 하나에 무엇이 들었을까?』를 읽고 난 후 학생들의 활동을 중앙 현관에 전시해 공유하고 있다. ⓒ순천광장신문
책 『콩알 하나에 무엇이 들었을까?』를 읽고 난 후 학생들의 활동을 중앙 현관에 전시해 공유하고 있다. ⓒ순천광장신문

교육공동체가 협력하는 교육생태계

중앙초는 학생, 교사, 학부모, 주민, 마을교육활동가 등 교육공동체 주체들이 협력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모색, 실행하며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현재 중앙초 학생들은 마을 교육 활동가와 동천과 학교 숲에서 동식물을 알아가는 활동을 한다.

교사들 역시 생태환경교육을 위해 노력 중이다. 지난봄에는 토종씨앗모임 선생님을 모시고 농업과 씨앗 등에 관한 강의를 듣고 직접 파종하고 모종을 냈다. 관련 책을 함께 읽고 각자의 주제로 발표하고, 관련 다큐멘터리도 함께 시청한다. 경직된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박 교장이 직접 기타를 치며 교사들과 생태 노래를 배우고 부르면서 마음을 여는 시간을 갖는다.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