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전부터 ‘혁신학교라’는 이름으로 공교육 내에서 새로운 교육적 시도가 다양하게 일어났다. 각자 입장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다른 어떤 흐름보다 기대감도 있었고 이전과 다른 다양한 사례와 연구들이 줄을 이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경기도의 남한산초등학교와 같은 사례는 전국적으로 영향력이 컸다. 이전까지 자기 교과와 교실에 머물러있던 시도들이 협력적 구조로서 학교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이런 흐름이 교육부나 시도교육청의 하향식 행정으로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장 교사들의 자발적인 활동이었다.

대개 새로운 정책들이 사무실 탁자가 아닌 현장의 자기 문제 해결 과정에서 발생한 사례를 통해 발굴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처럼 공교육 내에서 변화를 바랐거나 변화라는 성과가 필요했던 시도교육청에서 이를 정책화하였을 뿐이다.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의미 있는 변화는 아래로부터 자발적인 참여가 있었을 때 가능하였다. 지금까지 하향식 관 주도의 사업이 지속성을 가지고 성공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우발적이든 의도적이든 아래로부터 만들어지는 새로운 사례를 행정이나 관에서 사업화하고 ‘일반화’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또 다른 부작용을 양산하기도 한다. 이로 인한 피해나 부담 또한 현장 교사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지역에서도 새 교육감 당선 이후 ‘혁신학교’나 ‘마을교육공동체’와 같은 정책을 두고 논란이 일어났다. 지난 5년간은 일반화라는 이름으로 학교혁신의 확산이 더디다고 질책받기도 하고 그로 인해 무리하게 사업화하는 과정에서 부작용 또한 적지 않게 발생하였다. 그러나 새 교육감 당선 이후 이제는 모든 학교에 일반화되었다고 말하고 혁신학교를 지정하지 않겠다는 말도 들린다.

논란이 일어난 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앞서 말한 두 정책은 ‘현장의 자발적인 참여’를 중시하는 정책이다. 달리 말하면 ‘직책이나 권한’을 가진 사람들의 역할을 중시하는 ‘관 주도’의 정책이 아니다.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정책이 어떻게 변하든 기존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별다른 불편함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작 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그런 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현장의 교사들과 지역에 있는 자발적인 활동가들이다.

교사든 지역민이든 자발적으로 활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만들어낸 교육적 영향력은 적지 않지만 그들의 물리적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그들의 책임이 아니다. 자발적 활동의 여건을 형성하는 데 관심이 많지 않다는 반증이다.

최근 ‘성장과 역량’에 관한 연구사례들 또한 외부적 당위나 주입이 아닌 자발적 참여 과정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혁신학교’나 ‘마을교육공동체’와 같은 정책은 현장 교사와 지역민들의 자발적인 교육적 시도와 참여를 위한 장(場)으로서 기능하였다. 새로운 사례의 출발은 그 지점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무엇을 선택하든 지속성과 성공은 현장의 자발적인 참여 없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본청의 권한이 크다고 해도 스스로 모든 것을 계획, 집행, 관리할 수는 없다.

정책은 선택이지만 자발적인 교사들의 움직임을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교육대전환’은 퇴보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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