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터는 사라지고 장날만 남은 별량장

장터가 없다. 장날은 있다. 장터가 없어도 장날이면 사람들이 모인다. 이름만 남아 있는 곳 ‘별량오일장’이다. 고기전, 비단전, 곡물전……. 없는 게 없었던 별량장이 지금은 오간데 없다. 장이 서던 자리에는 대형건물이 들어서고, 길이 나고, 나무가 자라고 있다. 난전을 없애기 위해 장터에 마트를 세우고 ‘별량장’이란 이름을 붙였지만 누구도 마트를 장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름만 남긴 채 별량장은 사라져 가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 오일장날인 3일과 8일이면 여전히 사람이 모여든다. 겨우 어물전 두 세 곳이 전부인지라 시장이라 할 수 없는 옛 장터로 허리가 휜 노인들이 찾아온다. 장터 옆에 위치한 면사무소를 중심으로 은행과 병원, 이미용실, 농기계수리점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 지역 주민들에게 장날이란 물건만 사는 날이 아니라 더불어서 병원 가는 날, 머리 볶는 날인 셈이다. 모름지기 장날은 님도 보고 뽕도 따고, 도랑치고 가재 잡는 날인 것이다.

▲ 아직도 이 지역 주민들에게 장날이란 물건만 사는 날이 아니라 더불어서 병원 가는 날, 머리 볶는 날인 셈이다.

별량장은 해산물로 유명했다. 별량 인근의 바다를 낀 화포며 거차에서 잡은 사철 생선과 순천만 갯벌을 가득 머금은 낙지, 조개가 이른 아침장에 나왔다. 요즘말로 로컬푸드가 따로 없었다. 잠도 덜 깬 채 잡혀온 신선한 해산물로 별량장은 늘 파닥파닥 뛰었다.

“시군 통합으로 버스요금이 같아진께 몽땅 시내로 나가 브러요.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시내 가믄 더 많은 께요”

화포에 살고 있다는 서울댁과 순천댁은 유일하게 별량장을 지키고 있는 젊은 아낙들이다. 남편이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오면 손질하여 장사를 하는 사람은 아내의 몫이다. 동이 틀 무렵부터 앉아 있다보면 지나는 사람도, 눈길을 마주치는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지만 이들의 신선한 물건을 찾는 사람들이 있어 장을 펼친다.

“역전장으로 가면 여기보다는 더 일찍 장사가 끝나지만 그곳은 워낙에 장사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치열하게 장사를 하게 되요. 차라리 늦게까지 팔더라도 여기가 속 편히 장사할 수 있어 좋아요”
 
▲ 화포에 살고 있다는 서울댁과 순천댁은 유일하게 별량장을 지키고 있는 젊은 아낙들이다. 남편이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오면 손질하여 장사를 하는 사람은 아내의 몫이다.


도서관에서 세상 속으로
고사리 손으로 다시 움트는 별량장

 
많은 사람에게 잊혀져가고 있는 적막한 별량장에 꼼지락 꼼지락 새로운 장이 서기 시작했다. 옹기종기 고사리들의 장터가 열린 것이다. 지난 6월부터 지역의 아이들과 학부모가 함께한 새로운 장터가 움텄다. 아이들은 집에서 안 쓰는 학용품이며 인형과 옷, 책들을 가지고 나와 장사를 시작했다. 장사하여 번 돈으로 다시 자기에게 필요한 물건을 산다. 학부모는 직접 만든 친환경 제품이나 기증품을 들고 나와서 함께 나누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작은 나눔장터가 별량오일장을 만나게 된 것이다.

  

▲ 별량 첨산작은도서관 운영자 정귀례 씨
주민 소통! 로컬마켓 형성!이란 목표를 가지고 있다.
‘도서관에서 세상 속으로’란 이름으로 나눔장터를 기획한 별량 ‘첨산작은도서관’ 정귀례 운영자는 일당도 나오지 않는 주말장날 정자에 앉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별량 나눔장터는 별량 오일장인 3일과 8일중 토요일과 겹치는 날을 장날로 정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꼴로 열리게 된다.

“지금은 초기여서 규모가 작지만 지속적으로 하다보면 지역민들과 함께 할 수 있을 거에요. 농민들은 직접 생산한 농산물을 가지고 나오고, 지역에서 잡은 생선도 팔고하면 다양한 물건들을 사고파는 소통의 장날이 되리라 생각해요.”

지역 주민들과 함께 소통하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도서관을 이용하는 학부모들과 함께 장터를 열게 되었다. 조촐하게 나눔장터를 시작한 정귀례 운영자는 “주민 소통! 로컬마켓 형성!”이란 목표를 가지고 있다. 아직은 아이들의 소꿉놀이 같은 소소한 공간이다. 이들을 바라보는 주변 어르신들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고사리 손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옹기종기 지역민이 함께하면 밝은 희망이 조금씩 움트지 않을까?

● 8월 별량나눔장날은 23일(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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