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3년상을 치르는 광주시민상주모임

 

온 국민이 한 마음으로 세월호 이전과 세월호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달라지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것인가 찾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바라보고만 있는 와중이다. 이러한 때에도 온 마음으로 구체적인 실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도와 대화와 예술과 행동으로 움직이는 ‘세월호 3년상을 치르는 광주시민상주모임’이다. 그들은 세월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은 진실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왜 그 많은 생명이 죽어갔는지 정확하게 밝히는 일이 먼저 간 사람들과 남은 사람들의 억울함을 푸는 고리가 될 것이고, 다시는 세월호와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는 근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동네에서 촛불을 들다

 
광주시민상주모임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아파트 단지에서 몇 사람들의 움직임 때문이었다. 무기력하게 있어서는 안되겠다 싶은 마음들이 모여 동네에서 촛불을 든 것이다. 처음에는 한 사람이 말을 꺼냈고, 점차 시민상주 22명이 모였다. 매주 한 번 모여 촛불을 들고, 동네마다 서명을 받고 집집마다 프랑카드를 걸면서 현재는 250명이 함께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월호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하겠다는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광주에서 재판이 있는 날은 재판에 참여하는 가족들을 지지하고 힘을 드리기 위해 법원근처에서 피켓을 들고 진실규명을 외쳤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해 주먹밥을 만들고, 음료와 과일을 준비해 귀가하는 버스에 실어드리기도 했다. ‘한국을 바꾸는 천개의 행동 노란테이블’이라는 대화모임도 생겼다. 다음 사회로 어떻게 넘어갈 것인가를 이야기 하는 대화모임이다. 현재 법원 앞 나무에 뜨개질한 옷을 입히는 “세월호 진실마중길-손뜨개로 모아주세요”라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스스로 살리고, 서로를 살리고

▲ 재판 끝나고 차에 올라와보니 광주 시민들이 오늘도 챙겨주신 선물, 왈칵~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 세월호 유가족의 쪽지
희생자 가족이 외롭지 않도록 곁에서 지켜주겠다고 모인 시민상주모임은 체계적인 조직이 아니고 주로 엄마들이다. 대표도 없고, 변변한 조직체계도 없다. 참여한 사람들이 원하는 일과 희생자 가족들에게 필요한 일을 함께 해나가자는 원칙을 가지고 시민들의 자율적 판단과 행동으로 움직일 뿐이다. 광주래미학교 이민철 교사는 “안돼요. 선례가 없어요라고 말하는 공무원들의 이야기가 종교, 시민사회단체로 내려와 버렸다”며 “시민상주모임은 그 전에 했던 방식을 빼고 새로운 방식으로 연구” 해 보기로 했단다. 가급적 동네 엄마들이 할수 있는 일과 많은 사람이 참여 할 수 있는 일을 해왔다. 세월호 선장과 선원의 재판이 있는 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법원앞도로에 쭉 서서 인간띠 잇기를 했다. 아침 9시에 하는 거라 엄마들이 챙겨서 나오기도 바쁜시간이었다. 그럼에도 간식과 물을 마을별로 준비해 함께했다. 대부분 주부들이라 그런 일에 능숙했다. 인간띠잇기 첫날은 200명 정도가 왔고, 그 다음에 300명, 그 다음에 400명으로 점점 늘어났다. 그 일을 통해 유가족들에게도 힘이 되었고, 일하는 그들 스스로도 힘을 얻었다. 지금까지 일을 하는 과정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마을촛불이 열여섯 군데로 늘어나면서 마을별로 아이들을 위한 안전한 마을은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스스로 살리고, 서로를 살리고, 사회를 살리는 일이 일상을 사는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다.

 
기도와 대화와 예술과 행동으로

광주 시민상주들은 안산의 세월호가 남의 일 같지 않다고 말한다. 80년 5월의 아픔이 떠오르고, 그래서 외롭게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는지 모른다. 3년상을 치르는 마음으로 가족들 옆에 서있자고 마음먹은 이들은 ‘기도와 대화와 예술과 행동’ 으로 일 해 나가겠다고 했다. 상주모임은 함께 모여서 회의하는 일도 별로 없다.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젊은 엄마들의 수다는 끝없이 이어진다. 하루에 글이 천개가 넘게 올라올 정도다. 누군가 제안하면 다른 사람이 그에 호응해서 일이 되어졌다. 회의하는 것은 싫어하니까 가끔 한번씩 모였다고 한다.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일은 채팅방에서의 대화를 통해, 만남을 통해 계속 만들어졌다. 술집에서 술을 먹다가 “사람들이 예쁘게 만들어줘야 리본을 차고 다니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오면 “우리가 리본을 만들어보자”고 누군가 제안하고, 곧장 리본전문가들에게 배운다. 그렇게 만들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10만개를 넘게 만들었다고 한다. 동네마다 리본 만드는 사람들이 생겨나자 재치있는 엄마들이 일곡공장, 풍암공장, 공장이름도 지었다. 이 일을 하면서 엄마들이 모이는 동네에 마을모임도 만들어졌다. 서로를 감동시킨 기적같은 사건도 많았다. 단원고 두 아버지가 십자가를 매고 순례하는 십자가 순례단이 광주에 왔을 때였다. 처음에는 순례단 50명 온다고 해서 한 마을에서 통째로 식사를 준비하기로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서 500명이나 모이게 됐다.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난감한 상황을 보면서 “우리 마을에서 준비할께, 우리 모임에서 준비해볼게” 라는 말이 이어졌다. 마련된 음식은 500명이 먹고도 남았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했다고 할까?

▲ 주부들이 모여 동네별로 세월호 추모 리본을 만들었다.

 이들은 왜 그렇게 열심히 모이고, 행동했을까? 이민철 교사는 모두가 자신의 생각과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자발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서로 신이 나서 일을 만들어 냈다. 스스로 만들어 낸 일을 보며 서로가 서로를 기쁘게 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감동을 줬다. 세월호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숙제는 생명을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다. 그 정도 아픔을 겪었으면 세월호 이전과 세월호 이후는 분명하게 달라져야 한다. 세월호 3년상을 치르는 광주시민상주모임은 세월호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유가족과 슬픔을 함께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생활, 우리의 삶을 돈 중심에서 생명 중심으로 바꾸어가고 있다. 기도와 대화와 예술과 행동으로 마을과 삶터의 구체적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세월호가 우리에게 던진 구체적인 숙제를 온 몸과 마음으로 해결해가고 있는 것이다. 

▲ 작은물고기가 힘을 모아 큰 물고기를 물리치는 것처럼 시민들이 함께 할때 변화는 가능하다는 의미로 시민상주의 모습을 상징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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