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본지는 기획시리즈 ‘순천 청년들이 사는 진솔한 이야기’(청사진)을 연재한다. 순천에 사는 청년, 순천을 떠난 청년, 순천으로 온 청년들을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싣는다. 일곱번째로 청년문화예술기획자인 이태경(39) 씨를 지난 24일 인터뷰했다.

어쩌다 순천

이태경 씨는 2002년 순천대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순천에 내려왔다. ‘졸업만 하면 뜰’ 생각이었던 순천에 20년째 살고 있다. 이제는 누가 물으면 ‘순천사람’이라고 말한다.

대학 시절에는 과 활동보다 밴드 동아리가 우선이었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밴드 활동을 했다. 순천대학교 밴드 동아리 ‘석공’을 거쳐 2008년 2인조 밴드 ‘달빛거지들(달빛거리에 지금 들려오는 음악 소리)’을 결성해 지금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베테랑 음악인이다.

청년 문화예술기획자 이태경 씨
청년 문화예술기획자 이태경 씨

대학교를 10년 만에 졸업하고 영어·수학 전문학원을 차렸다. 그의 전공은 영어교육이다.

“공부만 하는 친구들을 보고 쿨하게 임용 준비를 접었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못해 서른 살까지 단 며칠도 쉬어 본 적이 없다. 서른이 되던 해 친구와 놀러 간 바다에서, 일만 하며 살아 온 내 인생에 문득 미안했다.”

이날 이후 그는 취미로 즐겨 온 음악 활동의 방향을 조금 틀었다.

당시 순천에서는 지역 음악인들을 ‘무대가 있으면 당연히 무료로 공연해야 하는 사람들’로 치부했다. 그는 이런 인식을 바꾸기 위해 공연 출연료 하한선을 정했다. 몇 푼이라도 관람료를 받는 유료 공연도 종종 열었다. ‘달빛거지들’의 굿즈를 생산하고 판매하여 밴드의 브랜드화를 꾀했다. 2018년에 발표된 그의 첫 음반 <잊을 때(Time to Let You Go)>는 지역 청년 음악예술인들의 힘으로 제작되었다.

그의 음반 발표는 지역 음악예술인들의 공연이 재능기부로 치러지던 시대의 막을 닫고 유료 공연 시대를 열었다. 이후 해를 거듭하여 지역 음악인들의 음원 출시가 더욱 활기를 띄고 있다.

그가 문화예술기획에 발을 들인 것은 2017년 ‘순천시청년문화누리단(이하 문화누리단)’ 사업에 참여해 단장을 맡으면서였다. 문화누리단 활동을 통해 음악인으로 활동했을 때는 잘 몰랐던 법률 및 조항, 사업 관련 서류 작성, 진행 절차 등을 배웠다. 더불어 시 사업의 한계와 개선점 등을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이듬해 그는 문화예술단체 ‘달들의놀이터’를 조직했다. <순천인디뮤직페스티벌 SIMF>, <2019 신나는예술여행-예술특공대 우리가 간다!>, <동편제에 빠진 힙합>, <청년, 순천을 부르다> 등을 주최·주관하고, <2019 나주 오아시스페스티벌>을 총감독했다.

같은 해에 지역 예술인의 창작물을 상품화하고 판매·유통하기 위해 길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순천 홍보대사 노라조 순천 홍보 뮤직비디오 제작을 총괄한 것도 길엔터테인먼트다. 힙합페스티벌 <수고파티>, <청소년 진로 체험 백일장대회> 등을 추진했다.

또한 그는 지역 예술의 ‘아래로부터의 발전’을 도모하는 공유공간 썬더그라운드(S_Underground; 연자로 10 지하 1층)를 운영한다. 썬더그라운드 장소는 2019년 도시재생사업 일환 빈집 리모델링 사업을 통해 마련됐다. 현재 50여 문화예술인이 활동하고 있으며 음원 제작 및 발표, 시각예술 작품 창작 및 전시, 문학 작품 창작 및 발간(예정) 등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태경 씨는 지역 예술의 아래로부터의 발전을 모색하는 공연장 '썬더그라운드'를 운영 중이다.
이태경 씨는 지역 예술의 아래로부터의 발전을 모색하는 공연장 '썬더그라운드'를 운영 중이다.

어쩌면 순천

이태경 씨는 2020년부터 순천문화도시센터에 출근하고 있다.

그는 “문화도시센터에서 일하기 전에는 기획자로서 세련되고 멋진 콘텐츠를 시민에게 선사하고픈 욕심이 있었고 그게 좋은 기획자라고 ‘착각’을 했었다”라고 말하며 “문화도시센터에서 배운 것은 시민의 요구를 반영하는 것과 사업 구상·계획·실행에 시민이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다”라고 자신의 변화를 설명했다.

청년 시절을 순천에서 보낸 그에게 순천시 청년문화를 물었다. 우문에 현답이 이어졌다.

“20년 동안 청년문화 관련한 예산과 콘텐츠는 많이 늘었지만 ‘언제나,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문화는 여전히 부족하다. 특정 계층에 한정되지 않고 누구든지, 언제나,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것이 진짜 문화다.”

지난해 3차 문화도시 탈락 이후 문화도시센터에 관해 질문했다.

그는 “문화라고 하면 보통 문화예술 분야를 생각하는데, 행정이든 사업이든 ‘문화적’으로 운영되는 구조가 정착돼야 한다. 전문가나 행정은 조금 내려오고 시민의 역량은 조금 올라가면 밸런스가 맞는 수평적 구조가 된다”라면서 “문화도시센터는 단순히 주어진 예산으로 문화향유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순천시가 민주적이고 문화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다양한 문화적 실험을 구상하고 기획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이어 “법정 문화도시 지정에 탈락해서 사실상 동력을 잃었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순천은 시민력이 높은 도시다. 다른 지역에 비해 시민이 지역의 현안에 관심이 많고 주도적 활동도 열심히 한다. 또한 생활문화가 굉장히 발달했다. 전문가, 시민 구분 없이 누구나 문화예술 활동을 즐긴다. 순천이 의지를 갖고 자체적으로 추진하면 진정한 문화도시로 거듭날 것”이라고 희망적으로 내다봤다.

그에게 문화예술기획자가 되고 싶은 청년에게 줄 조언을 구했다.

그는 “불합리한 것에 수긍하지 말기, 나만의 아이덴티티 찾기, 활동 폭 넓히기 이 세 가지로 요약된다”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즘 문화기획한다는 청년들은 ‘뭐든 다합니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본인만의 필살기 없이 보조금 사업에 맞춰 기획안을 작성하는 것은 매력적이지 않다”라며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 정말 잘하는 것, 꼭 이루고 싶은 것을 기획안 형태로 꾸준히 작성하고 그에 알맞은 기회에 지원해야 심사위원을 설득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더해 “이런 방법이 자신의 가치관과 정의관을 확립하고, 불합리한 것에 굴하지 않으며, 더 나은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는 키포인트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도전 범위를 전남, 전국으로 넓혔으면 한다. 지역의 파이는 한계가 있다”라고 말하며 “ 청년들이 힘을 합하면 중앙정부 사업도 추진할 역량이 생기는데 지역 내 경쟁에 갇혀 있으면 자신의 성장에 제약이 생김은 물론, 대도시 기획자들과 경쟁할 수 없다”라고 충고했다. “많이 만나고 많이 이야기했으면 한다. 네트워크나 거버넌스도 만들어보라”고도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시간과 돈과 노력을 투자하길 바란다”라며 “사업비 생기면 하고 아니면 안 하고, 이런 애티튜드로 진정성과 기획자로서의 가치를 이야기하기는 어렵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태경 씨가 직접 그린 그래프. 세로축은 본인이 생각한 성장 정도, 가로축은 나이를 나타낸다. “강의할 때 꼭 하는 이야기가 있다. 과거 힘들었던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를 점으로 찍어 직선으로 이어보라. 그럼 현재 나는 과거의 나보다 분명히 성장해 있을 것이다. 지금 힘들어도 훗날 언젠가 오늘을 생각하면서 점을 찍는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이태경 씨가 직접 그린 그래프. 세로축은 본인이 생각한 성장 정도, 가로축은 나이를 나타낸다. “강의할 때 꼭 하는 이야기가 있다. 과거 힘들었던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를 점으로 찍어 직선으로 이어보라. 그럼 현재 나는 과거의 나보다 분명히 성장해 있을 것이다. 지금 힘들어도 훗날 언젠가 오늘을 생각하면서 점을 찍는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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